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발코니(Le balcon)"
최근 들어 외국 저명 희곡작가의 작품들이 큰 인기를 얻으며 국내 무대에 선보여지고 있다. 지난 해부터 일기 시작한 이 '열풍'은 '피터 셰퍼 열풍', '안톱 체홉 열풍', '브레히트 열풍' 등, 한 작가의 여러 희곡이 동시다발적으로 무대에 오르는 기현상을 일으키기까지 했는데, 이번에 박정희 연출, 나자명 주연으로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소극장 무대에 올려지는 연극 <발코니>는 이런 '해외 희곡 붐'에 쟝 쥬네라는 걸출한 인물의 이름을 추가시킬 수 있을 법한 독특한 작품이 될 예정이다.
쟝 쥬네는 비록 닐 사이먼이나 테네시 윌리엄스처럼 대중적인 인기를 누린 작가는 아닐지라도, 인간의 본질과 실존의 문제를 치열하게 추적한 작가로서, 그가 생전에 발표한 다섯 편의 희곡 - <엄중한 감시>, <하녀들>, <발코니>, <흑인들>, <병풍들> - 은 모두 20세기 희곡사에 남을 법한 클래식으로 거듭난 바 있다. 사트르트로 하여금 <성자 쥬네>라는 대작을 쓰게끔 했을 정도로 유럽의 지성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쥬네의 희곡 <발코니>는 복잡한 알레고리와 은유성이 특징인 그의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형이상학적이며 정치성과 사회성이 날카롭게 장전되어 흩뿌려진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익명의 나라 한 구석에 위치한 한 유곽(이미지 쌀롱)을 중심으로, 이 유곽을 찾아오는 손님들이 주문하는 가지각색 시나리오의 연극놀이, 이를 지배하려는 경찰서장과 권력에 대항한 혁명조직, 영웅과 비천한 인간들이 어지럽게 넘실대며,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이런 욕망이 사회구조와 맞닥뜨렸을 때에 벌어질 수 있는 혼란을 그려내고 있는 <발코니>에는 이야기의 중심축에 해당하는 유곽의 여주인 '일마'역으로 이미 세계연극계에서 널리 알려진 나자명이 출연해 또다른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한국배우로는 최초로 '2002 한일월드컵 일본 국제제작 연극무대 "레즈 씨스터즈"', '2002년 동경국제예술제(모노드라마 "슬픔의 일곱무대")'에 참가하고, 일본에서 '캐나다현대연극제'에 유일하게 초청되어, 일본의 중견 연기자로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한국여배우 나자명은 <발코니>에서 극중 유곽 마담과 여왕, 포주, 제의의 제사자로 빠른 시간 동안에 이미지와 인격을 바꿔가며 연기, 극의 속도감을 살리고 변화무쌍한 이야기의 틀을 귀납적으로 잡아내는 역할을 맡고 있는데,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바 있는 나자명의 재빠른 집중력과 내적전환능력, 호흡구조 변화에서의 재치가 없었더라면 극 자체의 대중적 소화가 어려웠을 지도 모른다는 인상이 들기까지 한다.
극단 풍경의 대표로 <하녀들>, <평심> 등을 통해 독창적 연출색을 인정받고 있는 박정희의 연출도 실험성과 서정성, 도발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겸비한 뚝심있는 연출로 자칫 난잡해질 수 있는 이야기의 구조를 꽉 붙들어매 관객들에게 집중적이고 효과적으로 주제를 전달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여름을 맞이하려는 이 시기, 그간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만은 않았던, 그러나 분명 깊이있는 사고와 복합적 감성체계를 지니고 있어 논의의 중심으로 서기에 충분한 쟝 쥬네의 연극과 함께 색다른 감흥을 맞이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장소: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소극장, 일시: 2004.05.12∼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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