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페리 발로는 “정보는 자유롭고 싶어한다”면서 ‘사이버자치공간’이라는 개념을 전파했다. 니콜라스 네그로폰테는 “민족국가는 의미가 없어졌다”고 예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사이버공간은 국가의 공권력이 장악했고, 인터넷 사용자의 3분의 2는 비영어권 사용자들이 됐다.
이런 종류의 예상이 빗나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전보나 라디오, 텔레비전 같은 신기술이 보급될 때마다 ‘국경 없는 세계’에 대한 환상은 조장됐고, 그때마다 그 환상은 현실화되지 못했다.
하버드 법대 교수 잭 골드스미스와 컬럼비아 법대 팀 우가 공동집필한 <인터넷 권력 전쟁>은 인터넷이라는 신기술이 예상을 뒤엎고 민족국가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는가를 다룬다. 이들은 다양한 역사적 사례를 검토한 끝에 인터넷은 정부권력 밑에 존재할 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들이 수집한 구체적 사례는 다양하다. 인터넷 네이밍 권한을 독점하려던 존 포스텔은 미국 정부에 굴복했고, 야후의 제리 양은 프랑스 법원의 관할권에 나치 기념품을 판매하던 경매사이트를 폐쇄했다. 중국 정부는 공산당 통치에 위협이 되는 자료가 검색되지 못하도록 구글을 통제했고, 파일공유를 둘러싼 저작권자와 네티즌의 마찰은 기업의 승리로 귀결되고 있다.
이 같은 과정에 따라 국가가 통제할 수 없으리라고 예상됐던 인터넷 정보유통을 공권력이 통제할 수 있게 됐고, 민족국가의 관할에 따라 인터넷이 구분되면서 언어, 규범, 기호도 지역적 특성에 따라 다양해졌다.
이에 대한 저자들의 관점은 유보적이다. 정부의 인터넷 통제는 “바이러스, 온라인 사기, 스팸메일 등 여러 가지 방식의 인터넷 오남용”에 대한 정당한 반응이지만, 정부가 인터넷의 본질을 바꿀 수도 있고 패권국가들의 각축장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학술서적인 만큼 책의 내용은 상당히 전문적이지만 흥미로운 일화가 많이 숨어 있다. 옮긴이는 송연석, 펴낸곳은 뉴런이다.
잭 골드스미스·팀 우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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