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정치 경제에 대한 국민의 필요 소양을 제시한 『이기적 국민(필명 김민)』, 20대 아들에게 전하는 감성 에세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100개의 편지』, 시대의 흐름과 변화에 대한 통찰을 담은 『디테일을 잡아야 성공이 보인다』 등을 저술해온 김상민 씨가 출판사 땡큐미디어를 통해 내놓은 최신작으로 지난 2016년 7월부터 2017년 3월 10일까지 이어졌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를 복기하며 이 사건이 미친 파장과 정치권에 주는 교훈 등을 담은 명저다.
저자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 미국 세인트루이스 소재 워싱턴대에서 MBA(경영학석사)를 취득했고 매일경제신문에서 경제 산업 정치 담당 기자를 거쳐 기업경영팀장과 산업부 부장을 역임한 뒤 MBN에서 경제부장과 보도제작(뉴스총괄)부장을 지낸 인물로 현재는 국회에서 활동하면서 특유의 식견으로 한국 정치권을 통찰한 저서들을 내놓고 있다.
특히 저자는 이번 서적에서 “선진국일수록 법치를 강조하며, 우파 보수는 좌파에 비해 항상 법치주의를 더 중시한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판결을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우파 보수임을 자처하는 것은 자기모순이자 자가당착이 되는 것이다”라면서 탄핵이 헌법질서 수호 차원임을 강조했는데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통해 보수진영은 이젠 ‘우파 보수의 화합이 중요하고, 내부 총질은 더 이상 안 된다’는 것을 깨우쳐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난 2017년3월10일 오전 11시 헌법재판소에서 결론 낸 ‘대통령 박근혜 탄핵심판 선고’는 크게 세 가지 이유에서 역사의 불가피한 흐름이기도 했는데, 첫 번째로는 정치적 판단이 불가피한 부분은 있지만 국론분열과 혼란의 종식, 법치주의 준수 때문이고 두 번째는 국민이 최종권력을 갖는다는 민주공화국의 원리상 그 권력의 근거인 ‘국민’의 신뢰를 배반했기 때문이며 세 번째는 새누리당 추천으로 임명된 안창호 대법관이 강조했을 만큼 탄핵이 ‘보수와 진보란 이념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고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비단 이 같은 탄핵 선고란 법적 결과를 떠나서라도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이르기까지의 지난 과정을 복기해 보면 여러 면에서 탄핵은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았는데, 그 전조라 할 수 있는 건 먼저 20대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4·13총선 공천 파동이다.
당시엔 야권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분열되어 있던 상황인 만큼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에 유리한 형세였지만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과 현기환 정무수석을 통해 국민 눈높이가 아닌, 오로지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만 반영된 친박 공천이 대대적으로 자행되면서 도리어 선거 패배라는 뜻밖의 결과로 귀결되었다.
이 과정에서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는 잘못된 공천을 수용할 수 없다며 최고위에서 이미 의결된 서울 송파을과 대구 동구을 등 5곳의 공천장에 직인을 찍지 않고 부산 영도로 내려갔으나 오히려 언론과 야당에 의해 이는 옥새 파동이란 가짜뉴스로 그저 희화화되어 버렸고 내홍이 표출될 것을 불사하고 강행한 친박계의 밀실공천 끝에 과반수 확보란 목표가 무색하게 의석수에서 제1당 자리조차 민주당에게 빼앗기는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이 같은 비정상적 사천으로 패배한 데 대한 자성은커녕 바로 그 해 열린 8·9전당대회에서 대통령의 복심이던 이정현 대표가 당선됐을 뿐 아니라 지도부 대다수가 친박계로 채워지면서 또 다시 역사적 퇴행 상태로 접어들었고, 이 대표 당선을 축하하고자 청와대로 초청해 송로버섯 등 진수성찬을 차려줬던 박 전 대통령이 며칠 뒤 광복절 기념사에선 ‘콩 한쪽도 나눠먹어야 한다’며 국민들에게는 노동개혁 필요성을 호소하자 그 불통과 독선적 언행에 보수 매체들까지 질타하기에 이르렀다.
이 시점엔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미르재단 설립 및 모금 개입 정황 보도가 TV조선을 통해 이미 나온 뒤였고 9월 20일 청와대는 최순실 씨가 미르·케이스포츠재단 설립 및 운영 개입 정황까지 보도됐음에도 청와대는 최씨가 비선실세라는 의혹에 대해 ‘전혀 언급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는 반응을 내놓은 데 이어 이틀 뒤인 22일엔 박 전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직접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들이 사회를 뒤흔들고 혼란을 가중시킨다”며 강공으로 맞서는 등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오판을 거듭했다.
이를 보여주듯 나흘 뒤인 26일엔 최순실 씨 딸 정유라 씨의 이화여대 입학 특혜 의혹 보도가 터지고 그로부터 이틀 뒤엔 시민사회단체들이 미르·K스포츠재단 관련 의혹을 규명해달라며 최순실 씨 등을 검찰 고발하였고 그 다음날엔 전경련이 두 재단 해산을 전격 발표하는 등 상황은 걷잡을 수없이 빠른 속도로 전개됐으며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최 씨가 대통령 연설문을 수정한다는 고영태 씨의 발언까지 나왔는데도 박 전 대통령은 또 “재단 관련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면 엄정히 처벌”하라는 방관자적 대응으로 일관했다.
다음 날엔 2017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통해 개헌 추진을 천명하며 뒤늦게 국면 전환을 시도했지만 같은 날 저녁 JTBC가 이른바 ‘대통령 연설문’이 담긴 최씨의 태블릿 관련 보도를 내놓으면서 더는 부인하기 어려워져 박 전 대통령은 25일 첫 대국민사과문을 통해 최씨와의 관계를 인정하기에 이르렀는데 그동안 정부가 내놓은 해명이 거짓으로 비쳐지면서 박 전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율로 인식되던 20%대까지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최씨의 여죄를 밝혀내야 한다”는 김무성 전 대표나 “사과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한 유승민 전 원내대표와 달리 친박계인 이정현 대표는 “나도 연설문 쓸 때 친구 얘기를 듣곤 한다”며 국민감정과 동떨어진 반응으로 대응했고 이처럼 여당 지도부의 일방적 비호와 안이한 상황인식 역시 민심을 한층 자극해 박 전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첫 촛불집회가 열리기에 이른다.
정부여당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가운데 최씨가 구속된 뒤 가진 11월 초 박 전 대통령의 두 번째 대국민 사과조차 성난 민심을 가라앉히지 못하면서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은 4일 대통령 지지율이 5%로 추락했다는 결과를 내놨고, 이 지경인데도 당 대표는 사퇴를 거부하고 친박계 역시 이에 힘을 실어주는 등 계속해서 민심과 괴리된 모습만 보여주면서 새누리당 지지율 또한 같은 달 11일 창당 후 최저치인 17%로 떨어졌다.
사실상 국정운영 동력이 모두 꺼져버린 셈인데, 끝까지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챙기는 듯한 행보를 보이며 퇴진 의사가 없음을 내비쳤으나 야당은 반사효과를 극대화하고자 최대한 빠르게 대선을 치를 수 있는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기에 이르렀고, 새누리당에선 김무성 전 대표 등이 헌정질서 회복을 통해 민심을 수습하고자 11월 13일 “탄핵의 길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정계 원로들까지 ‘4월 하야’를 호소하고 친박 핵심 의원들은 명예퇴직을 제안하고 나서자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진퇴를 국회에 맡긴다는 입장을 발표했는데, 새누리당에선 ‘4월 퇴진, 6월 대선 실시’란 당론을 내놨고 청와대도 이를 존중했으나 이미 12월 초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81%가 탄핵을 외칠 만큼 때늦은 대응이었고 박 전 대통령은 결국 국회 표결을 통해 탄핵되었다.
헌법재판소의 박 전 대통령 탄핵 판결문이나 탄핵을 주장한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의 발언처럼 탄핵은 민심이 격앙된 가운데 헌정질서 수호를 위해 내린 불가피한 결정이었는데, 이를 놓고 옳냐 그르냐 하는 논쟁은 애초부터 개개인의 도덕적 신념을 근거로 하다 보니 초점이 어긋났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친박계에서 요구해오고 있는 ‘탄핵이 옳았냐’는 토론이나 논쟁은 결국 ‘배신자 낙인찍기’로 이어질 가능성만 클 뿐 계파 갈등을 수습하고 당이 미래로 나아가는 데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박 전 대통령의 탄핵도 탄핵이지만 그보다 이렇게 보수가 궤멸되게 된 데에는 실상 내부분열이 상당한 원인으로 작용해왔기 때문인데, 멀리는 지난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있었던 이명박과 박근혜 당시 후보 간 대결이 대표적이었고 이 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치러진 2008년 18대 총선에선 친이계의 친박 공천 학살이 자행되었으며 2012년엔 당권을 박 전 대통령이 쥐면서 반대로 친이계에 대한 보복에 나서는 등 공천을 무기삼아 상호 충돌이 계속돼왔다.
친박과 비박의 분열은 20대 총선에선 절정에 달했고 심지어 탄핵 정국 이후에도 그 결과에 따른 책임소재만 따지며 격돌하다가 보수정당 사상 최초의 분열 사태까지 일어나기도 했는데, 자해에 가까운 이 같은 행태를 중단하지 않은 채 내부 총질을 계속한 끝에 결국 6·13지방선거에서도 참패를 면치 못했고 이런 기조는 결과적으로 정부여당의 기세만 한껏 올려준 꼴이 됐다.
지금도 당내 일부에선 박 전 대통령 탄핵을 놓고 시시비비 토론해보자거나 아예 사과하라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데, 이미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은 헌재에서 헌법적 판단에 따라 결론을 내린 부분이고 법치주의를 중시하는 보수주의자라면 이를 문제 삼는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태도로 그저 보수진영 내란을 일으키겠다는 의미 밖에 되지 않는다.
앞서 박근혜 정부가 끊임없는 내부 총질과 내부 비방 속에서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걸었음에도 교훈을 얻지 못한 채 탄핵의 잘잘못을 따지자고 한다면 최대 수혜자는 보수진영이 아니라 다시금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될 것이고, 향후에도 우파 보수의 화합 없이는 보수가 좀처럼 살아남을 돌파구를 마련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누군가 여전히 얘기하고 있는 배신자론은 전근대적 왕정시대가 아닌 이상 특정 개인이 아니라 헌법과 법률에 규정된 대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는 당위성 앞엔 결코 있을 수 없는 주장이며 국회의원이란 신분 자체가 공적영역에 속하기에 사적 영역인 ‘배신자’ 프레임으로 보수진영 내부를 흔든다는 것은 모두가 죽는 공멸의 지름길이란 점부터 유념해야 한다.
아울러 장차 보수진영은 2012년 공천 학살을 당했음에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선운동을 도왔던 김무성 의원처럼 보수의 미래를 위해선 계파적 사고에서 벗어나 모범을 보이기 시작한다면 희망을 볼 수 있을 것이며 지금과 달리 보수인사라면 누구든 함께 단일대오를 형성해 적극 정부여당에 대응하는 자세를 갖는 것만이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는 ‘외통수’임을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