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육체'로 나의 '정신'을 드러내어 보인다
나의 '육체'로 나의 '정신'을 드러내어 보인다
  • 이문원
  • 승인 2004.06.29 16: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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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나우먼" 전
예술의 표현개념에서 흔히 등장하는 '육화'라는 단어를 되살펴보자. 이는 모종의 추상적인 개념을 인체의 영역으로 밀어넣어 재분출시킨다는, 복잡하고 쉽지 않은 과정을 말하는 단어이며, 일반적으로 작가가 자신의 영감을 불어넣은 '인물'을 '문자'의 형태로 풀어내어 적어내리고, 이를 다시 '배우'가 '흡수'하여 표현해내는 과정을 가리키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또 하나, 이 단어는 대개 '극예술'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작업방식에 제한되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pkm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브루스 나우먼> 전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 '고정관념'은 철저히 깨어지고 말 것이다. 미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이자, 앤디 워홀, 사이 톰블리 등과 함께 '개념주의 미술'을 이끌어낸 선두주자 중 한 사람, 가장 작품값이 비싼 10대 생존 작가로 꼽히기도 하는 '인기있는 거장'이기도 한 브루스 나우먼의 조각, 드로잉, 비디오 아트 작품들을 모아놓은 이번 전시는, 바로 브루스 나우먼 '자신'이 작품 안에 등장하여 작품이 요하는 표현양식을 '육화'시키고 있는 여러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런 혁명적인 의식전환은 '캔버스'에서 '비디오'로 전이된 현대미술의 표현 '창' 변환으로 인해 이뤄질 수 있었는데, 나우먼 본인이 자신의 몸에 페인트를 칠하는 모습을 담은 '보디 아트' 작품 '아트 메이크업'과 역시 자신이 한 목장에서 말뚝 받을 구덩이를 파는 모습을 기계 소리와 함께 담아낸 '유용한 장소 만들기', 남근의 이미지를 담은 형광등관이 나우먼의 가랑이에서 튀어나오는 모습이 보여지는 흑백 비디오 작품 '혈광등관 다루기' 등의 작품들은 '재료'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을 깨고 '자신의 신체'를 중심재료로 삼는 미술형식이 얼마나 순수하고 원초적인가를 되묻고 있는 작품들이다. 비록, 이를 담는 '형식'이 테크놀로지의 총아인 '비디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얼핏 '고정관념을 깨는 과정', 그 자체에만 의미를 두는 팝아트의 '그 이후'라는 비판이 나올 법도 하지만, 브루스 나우먼의 작품들은 이런 지적 통쾌감을 넘어서는 감동을 관객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그 어떤 '도구'도 사용하지 않고 '신체'에만 바탕을 둔 예술만이 인간의 상상력과 그 한계를 명확히 짚어주는 형식이며, '작가' 자신의 '신체'만이 작품이 지니고 있는 모든 인간적 성취와 딜레마를 보여주는 가장 이상적인 '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며 느껴지는 그 처절한 감동은, 다른 어떤 작품들에서 느껴지는 그것과 확연히 구분될 수 있는 '인간적 감흥'일 것이다. (장소: pkm갤러리, 일시: ∼2004.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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