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20년, 브레이크가 없다
지방자치 20년, 브레이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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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민선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어느새 20년이 됐다. 그 전까지 30여년 간은 중앙 정부에서 단체장을 임명했다. 민주화 열망의 정점을 찍은 직선제 개헌 이후 우리 나라는 1991년 선거를 통해 지방 의회를 구성하고 1995년에는 단체장까지 포함된 통합 지방 선거도 최초로 실시해 1961년 지방 자치제 중단 이후 본격적으로 민선 지방자치 시대를 다시 열었다.
 
많은 국민들은 30여년 만에 부활한 민선 지방자치제를 통해 지역의 현안에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가 더욱 많이 반영되는 세상을 꿈꾸며 즐거워했고, 풀뿌리 민주주의의 토양을 잘 다지기 위해 각계 각층에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어느덧 민선 6기가 출범하고 민선 지방자치가 실시된 지 20년이 지났음에도 상황은 오히려 퇴보한 듯 하다. 지방 분권의 최대한 보장이라는 미명 하에 지자체를 견제할 수단은 오히려 하나 둘 씩 사라지고 있다. 특히 관심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기초자치단체의 현실은 더욱 심각해 집행부를 견제해야 할 기초의회는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가장 큰 문제는 비리와 부패를 감시할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민선 지방자치 출범 초기에는 감사원에서 지방자치단체에 2년에 1번씩 정기 감사를 실시했다. 때로는 여러 개의 정부 부처가 일제히 참여해 합동 정기 감사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슬그머니 정기 감사는 어느새 사라지고 감사원은 지자체 감사를 거의 손을 놓다시피 한 상태다.
 
최근 국정감사에 제출된 감사원 자료에는 지난 10년간 감사원의 기관운영감사를 받은 기초자치단체가 전국 226곳 중 45곳에 불과했다고 한다. 181곳은 10년간 단 1번도 받지 않았다는 얘기다. 로테이션을 돌리면 기초지방자치단체 1곳이 감사를 받기까지 50년이 걸린다는 웃지 못할 분석도 있다. 감사원은 예산과 인력의 한계가 있다며 지자체의 반발도 크다는 이유를 대고 있다. 감사원 감사를 반기는 곳이 있겠는가. 그것이 견제인데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얘기다.
 
그렇다고 상급 단체가 힘을 쓸 여지가 많은 것도 아니다. 국민신문고에 기초자치단체의 문제점에 대한 진정을 넣어도 국민신문고는 진정 민원을 해당 광역자치단체로 넘겨버리고 광역자치단체는 또 다시 진정의 당사자인 기초자치단체에 이관해 버린다. 이는 광역자치단체가 인사 등을 기초자치단체에 이관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30만 이상의 지방자치단체에는 개방형 감사관 제도를 채택하도록 돼 있지만 이 제도 역시 무용지물이라는 얘기가 많다. 개방형을 택한 취지는 제 식구 감싸기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지만 역으로 개방형이기 때문에 임명권자인 자치단체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특별채용해 준 시장, 군수, 구청장을 민간인 출신의 감사관이 공정한 감사를 할 수 있겠는가.
 
무용론에 휩싸인 기초의회도 마찬가지다. 자치사무를 감사해야 할 구의회는 구청의 결산과 행정 전반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는 명분에 불과하다. 정당공천제로 인해 집행부와 다수 지방의회 의원들이 정당이 같으면 거수기로 전락하고 다르면 무조건 반대하고 있다. 많은 지방의회 의원들은 전문적인 지식도 없고 교육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감사를 진행하고 조례를 통과시킨다. 실제 최근에는 기초의회 폐지 움직임까지 일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이 뽑은 지방의회마저 이러니 도대체 누가 지방자치단체를 견제할 수 있는가. 지방의회는 지방행정과 공생관계인 악어와 악어새 관계로 비유될 정도다. 업무추진비 정보 공개 청구가 거부되는 일도 있다. 구의회 의원과 구청이 먹이사슬 관계로 엮어지는 게 현재 지방의회의 현실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잘못된 민원에 대한 감독이나 관리가 시급한 일들이 전국 곳곳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하지만 선거 외에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지는 제도도 제대로 없고 지방자치단체의 비리와 부패를 견제할 수 있는 제도도 사실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밑바닥부터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대한민국은 점차 총체적 난국이요, 부정 부패의 온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견제가 없는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는 말이 있다. 영국의 유명한 문학가 조지 오웰은 <동물농장>에서 이 격언이 현실화되는 과정을 여실히 보여줬다. 돼지 나폴레옹은 자신과 대립하던 스노우를 쫓아낸 후 선심성 사업과 정보 통제 등을 통해 노골적으로 부패의 길을 걸었다. 이미 이 같은 사례를 우리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영국의 역사가 제프리 엘튼 역시 “권력은 부패하고,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말을 남겼다. 견제 장치가 절실함을 일깨워주는 교훈이다.
 
올해가 본격적인 민선 지방자치 20년을 맞는 해지만 상황은 예전보다 더욱 좋지 않다. 초기에는 강력한 감사 제도 등으로 부정 부패에 연루된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옷을 벗는 일들이 잇따라 일어났지만 지금은 이 같은 일이 거의 없다. 부정 부패가 줄어서가 아니다. 견제 장치가 없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감사원을 지역별로 나누는 지역감사원 제도 같은 제도적 입법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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