‘백척간두’ 한전KDN, 위기 타개 가능할까
‘백척간두’ 한전KDN, 위기 타개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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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 자회사는 비리 복마전?
▲ 지난 1일 나주로의 본사 이전을 완료하고 본격적으로 ‘나주시대’를 알린 한전KDN. 각종 비리에 휩싸여 오명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한전KDN은 새 부대에 새 술을 담을 수 있을까. ⓒ뉴시스

납품 비리 의혹에 휩싸인 한전KDN이 입법 로비 정황까지 드러나며 몸살을 앓고 있다. 구속된 인원만 6명에 달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임수경 한전KDN 사장은 강도 높은 구조 개혁을 주문하며 비리의 사슬을 끊어내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편, 한전 자회사 직원들 역시 비리에 연루되어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이참에 모든 비리들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21일, 검찰은 한국전력공사 자회사인 한전KDN의 납품 비리 의혹을 납품업체 K사로부터 거액의 뒷돈을 받은 혐의(배임수재)로 한전KDN의 팀장급 직원 고모 씨와 박모 씨 등 2명을 구속했다. 이날 이들에 대한 구속전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김승주 영장전담판사가 밝힌 영장 발부 사유는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는 것이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한전KDN에 전력장비 등을 납품하는 K사로부터 수주·납품 등과 관련한 각종 편의를 제공하는 대가로 수천만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다. 이 날을 기점으로 한전KDN의 납품 비리 의혹과 관련해 구속된 인원은 총 6명이 됐다. 앞서 검찰은 K사로부터 수천만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한전KDN 국모(55·구속기소) 정보통신사업처장과 김모(45·구속기소) 차장, MB정부 인수위 상임자문위원 출신인 강승철(54·구속) 한전 전 상임감사, 한전KDN 임원 김모(60·구속) 씨 등 4명을 사법처리한 바 있다.

검찰은 K사가 한전KDN과 한전 등을 상대로 지속적으로 광범위한 로비를 벌인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K사는 배전제어 상황실 시스템과 근거리통신망(TRS)을 납품하는 IT 업체로 2008년부터 최근까지 한전이 발주한 IT통신센터 구축 사업 등 관련 사업을 사실상 독점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도 뻗친 검은 손
한전KDN이 납품 비리로 인한 구설수에 휘말린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한국KDN이 직원 568명을 동원해 새정치민주연합 전순옥, 김현미 의원, 새누리당 홍일표, 여상규 의원 등 총 4명에게 특정한 대가를 바라고 후원금을 기부한 혐의 등으로 한전KDN 사장을 입건했다. 경찰은 이들이 직원들을 동원해 995만 원에서 1816만 원의 ‘쪼개기 후원금’을 기부했다고 보고 있다.

이중 전순옥 의원은 2012년 11월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소프트웨어사업에 상호출자제한 기업의 참여를 제한하는 법안을 대표발의한 인물이다. 나머지 세 의원은 한전KDN에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인물인 것으로 파악됐다.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자 타격을 입게 될 것으로 예상한 한전KDN은 즉각대응팀을 만들어 4명의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입법로비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수시로 의원실을 방문, 법안 개정 내용 중 ‘제한 기업 중 공공기관은 제외한다’는 조문을 삽입한 법률 수정안을 전달, 법안을 바꿔달라고 부탁했다. 그 대가로 한전KDN 직원 491명이 10만 원씩 의원들에게 정치자금을 기부했다. 전 의원은 1816만 원, 나머지 의원들은 995만 원에서 1430만 원의 후원금을 입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지난해 2월 전 의원은 사업 참여 제한 대상에서 공공기관을 빼는 수정안을 발의했다. 결국 한전KDN은 지난해 6월 전 의원의 출판기념회에서 300권, 총 900만 원 상당의 책을 구입했다. 또한 이 법안 통과 이후 한전KDN은 기부금을 내지 않았던 직원 77명에게 지시, 전 의원 후원계좌로 536만 원을 추가 기부하도록 했다.

경찰은 이를 대가성이 짙은 입법로비로 보고 있다. 경찰은 전 의원이 소프트웨어법 개정안 발의 직후 한국KDN 관계자들과 만났고, 직원들로부터 소액 후원을 집중적으로 받은 뒤 한전KDN에 불리한 법조항을 수정해준 만큼 대가성이 명확하다는 입장이다.

실명이 거론된 해당 의원실은 대가성 여부에 대해 극구 부인하고 있다. 전 의원은 “입법로비가 아니다”면서도 “법의 한도 내에서 후원금을 받았다”고 일정 부분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 의원은 출판기념회 당시 한전KDN 측이 책을 대량 구매한 것에 대해 “산업화 과정에서 희생된 여성 노동자들을 인터뷰해서 쓴 책이라 당시 초청장에 ‘이 책을 사주시면 책값은 모두 후원금으로 해서 사회적 기업에 기부하겠다’고 썼다”며 “실제 들어온 돈 전액을 사회적 기업에 기부했다”고 설명했다.

이름이 거론된 또 다른 의원실 관계자는 “입법 과정에서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 한전KDN의 조직적 후원금은 기사를 보고 알았다”고 말했다.

▲ 한전KDN을 비롯, 한전 자회사들의 비리를 뿌리부터 뽑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한전KDN 운영비리 관련 허위출장 서류 등 압수품. ⓒ뉴시스

◆캐면 나오는 비리
이 뿐만이 아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따르면 한전 KDN의 운영비리에 대해 6개월간 수사에 나선 끝에 2012년 1월부터 2014년 5월까지 본사 임직원 358명이 출장을 가지 않고 허위서류를 만들어 출장비 11억2000여 만원을 수령해 개인이 사용하거나 상납한 사실을 밝혀냈다.

대표적인 예로 김모 전 사장은 지인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해 놓고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음에도 참석한 것처럼 허위로 서류를 작성해 1년간 2000만원을 지급했고, 김모 전 본부장은 관련업체 대표로부터 한전KDN 사업수주를 도와달라는 명목으로 1100만원을 수수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김 전 사장을 포함한 임직원 42명을 업무상 배임, 사기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수사 중이다.

아울러 국가사업에서 호환 및 상호 운용에 충족하지 않은 부품을 사용하고도 이를 개선하지 않고 3년째 방치한 것으로 드러나, 감사원이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은 지난 2012년 4월 ‘공직기강 특별점검’ 감사를 통해 한국전력 원격검침인프라(AMI)보급 사업에서 한전KDN이 품질인증(KS) 규격에 미달하는 비호환 부품을 사용한 것을 적발하고 규격에 충족하지 못한 제품들이 납품되는 일이 없도록 시정 조치를 지시했다.

당시 감사원 관계자는 “2010년 한국전력과 한전KDN이 보급·구축한 50만호 가구에 대해 실시간 전국 전력량을 파악하는 데 장애 요소가 된다”며 “한전 KDN은 교체와 한전의 하자보수 요구 등의 이유로 최소 28억여 원, 최대 246억여 원의 손실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한전KDN이 잘못 보급한 50만호 시스템과 앞으로 구축 예정인 1750만호 분이 호환되지 않아 전국 저압 수용가의 전력량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추가 예산을 투입해 모뎀 등 일부 품목 교체(약28억원)나 AMI용 장비교체(246억원) 등의 시정조치를 내렸지만 한전KDN은 지금까지도 감사원 지시를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임수경식 혁신 가동

▲ 한전KDN이 납품 비리와 입법 로비에 동시에 휩싸였다. 한전KDN의 새 수장이 된 임수경 사장이 이 같은 위기 상황을 돌파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최근 임 사장은 강도 높은 구조 개혁을 실시했다. ⓒ뉴시스

이에 지난 1일, 임수경 한전KDN 사장이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관리직급 인원을 순환시켜 부패척결과 인적쇄신의 의지를 담았다. 전력공기업 첫 ICT 분야 여성 수장으로 주목받는 임 사장인 만큼, 개편의 ‘약발’이 얼마나 먹힐지 주목된다.

이번 인사의 방향은 감사실 및 스텝조직 기능을 강화하고 주요 보직자의 인적쇄신, 신성장동력 사업 개발에 주안점을 둔 것이 특징이다. 특히 감사실이 대폭 변화됐다는 점이 눈에 띤다. 청렴윤리 강화를 위해 감사실(감사실장 윤복한)에 청렴감사팀과 조사감찰팀을 신설했다. 지금까지 전력공기업 감사실 인사가 인력교체와 조정 선에 머문 것을 미루어보면 이례적 조치다. 비리 척결을 위한 임 사장의 결단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보직인사에서는 처장급을 모두 교체했다. 강력한 인적쇄신으로 부패척결과 조직문화 혁신을 도모한다는 계획이다. 경영기획단과 ICT사업개발팀, 스마트그리드사업처와 그 산하 신산업개발팀도 신설됐다. 

신설된 경영기획단에는 문홍량 단장이 배치됐다. 앞으로 조직업무를 총괄조정하고 대외협력 기능을 담당한다. 본사 나주 이전 이후 조기 경영안정화도 임무 중 하나다. 특히 악화된 경영환경과 정체된 사업구조를 돌파하고 신성장동력사업을 창출하기 위해 ICT사업개발팀을 신설하고 스마트그리드 사업처와 그 산하에 신사업개발팀을 신설해 전략/신규사업개발/R&D가 유기적으로 연계되도록 조직체계를 정비했다. 이를 통해 세계 최고의 에너지ICT기업으로 새롭게 발돋움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포부다.

여기에 발전회사가 지방으로 이전함에 따라 해당 사업조직을 고객사 인근 사업소로 전진 배치해 고객밀착 서비스를 수행하도록 했다.한전KDN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강력한 인적쇄신을 통한 경영정상화가 핵심”이라며 “새로운 조직으로 본사 나주이전 시대를 맞아 새로운 변화와 도약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한전 주변은 ‘비리 복마전?’
한국전력 자회사 임직원들의 금품로비 의혹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장영섭 부장검사)는 납품업체로부터 뒷돈을 챙긴 혐의(배임수재 등)로 한국수력원자력 전무 김모(59)씨와 한전KDN 팀장 박모(51) 씨를 구속기소했다고 4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김 씨는 한전의 또다른 자회사인 한국중부발전에 근무하던 2010년 7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공사수주 청탁과 함께 납품업체 K사로부터 11차례에 걸쳐 2천70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 씨는 K사에 자신의 아들 골프레슨 비용을 대납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김 씨는 2011년 1월 한국수력원자력으로 옮긴 뒤에도 “한수원이 발주하는 공사를 한전KDN을 통해 수주하도록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뒷돈을 계속 챙겼다.

박 씨는 2010년 7월부터 2012년 7월까지 종합상황판과 통합감시시스템 등 납품계약을 도와주고 8천547만원을 챙긴 혐의다. 지인을 K사 대표가 운영하는 다른 업체에 위장취업시켜 급여를 받는 수법도 동원했다. 박 씨 역시 옮겨간 자리마다 담당 업무와 관련한 청탁과 함께 뒷돈을 챙겼다.

검찰은 K사가 사업을 따내려고 한전과 자회사 임직원들을 상대로 광범위한 로비를 벌인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이명박 정부 인수위원회 출신인 강승철(54) 전 한전 상임감사 등 7명이 구속됐다. 강 씨는 시가 4천400만원 상당의 제네시스 승용차를 제공받아 공짜로 타고 다닌 것으로 조사됐다.

단순히 한전KDN 한곳뿐만이 아니라, 타 한전 자회사에서도 비리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에 한전 주변에 퍼져 있는 비리의 싹을 발본색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세계일보>는 사설을 통해 “한전 주변은 부패의 암귀가 득실거리는 복마전인 것인가”라며 “성폭력은 개인의 인생을 망치고 부패는 나라를 망친다. 패가망신의 엄벌로 다뤄야 부패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 시사포커스 최효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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