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진당 해산 후폭풍…‘이념 전쟁’ 번지나
통진당 해산 후폭풍…‘이념 전쟁’ 번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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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수호 불가피한 결정”vs“민주주의 죽었다”

▲ 12월 19일 헌법재판소는 헌법상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는 이유 등을 들어 재판관 8:1의견으로 통합진보당의 해산을 결정했다. 사진 / 홍금표 기자

지난 19일 헌법재판소는 국가가 통합진보당을 상대로 낸 통진당 해산심판 청구 사건에서 재판관 8:1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통진당 소속 국회의원 5명의 의원직도 모두 박탈됐다.

헌법재판관 9명 중 박한철, 이정미, 이진성, 김창종, 안창호, 강일원, 서기석, 조용호 재판관 등 8명이 인용의견을 냈고, 김이수 재판관 1인만 기각의견을 냈다.

박한철 소장 등 8인의 재판관은 위헌 결정 이유에 대해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한다는 숨은 목적을 가지고 내란을 논의하는 회합을 개최하는 등 활동을 한 것은 헌법상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며 이 같은 통진당의 실질적 해악을 끼치는 구체적 위험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정당해산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고 결정했다. 통합진보당은 1948년 헌법이 제정된 이후 사상 처음으로 정당이 강제 해산된 첫 사례가 됐다.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이 내려진 가운데 우리 사회 곳곳에는 갈등의 파열음이 들리고 있다. 이는 보수와 진보 사이의 이념 논쟁으로 번지고 있어 ‘남남(南南) 갈등’에 대해 더욱 우려가 되고 있다.

헌재가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 결정을 하는 날, 헌재 주변은 ‘민주주의를 지킨 역사적인 결정’이라는 보수단체와 ‘정당의 자유, 정치적 결사의 자유는 심각한 침해’라는 진보단체의 끝없는 시위가 이뤄졌다.

또 헌재의 결정이 난 직후에는 한쪽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죽었다”며 탄식을, 다른 한쪽은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환호를 보냈다.

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는 북한과 관련된 갈등이 통합진보당의 해산 결정 이후 급격히 늘어났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종북(從北) 몰이가 아니냐며 국론분열이 심화되고 있다는 비난의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통진당 해산, 온라인서 ‘시끌시끌’

이미 인터넷 상에서는 보수와 진보의 이념전쟁이 시작됐다. 각계 인사들을 비롯해 누리꾼들은 SNS에서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비판과 옹호의 목소리로 들끓었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지난 17일 “통합진보당을 좋아하지 않지만, 통합진보당의 해산에는 반대한다”며 “민주주의는 그저 다수결의 원리에 불과한 게 아니라, 동시에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인내의 정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라고 글을 게재했다. 또 해산 결정 직후 “한국 사법의 흑역사”, “헌재냐 인민재판이냐… 남조선이나 북조선이나… 조선은 하나다”, “집단 실성”이라는 내용을 잇따라 올렸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헌법재판소 안팎 ‘공안파’의 완승”이라고 쓴소리를 냈다. 조국 교수는 이어 “8 대 1로 해산 및 의원직 박탈 결정, 여지없이 쓸어 버리는구나”라면서 “희망이나 기대와 달리 헌법재판소 내에 ‘중도파’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또한 누리꾼 가운데 닉네임 ‘smu****’는 “통진당 자체가 해산하는 것이나 소멸되는 것에 아쉬움은 눈꼽의 100만분의 일만큼도 없다. 다만 헌법재판소를 통해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정당 민주주의를 흔드는 판결이 나왔다는 것이 정말 미쳤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kor****’는 “헌재소장의 얼굴에서 전두환을 보았다. 나는 통진당을 지지하지 않지만, 정당해산에는 불만이다. 3권분립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 행정부의 대통령과 입법부의 정당이 추천하고 임명하는데 무슨 3권분립으로 견제와 균형을 말할 수 있을까”라고 트윗했다.

반면 보수 성향의 인사들은 헌재의 결정에 일제히 환영을 표했다.

보수성향의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통진당 해산은 북한 김정은 세력을 축출하고 자유통일 강대국 코리아로 가는 첫걸음일 뿐이다”면서 “이제 보다 깊고 폭넓은 투쟁을 해야 한다”고 통진당 기를 찍는 사진을 함께 개재했다.

아나운서 출신 정미홍씨도 “그동안 통진당 해산을 위해 헌신해 오신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라고 적었다.

또 누리꾼 ‘hay****’는 “통진당의 해산은 아무리 교활한 거짓과 포장으로 국민을 속이려 해도 그 진면목은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간단명료한 진리가 증명된 것이다. 정치인들 각자의 입장에 따라 생각을 달리할 것이나 한 가지 명심할 것은 교활함과 거짓은 감추어질 수 없다는 교훈을 알라”고 트윗했다.

‘xiu****’은 소수 의견을 낸 김이수 재판관을 향해 “의견을 잘 들었지만 현실을 너무 모르는 듯. 국민의 피 같은 세금이 민주적 기본 질서를 무너뜨리는 정당에 들어가는 걸 좌시할 건가”라고 주장했다.

이같이 통진당 해산으로 인해 최근 SNS는 사람들 간에 연결된 공간으로 정보를 공유하기보다 이념·지역·계층·세대 간 갈등을 부추기고 심화시키는 소위 ‘전쟁터’로 변해가고 있는 실정이다.

▲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이후 애기봉 성탄 트리 사건, 토크콘서트 종북 발언 등 사회 곳곳에서 진보와 보수의 극심한 이념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뉴시스

◆‘토크콘서트’, ‘애기봉’ 이념 전쟁으로 이어지나

특히 이념갈등의 불씨는 얼마 전 한 토크콘서트에서 활활 타오르게 됐다. 재미교보 신은미(53)씨와 황선(40) 전 민주노동당 대변인이 진행한 토크콘서트에서 북한 체제를 옹호하며 찬양했다는 종북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5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최근에 소위 종북콘서트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우려스러운 수준에 달하고 있다”며 “몇 번의 북한 방문 경험이 있는 일부 인사들이 북한 주민들의 처참한 생활상이나 인권침해 등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자신들의 일부 편향된 경험을 북한의 실상인양 왜곡·과장하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발언을 통해 토크콘서트를 향해 이른바 ‘종북콘서트’라고 못 박은 것이다. 이에 황선씨는 지난 22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명예훼손 및 직권남용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황선씨는 고소장을 통해 “박 대통령은 ‘통일 토크콘서트’를 근거 없이 종북 콘서트로 규정, 일부 종편의 마녀사냥에 힘을 실어줬다”며 “박 대통령의 발언으로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과 민족의 화해를 바라는 활동의 일환으로 ‘통일 토크콘서트’에 참석한 사람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황선씨는 이어 “경찰에 고발된 사건과 관련해 초기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종북 콘서트라고 발언한 것은 경찰 수사에 개입한 것으로, 이는 명백한 권력남용에 해당한다”며 “수사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수사개입에 해당한다고 판단, 직권남용죄로 고소한다”고 설명했다.

올해 대북전단인 일명 ‘삐라’도 북한주민들의 인권을 위해 날린다는 입장과 남북갈등을 조장해 날리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으로 나뉘면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켰다. 최근 애기봉 트리 점등과 관련해 ‘제2의 삐라’라며 또 다른 이념 갈등이 빚어질 양상이다.

김포 애기봉 전망대에 있는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는 1953년 한국전쟁 당시 한 병사가 크리스마스에 평화를 기원하며 세운 성탄 트리가 유래로 1971년 30m의 등탑이 세워졌다. 트리 점등은 매년 성탄절 평화를 기원하며 이어오던 행사다.

그러나 북한 측은 대북선전 시설물이라고 주장하며 예민하게 반응해 갈등을 빚어왔으며 이에 따른 이념 갈등도 일어났다.

지난 10월 해병대가 시설낙후에 따라 안정상의 문제로 42년만에 철거했다가 국방부가 종교의 자유 보장을 이유로 다시 설치를 허용했다. 애기봉 트리가 남북 간 갈등과 지역 주민들의 불안감을 고조시킨다며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은 트리를 설치하거나 점등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한기총은 “순수한 의도와 동기에도 불구하고 '애기봉 크리스마스 트리'가 남북간의 갈등을 조장하고 내부로는 보수와 진보의 대립을 일으킨다는 불필요한 오해를 받게 됐다”며 철회 이유를 밝혔다.

이어 “더 이상 ‘애기봉 크리스마스 트리’를 두고 어떤 누구도 서로 다투거나 반목하는 일이 없게 되기를 소망한다”며 “사랑과 평화의 상징 그리고 통일의 염원을 담은 애기봉 크리스마스 트리가 예수의 성스러운 탄생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순수한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고 전했다.

반면 기독당은 애기봉 전등 재설치를 촉구하는 기도회를 진행했다. 이들은 “애기봉 등탑은 유네스코 유산으로 남을만한 역사적인 평화의 상징”이라며 “전망대에 건립되는 평화공원에 철거된 등탑 대신 세계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대형 십자가를 세우는 것을 국방부에 제안하겠다”고 전했다.

▲ 헌재의 결정이 사회 전반의 우경화 가능성과 함께 ‘종북몰이’가 팽배해질 가능성이 제기돼, 이에 따른 희생양 발생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사진 / 김지혜 기자

◆‘종북몰이’ 분위기 확산…희생자 증가 우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에 앞서 “부디 이 결정이 우리 사회 소모적 이념 논쟁 종식시키고 대한민국 미래 희망 만들어 가는 계기되기를 바라며 선고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가 우경화 가능성과 함께 ‘종북몰이’, ‘종북 씨 말리기’의 방향으로 흘러가 이념 논쟁은 더욱 악화됐다. 또한 당국이 ‘공안정국’을 조성하려는 것 아니냐며 이에 따른 희생자 증가가 우려된다.

지난 22일 서울지방경찰청 보안2과는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코리아연대’ 사무실 등 5곳에 포렌식 요원 등 수사관 66명을 급파해 압수수색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경기도 김포에 있는 민통선 A교회 목사 이 씨의 사무실과 주거지 등 3곳에도 포렌식 요원 등 수사관 32명을 파견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경찰에 따르면 시민단체 ‘코리아연대’는 목사 이 씨를 포함해 조직원 9명은 이적단체로 규정된 ‘연방통추’, ‘범민련 남측본부’ 등과 함께 연방제 통일, 국가보안법 철폐투쟁 등을 지속적으로 벌인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이씨 등은 인터넷카페 등에 북한의 선군정치를 옹호하고 찬양하는 내용의 글을 게재하고 2011년 12월에는 김정일 조문 목적으로 공동대표 A씨(38·여)를 밀입북 시킨 혐의도 받고 있다.

<미디어 오늘>에 따르면 이 목사는 “국방부 대북심리전술부서에서 민간인 보수기독교 단체에 애기봉 성탄트리 설치와 같은 대북심리전을 위탁하기도 한다”며 “이번 압수수색이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애기봉 등탑을 설치하지 못하게 한 것에 대한 보복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12~14일 독일 내 친북성향 단체인 ‘재독일동포협력회의’가 주최한 한반도 관련 세미나와 관련해 이 목사는 “장경욱 변호사와 내가 참여한 세미나는 주제가 한반도평화였다”며 “한반도 평화에 관심 있는 세계적인 석학이 다 참여한 것을 친북활동이라고 억지로 몰아붙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 식이라면 외국 나가서 밥 먹는데 옆 테이블에 북한 사람이 있어도 국보법 위반이겠다”며 비판했다.

이 목사는 이번 압수수색에 대해 “나를 압박해 평화운동자체를 막으려는 의도”라며 “대북전단 살포나 애기봉 등탑 반대는 남북관계를 깨뜨리는 행위라고 북한이 주장하기 전부터 내가 주장했던 사안이고 북한 주장에 동조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진보당 해산 결정 이후 진보·평화인사들을 탄압하려는데 처음으로 장 변호사와 내가 걸린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찰은 “진보당 해산 결정과 압수수색은 관계가 없다”는 입장이다.
코리아연대 관계자는 “집회나 기자회견을 하다보면 여러 단체가 모일 수 있는데 경찰이 그것을 빌미로 짜맞추기 수사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국보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데 대해 “국보법 적용대상은 오래전부터 지적됐지만 자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법이기 때문에 경찰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압수수색을 진행했는지 모르겠다”며 “박근혜 대통령 자서전에도 북한을 찬양고무한 부분이 있으니 수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시사포커스 /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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