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프로야구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모 야구팀 소속 나까치(가명) 선수는 해태와의 경기를 위해 광주로 내려갔다. 갑작스러운 여자친구의 결별 선언에 상처 입은 나까치는 실연의 아픔을 잊고 야구에 전념하기 위해 삭발을 강행하고 호텔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를 잡아탔다. 얼마 후 경찰들이 나까치를 잡으러 호텔에 들이닥치고 트레이닝 차림으로 신분증을 소지하지 않았던 나까치는 영문도 모른 채 체포되고 마는데… 과연 이 야구선수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건을 재구성 했다.

1989년 봄을 뜨겁게 달구던 또 하나의 이슈는 지강헌과 12명의 탈주범 사건. 1988년 끔찍한 인질극 끝에 주범 일부는 사살되고 생포 됐지만 최후의 한명 김길호는 잡히지 않고 도주 중이었다. 경찰은 5백만원의 현상금을 걸고 전국 반상회를 통해 몽타주 전단 17만장을 배포 탈주범을 쫓고 있었다.
애인과의 결별, ‘악몽’의 시작
모 야구팀 소속 나까치(가명)선수는 당시 소속 구단의 계속되는 성적부진과 슬럼프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야! 이래갖고 원정경기 이기겠냐? 잘한다. 잘해”
“나까치, 너 애인 찾아왔다. 나가봐!”
힘든 생활 속에 유일한 희망은 그의 애인 ‘엄지’(가명) 뿐이었다. 엄지는 그에게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였다.
“엄지야 여긴 웬일이야?”
“할말이 있어서…”
“무슨 말?”
“우리 이제 그만 헤어지자”
갑작스런 애인의 이별 통보에 나까치는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고 아픔을 추스릴 틈도 없이 해태와의 원정경기를 위해 광주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소속팀의 성적부진으로 감독과 코치들이 선수들을 압박해오자 나까치는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는 생각에 사랑하는 엄지를 잊고 오로지 야구에 전념하기로 결심한다. 예나지금이나 모든 결심의 시작은 삭발… 나까치는 멀리 광주에서 야구선수로의 필승을 다짐하며 삭발식을 거행했다.

그 무렵 광주일대에서는 탈주범 김길호를 자처하는 강도?인질 사건이 연일 계속되고 있었다.
“김길호 그 놈이 아직도 안잡혔담서?”
“그러게 말이여… 어디 불안해서 살것어?”
때문에 광주의 분위기는 무척이나 흉흉했고, 밤이면 거리에서 사람 그림자를 찾기 힘들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어두운 길가에 택시를 세우는 수상한 손님이 있었다.
백밀러로 손님을 힐끔거리던 택시기사 ‘의심남’(가명)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험악한 인상 하며 빡빡민 저 머리 영락없이 탈주범 김길호 아녀…’
택시기사 의심남은 김길호와 너무 닮은 야구선수 나까치를 보고 두려움에 떨었다. 의심 많은 택시기사는 일단 목적지에 나까치를 내려주고 걸음아 나살려라 줄행랑을 친 후 경찰에 신고부터 했다.
“네? 김길호를 봤다구요?”
“그랑게 내가 시방 김길호 있잖여, 갸를 시방 백제호텔에 내려줬어라.”
택시기사 의심남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비상사태에 돌입, 대거 인원이 호텔로 출동했다. 의심남의 진술에 따라 인상착의를 설명하고 그가 묵고 있다는 방을 급습한 경찰은 더욱더 확신을 갖기 시작했다.
용의자가 묵고 있다는 그 방에는 범행에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흉기, 야구 방망이와 흙 묻 운동복 등이 나뒹굴고 있어 탈주범 김길호의 아지트가 분명한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벌써 김새 채고 도망간거 아녀?”
경찰이 용의자를 찾아 방을 뒤지고 있던 찰나, 야구 방망이를 들고 나까치가 등장했다.
“꼼짝마! 너 탈주범이지?”
“야… 야구선순데요!!”
야구선수라고 주장하는 나까치의 말을 무시한 채 경찰들은 나까치를 강제 체포해 연행하려했고 오해로 인해 체포되는 기로에선 일촉즉발의 순간, 동료들 덕분에 나까치는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삭발한 야구선수를 탈주범으로 오해한 한바탕 해프닝. 어쨌거나 시민들의 투철한 신고정신 덕분에 1990년 7월 탈주범 김길호는 드디어 검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