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부터 15일까지 9박 10일 간 프랑스, 포르투갈, 불가리아, 독일 등 유럽 4개국 순방을 하고 돌아온 한명숙 총리의 국정 업무 수행 능력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헌정사상 첫 여성총리라는 타이틀을 앞세우고 있기는 하지만, 그에 어울리는 업무 수행 능력은 아쉬움을 많이 남기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 순방 중에도 한 총리는 많은 뒷얘기들을 남겼다. 포르투갈 대통령과의 예방 시간을 맞추지 못한 결례, 1천 억짜리 대통령 전용기 논란 등이 한 총리의 첫 해외 순방길에서 불거진 문제들이다. 그러나 이 같은 문제들은 모두 한 총리 측에서의 실수에 의한 것이 아닌, 일부 왜곡된 보도에 의한 것들이었다. 총리실에서는 언론 보도에 대해 다급하게 해명을 하고 있지만, 상황은 해명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분위기가 아닌듯한 모습이다.
한 총리 측에서 전혀 잘못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유난히 잦아들지 않는 한 총리의 해외순방에 대한 비난 열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한 총리는 낙동강 오리알?
이미 알고 있다시피 한 총리는 3.1절 골프 파문으로 총리직에서 사퇴한 이해찬 전 총리의 후임으로 총리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당시 정계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2.18 전당대회를 통해 열린우리당의 신임 당의장이 되었던 정동영 전 의장은 자신의 세를 넓히기 위해 노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이 전 총리를 끌어내리고 한 총리를 추천했었다. 다시 말해 헌정사상 첫 여성총리는 정 전 의장의 어느 정도 정치적 목적에 의해 탄생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5.31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참패를 하게 됨으로써, 정 전 의장 또한 더 이상 자리보존을 하기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되고 결국 선거 익일 의장직을 사퇴했다. 당 의장으로 선출되며 한 때 당과 청의 관계에서 대통령에게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던 정 전 의장은 더 이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정 전 의장의 힘이 급속도로 약해지자 입지가 위축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한 총리. 그 때문에 만약, 열린우리당이 지방선거에서 승리를 했다면 한 총리의 위상은 더 없이 높아질 수 있었을 것이라는 계산이 서게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에 반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렇기에 ‘노무현 대통령이 3.1절 골프파문 당시 자신의 오른팔이었던 이 전 총리를 떼어주면서까지 정 전 의장의 말을 들어주었던 이유는 무엇일까?’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한 질문이 될 수 있다. 그에 대한 해답이 바로 현 내각이 한 총리를 대하는 태도를 대변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親盧 내각, 총리 길들이기 하나?
이미 내각은 親盧 가족 모임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개각을 단행할 때마다 코드인사라는 비난을 받기는 했지만, 비난을 감수한 끝에 노 대통령은 현재의 탄탄한 레임덕 방지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정부 각 부처 장관이 거의 대부분 노 대통령의 최측근 인물들이라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 그러나 한 총리만은 노 대통령의 뜻에 따라 기용된 인물이 아니다. 더욱이 한 총리는 親盧 성향의 인물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일각에서는 “한 총리가 현 정부에서 버티기 힘들지 않겠느냐?”라는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일례로 지난 11일 총리실 등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한 총리가 주재한 ‘농림어업인 삶의 질 향상 위원회’에는 당연직 위원인 장관 15명 중 10명이 불참하고 대신 차관급이 참석하였다고 밝혔다.
이에 “내각 기강이 이완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각계로부터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물론, 총리실은 이에 대해 “장관이 부득이하게 회의에 불참할 경우 차관 등을 대신 참석토록 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다”며 “이는 한 총리 들어서 생긴 일이 아니며, 이해찬 전 총리 때도 있었던 일”이라고 해명을 했다.
물론, 이 전 총리 때도 장관이 불참하는 경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많아야 2, 3명의 장관이 불참하는 경우는 있었어도 이번처럼 10여 명이 대거로 불참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것이 내각 기강 이완을 주장하는 측의 설명이다. 이들이 기강 이완을 주장하고는 있어도 다른 시각에서 일련의 상황을 바라본다면 ‘내각의 총리 길들이기’, 혹은 ‘총리 불신임의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노 대통령이 끌어안아주지 않으니, 그 밑에서도 한 총리를 만만하게 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유 없이 기강 이완론이 제기되는 것이 아니다.
◈한나라당, “손해 볼 것 없다”
흥미로운 것은 한나라당의 반응이다. 최근 한 총리의 유럽 순방에서 불거진 일련의 사건 ․ 사고들에 대해 한나라당은 한 총리와 정부를 함께 비난하고 나섰다. 포르투갈 대통령과의 예방시간에 30여 분 늦게 된 사고에 대해서 처음 “어디 미개한 후진국 외교도 아니고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나라망신을 시킬 수가 있는 것인가”라고 한 총리만을 맹비난하는 듯 했지만, 결국 “노무현 대통령과 이해찬 총리가 외국에 나갔을 때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했는가 묻고 싶다. 정부 스스로 허세 총리라고 선전하는 것인가?”라고 되물으며 정부 책임을 덧붙여 주장했다.
그러나 이 같은 발언은 그동안 이 전 총리를 끌어내리기 위해 애를 쓰던 한나라당의 과거를 생각했을 때, “한 총리에 대해 고무적인 발언이었다”라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 모든 사고의 원인은 정부가 제공한 것과 다름없다는 논리적 해석에 의해서이다.
그것은 “한명숙 총리를 여성 총리라고 얕잡아 봤든지 정권의 레임덕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고는 자국의 국무총리 의전을 이렇게 소홀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더구나 총리 취임하고 나서 처음 외국에 나간 국무총리를 이렇게 대접 하는 것은 경우에 없는 일로 반드시 원인 규명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주장을 통해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전 총리 시절은 총리를 일방적 적 개념으로만 받아들이던 한나라당에게 한 총리는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새로운 교두보 역할이 되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꿩 먹고, 알 먹는 노 대통령
이제, 노 대통령이 정 전 의장의 뜻에 따라 이 전 총리의 사퇴를 받아들이고 한 총리를 임명했던 것은 확실히 정치게임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현재 상황은 이 전 총리의 사퇴 수리가 결코 정 전 의장의 파워에 밀린 노 대통령의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지는 것이 곧 이기는 것’이라고 당시 총리 후보로 거론되던 지금의 한 총리와 김병준 정책실장 중에서 노 대통령은 정 전 의장의 뜻에 못이기는 척 따라줌으로써 여당의 지방선거 패배 책임을 회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전 총리를 내주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본다면 노 대통령은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었다. 남은 임기 동안 레임덕 없이 대통령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지방선거가 걸림돌이 될 수도 있었지만, 그 걸림돌을 정 전 의장이 나서서 제거해주었기 때문이다. 먼저 이기고 결과적으로 지느냐, 먼저 지고 결과적으로 이기느냐 하는 원론적인 선택에서 노 대통령은 후자를 선택했던 것이다.
더욱이 3.1절 골프 파문으로 검찰에 고발되기까지 했던 이 전 총리는 최근 무혐의 처분을 받게 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노 대통령은 꿩도 먹고 알까지 먹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한 총리의 능력을 끌어내야
지금까지의 상황이 외부적인 조건에 의해 한 총리가 의도하지 않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면, 한 총리도 무언가 달라져야 할 것이 있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우선 내각 뿐 아니라 언론도 한 총리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전후 사정을 들어보지도 않고 유럽 순방길에서 빚어진 사건들을 앞 다투며 부정적으로 보도를 하는가 하면, 각 언론별 사설에 논평까지 내며 ‘설익은 외교’, ‘국제적 망신’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한 총리에 대해 조금이라도 애정이 있었다면 해외순방에서 돌아오지도 않은 국무총리를 그렇게 매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총리실에서 이 같은 보도들에 대해 일일이 언론사에 전화를 걸어 해명을 하고,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나니 언론사들은 슬그머니 앞서 비난했던 기사 내용들에 대해 해명 기사를 연이어 제공했다. 그러나 모 언론의 경우에는 총리실의 해명을 받아들이면서도 “한 총리측이 어설픈 소동에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며 “의전팀은 ‘외교는 예의에서 시작해 예의로 끝난다’는 국가 간의 수칙 정도는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고 이번 한 총리의 해외 순방 결과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기도 했다.
물론, 이 같은 부정적 뉘앙스의 입장을 표명한 언론들이 한두 곳만은 아니다. 한 총리가 내각으로부터, 언론으로부터 왜 이런 곱지 못한 시선에 둘러싸여 있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한 총리 당사자는 물론, 정부 여당 및 노 대통령도 마찬가지이다. ‘헌정사상 첫 여성 총리’라는 타이틀만으로 한 총리의 임무를 매듭짓게 할 것이 아닌, 국가 운영 전반에 진정한 여성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는데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