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업계를 믿을 수 있나요.” 최근 소비자들이 심심찮게 내뱉는 말이다. 국제적 식품 악재로 대두되는 멜라민 파동이 본격적으로 국내에 상륙하며 먹거리에 대한 신뢰가 어느 때 보다 흔들리고 있다. 이에 따라 식품업계의 표정도 심상치 않다. 식약청에서 멜라민 미검출로 확인된 제품에서 멜라민이 다시 검출되는가 하면, 식품업체도 쉬쉬하기에 바빴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탓이다.
“멜라민 안전하다”는 당국과 식품업체, 뒤늦은 멜라민에 된서리
식품업계 말 바꾸기에 소비자 뿔나 “도대체 뭘 믿고 먹으란 거냐”
가열되는 멜리만 파문 뒤늦은 사과문 발표로 불신 사태 진정될까
최근 국내 식품업계들은 줄줄이 초상집 분위기다. 멜라민 파동이 본격적으로 상륙하면서 식품류에 대한 불신이 가중되는 탓이다. 과자류에서 잇따라 멜라민이 검출되면서 과자 판매가 뚝 떨어진 것은 물론이고 일부 제과회사에는 소비자 항의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심지어 멜라민 파동의 여파는 과자 뿐만 아니라 분유, 커피 등 유제품으로 확산되는 모양세다. 최근 대형할인 마트의 아이스크림, 커피 등은 매출이 15%이상 추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사결과도 믿을 수 없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 같은 식품업계의 파동이 사실상 예견된 것이었다고 분석한다. 중국은 세계적으로 식료품 수출국가임과 동시에 저질 품목을 유통시켜 물의를 일으키는 단골인 탓이다. 이에 반해 정부 당국과 식품업체의 검증은 논란만 일으키고 있다.
현재 식품의약품안정청은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금까지 멜리민 파동으로부터 안전하던 국내 식약청 및 농림수산부의 발표오하 달리 지난 9월24일 해태제과의 미사랑 카스타드와 제이앤제이인터내셔널의 밀크러스크를 시작으로 가공식품 업계가 멜라민 공포에 휩싸였다.
가장 큰 문제는 식약청의 발표가 신뢰를 잃고 있다는 점이다. 식약청은 지난 9월30일 화통앤바방끄(주)가 중국에서 수입해 판매하는 ‘고소한 쌀과자(유통기한 2009·6·24)’와 동서식품이 들여온 ‘리츠샌드위치 크래커치즈(유통기한 2009·3·23)’에서 멜라민이 추가로 검출됐다고 밝혔다.
이 중 ‘고소한 쌀과자’는 지난 9월26일 발표된 ‘멜라민이 검출되지 않은 123개 적합 품목 명단에 포함됐던 제품이다. 불과 4일만에 결과를 뒤집은 셈이다.
지난 26일 발표 때 대전지방식약청은 ‘고소한 쌀과자’를 ‘적합’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29일 중복 검사를 실시한 부산지방식약청에선 동일제품에 대해 멜라민 검출 판정을 내렸다.
이로 인해 식약청이 지금까지 발표한 ‘적합’ 제품 전체에 의심이 가고 있다. 똑같은 원료로 똑같은 공정을 거친 동일 제조일자 제품에서도 서로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식약청 관계자는 “해당제품이 같은날, 같은 공정에서 만들어 졌더라도 원료가 균등하게 섞이지 않는다면 일부 제품에서만 멜라민이 발견 될 수 있다”라며 “추가 조사를 통해 멜라민 검출 여부를 면밀히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제품별로 멜라닌 함유량이 다를 수 있는 만큼 불안은 확산되는 모양새다. 식약청이 모든 제품을 검사하기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고, 또 최대한 검사하더라도 정작 검사품목이 아닌 소비자에게 제공되는 제품에서 멜라민이 검출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 일각에서는 “식약청의 검사방법을 믿을 수 없다”면서 “4일만에 검사 결과가 뒤집힌다며 다른 제품에서도 같은 일이 생기지 말란 법이 없지않느냐”고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식품업계도 말 바꾸기 일색
식품업계도 소비자의 불신을 가중시키기는 마찬가지다.
해태제과는 식약청이 국내 과자에 대해 검사를 시작할 당시 ‘미사랑제품은 유제품을 전혀 쓰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가 다시 ‘유제품을 쓰긴 하지만 원료 공급업체가 중국에서 문제가 된 회사가 아니다’고 번복했다. 롯데제과와 오리온도 지난 9월19일 자사가 중국에서 들여오는 제품은 각각 ‘애플쨈’과 ‘카스타드’ 한 품목뿐이라고 밝혔으나, 식약청이 판매금지한 중국산 과자 목록을 보면 롯데의 ‘딸기쿠키’와 오리온의 ‘미카카오케익’ 등 다른 제품들이 더 포함돼있었다.
동서식품도 식약청 검사결과가 나오기 전 멜라민 함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에 대해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안일한 태도를 보이다가 결국 뒤늦게 수습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소비자 신뢰가 무너지는 것도 이 대목이다. 결국 자체적으로 멜라민을 검출하지 못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멜라민 파동만 피해가기 급급했다는 지적이다.
실제 식품들 사이에는 원산지 ‘중국산’이라는 표현 대신 ‘수입산’으로 돼 있어 정작 이 품목들이 어디서 수입되는지 소비자가 알지 못했던 것. 이에 따라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수입산’자체를 못 믿겠다는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해당 업체 측의 이런 눈가리기에 대한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소비자단체 한 관계자는 “원가를 줄이기 위해 멜라민이 포함된 중국산 원료를 무책임하게 사용한 일부 국내 대기업의 윤리적인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며 “이를 공개하긴커녕 ‘수입품’으로 덮은 것도 식품업계의 고질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재 해당 멜라민 파동에 거론된 업체들은 홈페이지 등에 사과문을 올리고 소비자 달래기에 한창이다.
해태제과는 “9월29일 현재 직접 거래처를 비롯한 전국 대부분의 거래처에서 해당 제품 회수를 완료했으나 아직까지 몇몇 점포에는 소량이 남아 있을 수 있어 제품을 발견하면 신고해 달라”고 부탁했다.
동서식품도 “소비자 여러분과 거래선 여러분께 깊이 사과 드린다”며 “수입 판매하고 있는 ‘리츠 샌드위치 크래커 치즈’ 비스킷 제품에서 멜라민이 검출된데 대해 깊이 사과 드린다”고 밝혔다.
이밖에 식품업계도 위기 해법에 고심하는 모양새다. 일부 멜라민이 검출된 제품의 이야기가 남 일이 아닌 탓이다. 소비자들의 불신을 한 몸으로 받고 있는 한편 식약청 발표에 언제 자사의 제품이 호명될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에 식품업계 CEO도 발벗고 나섰다. 지난 10월2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멜라민 사태 관련, 식품안전 대책에 대해 논의하는 긴급 조찬회동을 가졌다. 식품사 대표들은 멜라민 사태와 관련된 유감의 뜻과 함께 식품안전 문제의 재발 방지를 다짐하는 내용의 대국민 사과안도 함께 채택했다. 조찬 모임엔 박준 농심 사장, 임동인 대상 대표, 김상후 롯데제과 대표, 서남석 삼립식품 대표, 정종헌 매일유업 대표 등 18개 식품회사 대표가 참석했다.
긴장도 높아지는 멜라민 파문
식품사 대표들은 이날 모임에서 멜라민 사태처럼 식품안전을 위협하는 대규모 비상사태 발생시 식품공업협회 회원사가 총동원돼 공동 대처하기로 했다. 일종의 ‘식품안전 크러스트’를 운영하고 회원사의 유통망도 총동원한다는 것이다. 식품사 대표들은 또 중국 현지공장 또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의 제품을 수입할 경우 현지에 연구소 인력을 상주시켜 원재료 검사부터 제품 생산과정 전반을 관리토록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식품업계의 뒤늦은 조치가 어떤 효과를 빚어낼지는 아직 미지수다.
중국 언론들은 지난해부터 멜라민을 섞은 가짜 단백질 70톤을 유통시켜온 일당이 적발됐다고 보도했다. 첨가한 멜라민만 15톤, 현장에서는 가짜 단백질 6톤도 압수했다는 것. 당초 중국 정부는 36명을 체포하고 멜라민 222.5kg을 압수했다고 발표했지만 이 사건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어 사건 축소 의혹을 받고 있다. 또 분유에서 멜라민이 처음 검출된 싼루사가 지난 8월 당국에 그 내용을 보고하면서 언론을 통제해 달라고 요청한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전 세계적으로 멜라민 공포는 아직 진행형이다. 이에 국내 식품업계로 미친 멜라민 파동이 어떤 결과를 빚어낼지 시선이 집중되는 대목이다.
▶ 멜라민이란 무엇?
멜라민은 식품용 원료와는 거리가 먼 공업용 화학물질이다. 암모니아와 탄산가스로 합성된 요소비료를 가열해 생산되는 멜라민은 통상적으로 음식물에서 거의 검출되지 않는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멜라민과 포름알데히드, 방부제 등을 함께 섞어 천연수지처럼 만든 레진(resin)은 제품의 윤기나 광을 내는 데 사용되며, 이 중에서도 전자레인지 등에 쓰도록 한 형형색색의 주방용 플라스틱이 대표적이라고 한다. 멜라민이 들어간 식기나 주방용품들의 경우 뜨거운 프라이팬의 기름이나 열기에 서서히 녹아내려 음식물에 섞일 수도 있으므로 멜라민 주방기구나 식기가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게 일부 전문가들의 견해다.
멜라민 섭취사례가 흔치 않은 만큼 인체 유해성에 대한 보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미국 환경보호국(EPA)이 지난 99년에 낸 보고서를 보면 실험쥐 한 마리당 3.4g/㎏의 비율로 멜라민을 먹이자 절반의 쥐가 죽을 정도로 높은 치사율을 보였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쉽게 말해 실험쥐의 몸무게를 300g으로 가정했을 때 1g정도의 멜라민 함량으로도 쥐에게는 치명적인 것으로 볼 수 있는 셈이다.
이미 중국에서는 멜라민이 들어간 분유를 먹은 유아들이 사망한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중국에서 만들어져 미국으로 수출된 동물사료에서 발견된 멜라민은 수많은 개와 고양이들이 신장질환으로 죽게 되는 계기가 됐다. 현재는 분유뿐만 아니라 얼린 요거트와 캔 커피에서도 멜라민이 발견되는 상황. 이렇게 멜라민이 첨가된 음식물은 모두 멜라민으로 오염된 우유로 만들어졌다.
왜 멜라민을 우유에 섞는 것일까.
중국 측에서 멜라민을 첨가하는 이유는 단백질 농도검사를 기만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유에 대한 부피를 증가시키기 위해 물과 우유를 섞는다. 이러면 우유에 포함된 단백질이 묽어진다. 회사에서는 단백질 농도를 보통 질소함량으로 검사한다. 멜라민에는 질소가 아주 풍부하기 때문에 멜라민을 섞으면 검사시 단백질농도가 증가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비정상적으로 질소함량이 높은 변형된 우유가 만들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