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이맘때면 새로운 세력이 결성되기도 하고, 흐지부지 사라지는 세력도 생긴다. 중부권 신당으로, 지난 2월 자유민주연합이 한나라당에 흡수되면서 충청 지역의 맹주 자리를 노렸던 국민중심당은 5·31 지방선거 참패 이후 한 차례 내홍을 겪기도 했다.
국중당 서울시당대표를 맡았던 이신범 전 의원은 지난 14일 서울시당을 자진 해산하고 탈당을 선언하면서 “인천·경기·강원·경남도당도 곧 자진 해산에 동참할 것이며, 이인제 최고위원도 10월 중 탈당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인제 국중당 최고위원도 “국중당과 더 이상 함께하기 어렵다”며 “국중당 지도부는 그동안 무기력하고 기회주의적인 모습만을 보였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이 전 의원은 심대평·신국환 국중당 대표의 독선적인 당 운영을 탈당 이유로 꼽았다. 5·31 지방선거 참패 이후 임시전당대회를 주장해왔는데, 당 대표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당내 인사·당헌 개정 등에서 비민주적인 전횡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이인제 10월 탈당설
신 공동대표와 조만간 복귀할 것으로 보이는 심 공동대표는 모두 정치 초년생으로 이러한 내분을 무마하기에는 역량이 모자라 보인다. 이들은 “광역단체장은 당선시키지 못했지만 지방의원·기초단체장은 89명이 당선됐다. 완전한 실패는 아니다”고 해명하고 있을 뿐이다.
주목되는 것은 이 최고위원의 선택이다. ‘이인제 학습효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1997년 때부터 대선을 기점으로 돌출행동을 보여 왔고 또 그때마다 뜻대로 성공을 이루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이 최고위원이 탈당을 실행에 옮길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대선이 1년여 남은 시점에서 무소속을 자처할 명분도 실리도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심 공동대표의 당무 복귀를 앞두고 당권 경쟁을 위한 견제성 발언이라는 것이 이들의 시각이다.
하지만 이 최고위원이 탈당할 것이라고 관측하는 이들의 논거는 다르다. 이 최고위원의 10월 탈당은 정당 국고보조금이 나오는 11월이라는 시점을 겨냥했다는 것이다. 이신범 전 의원도 이 부분을 강조한 바 있다. 또한 대선을 눈앞에 두고 ‘탈당’을 되풀이하는 것보다 사전에 미리 탈당해 연상효과를 줄이는 게 낫다는 판단일 수도 있다. 어차피 이 최고위원의 입장에서는 국중당에 남아 있으나 무소속 신분이 되나 큰 차이는 없다.
이신범 전 의원은 탈당 직후 국민통합정당추진연대를 발족했다. 이 전 의원은 추진연대에 대해 바로 신당을 창당하거나 향후 정계 개편을 주도할 것은 아니며 이 최고위원이 합류하면 뜻이 맞는 세력과 연대하여 제3세력을 형성하는데 일조하겠다고만 밝혔다.
이 최고위원을 위시한 추진연대는 반노비한 노선을 주장하고 있다.이는 민주당의 주장과 일치하며 홍사덕 전 의원·장기표 새정치연대 대표 등이 합류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홍 전 의원이나 장 대표는 이인제와의 신당 창당설을 강하게 부인하며 “접촉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인제-홍준표-장기표 창당도 현실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물론 이들을 포함해 고건 전 총리나 민주당 조순형 의원 등과 외연을 넓혀 앞으로 일정한 공조가 이루어질 수는 있다.
하지만 이 최고위원의 행보가 현실적으로 정계에 어떤 영향력을 미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본인들도 인정하듯이 국중당조차 장악하지 못한 이 최고위원이 독자적인 생존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고 전 총리를 한 축으로 하는 반노비한 연대의 또 하나의 동력으로 작용할 것임은 확실하지만, 그 연대를 통해 이 최고위원이 얻을 지분은 빈약해 보인다.
이 최고위원의 한 측근은 “방향은 정해졌으며 이 최고위원의 결심만 남았다”고 말해 그 방향이 탈당인지 잔류인지 알 수는 없으나 무언가 심사숙고 중임을 시사했다.
또 하나의 관심사는 국중당의 존립 여부다.
이신범 전 의원의 말대로라면 남은 9개 시도당 중 4, 5개 시도당이 추가로 해산된다. 정당법상 5개 시도당 보유해야 정당으로 인정돼 국가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이에 대해 국중당 당권파는 이 전 의원이 거론한 시도당들은 내부 논란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해산이 확정된 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 최고위원이 탈당할 경우 재정적인 문제는 커진다. 현재 국중당의 정당 보조금은 분기별 3억 7천만원을 받지만 이 최고위원이 탈당하면 1억 6천만원으로 줄어든다. 정치자금법상 5석 이상의 정당은 보조금 총액의 5%를 받을 수 있지만 5석 미만의 정당은 2%밖에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재정난에 시달리는 국중당으로서는 치명타다.
남은 국중당 소속 의원들의 행보도 변수다. 정진석·김낙성·류근찬·신국환 의원 4명 중 일부는 총선을 앞두고 자민련 출신 의원들이 있는 한나라당으로 옮기고 싶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5·31지방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던 심 공동대표는 “공동대표로 복귀하면 모든 것이 안정되는 새로운 모습을 보이겠다”며 당무 복귀 입장을 확실히 했다. 또한 10·25 재보선에서 인천 남동을에 출마할 의사를 비쳐 이번 재보선이 국중당 재기의 기점이 될 듯하다.
흔들리는 국민중심당
연말연초로 예고되는 정계 개편에서 이 최고위원과 국중당의 진로가 앞으로 어떤 영향력을 발휘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