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J 비자금 의혹’이 정가를 강타했다.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 국감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100억짜리 양도성예금증서(CD) 사본과 발행사실확인서를 공개했다. 주 의원은 CD와 발행사실확인서의 입수 경위를 설명하는 한편 DJ 비자금과 관련한 여러 의혹들을 제기하며 검찰에 수사를 촉구했다. 또한 증거자료를 검찰에 제공하고 협조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나 100억짜리 CD와 DJ 비자금의 연관관계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설명하지 못해 ‘폭로’에 불과하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법사위에서 활동하고 있는 ‘DJ의 복심’ 민주당 박지원 의원도 “즉시 수사하라”고 역공을 폈다. 주 의원이 제기한 의혹들은 이미 법의 판결을 받은 것들이라는 것이다.
주성영 CD, 발행사실확인서 공개 “‘노무현 정권 4대 의혹’ 조사하라”
조갑제 주장·언론보도 ‘재탕’ ‘삼탕’…‘폭로’에 그친 ‘DJ 비자금 의혹’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이 ‘DJ 비자금’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정조준 했다. 국감 전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100억짜리 양도성예금증서(CD)를 확보했다”며 “모 은행의 ‘발행사실확인서’와 함께 국감장에서 국민에게 공개하겠다”고 ‘DJ 비자금 은닉 의혹’ 폭로를 벼르던 주성영 의원은 지난 20일 법제사법위 대검찰청 감사에서 폭탄을 터뜨렸다.
국감장에 투여된 ‘DJ 비자금’
주 의원은 공개를 미루던 DJ 비자금 은닉의 증거인 ‘CD’와 ‘발행사실확인서’를 오후 국감장에서 전격 공개했다.
주 의원은 이 CD 사본 1부와 중소기업은행 영업부 명의의 발행사실확인서를 현재 공직에 있는 전직 검찰 관계자로부터 2006년 2월 말~3월 초 사이에 건네받았다고 밝혔다. 중소기업은행이 2006년 2월8일 발행돼 같은 해 5월10일 만기인 이 CD 사본의 뒷면에는 중소기업은행 영업부 담당자의 발행사실 확인 서명이 돼 있다.
이에 대해 주 의원은 “발행인은 주식회사 E였는데 등기부등본을 보니 서울 신당동에 위치한 페이퍼 컴퍼니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또 “검찰 관계자로부터 직접 김 전 대통령의 비자금과 관계있다는 증언을 들은 만큼 공개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그가 “왜 수사를 하지 않느냐”고 묻자 CD 사본과 발행사실확인서를 건낸 이가 “노무현 (정부의) 검찰에서 어떻게 수사하느냐”고 했다는 것.
주 의원은 CD 사본을 대검에 제출하고 이에 대한 수사를 요청하며 “내가 검찰이 아닌 이상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다”면서 “협조를 요청하면 적절한 방법으로 검찰에 안내하겠다”고 적극적인 수사협조 의지를 밝혔다.

그는 “여러 제보 중에는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이휘호 여사가 국내 모 은행을 통해 미국 시카고로 거액의 돈을 부쳤다는 제보도 있었다. 이 제보의 경우 액수가 너무 터무니없어 공개하지 않는 등 우리도 이번 공개에 많은 고심을 했다”고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주 의원은 ▲공기업 부정부패 ▲문화예술 예산 약탈·횡령 ▲바다이야기 불법자금 해외도피 ▲DJ 비자금 은닉 의혹을 ‘노무현 정권 4대 의혹사건’으로 규정하고 임채진 검찰총장에게 진상조사를 촉구했다.
그는 “DJ 비자금과 관련한 소문과 의혹은 실로 무성하다”며 “<월간조선> 등에서는 상당한 근거를 가진 주장을 일관되게 해오고 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존중하는 차원에서라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준하는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김 전 대통령 비자금의 중심인물로 알려진 조풍언씨에게서 나온 자금이 김홍업씨와 김홍일씨의 빌딩 구입에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과 <월간조선> 2006년 8월호와 2007년 1월호에 실린 미 FBI에서 김대중 비자금으로 추적되는 수조원의 단서를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는 보도를 소개했다.
주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신한은행의 비자금이 조성돼 그 문제에 대해 김만복 전 국가정보원장이 개입하고, 또 이희호 여사 쪽으로 자금이 흘러나간 정황이 있다”면서 “(자금규모는) 2조원, 2조원, 2조원 해서 모두 6조원이라는 이야기였는데, 그 문제에 대해서는 검찰에서 내사를 하고 있는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또 다른 ‘DJ 비자금’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불발탄 된 DJ 비자금 ‘폭탄’
그러나 이날의 ‘폭로 폭탄’은 불발로 끝났다. 100억원짜리 무기명 CD가 ‘DJ 비자금’이라는 확실한 근거를 대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의 주장은 지난 9월1일 보수우파 논객인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내용과 유사했다.
당시 조갑제 대표는 “소문과 의혹이 무성한 이 부분에 대한 국가적 조사는 국민의 알 권리를 존중하는 행위”라며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준하는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법사위 국감장에 있던 김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반격에 나섰다. 박 의원은 “전형적인 DJ 죽이기”라며 “전혀 사실이 아니다. 정치인도 책임 있는 발언을 해야 되고 면책특권을 활용한 ‘아니면 말고’식 폭로는 지양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보도에 따르면 검찰 관계자가 2006년 100억짜리 CD 사본을 주 의원에게 전달했다고 하는데 그런 CD가 있으면 즉시 수사하길 바란다”는 공격으로 맞대응했다.
이어 “검찰이 그런 자료를 확보했으면 수사를 해야지 왜 사본을 만들어 주느냐. 수사는 하지 않고 자료를 의원에게 전달했다면 이는 피의사실 공표이며 검찰의 직무유기”라고 임 총장을 질타했다.
박 의원은 주 의원이 ‘DJ 비자금 의혹’의 근거로 삼고 있는 듯한 ‘DJ 정권이 2001년 국내 금융기관을 통해 비자금 3000억원을 조성해 이를 대북송금과 미국 뉴옥 부동산 구입 자금으로 썼다’는 <월간조선> 2007년 1월호의 ‘DJ 정권 비자금 3000억원 조성’ 기사를 거론하며 “<월간조선>은 6명의 은행장들에게 DJ가 500억원씩 가져오라고 해서 3000억원을 조성했다고 하지만 은행의 ‘은’자만 알아도 이런 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이어 “김 전 대통령 측에서 항의를 하니까 <월간조선>은 해명보도문을 전면으로 게재해서 자기들이 잘못 보도했다는 것을 시인하고 사과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특히 “이 기사를 쓴 기자는 소위 이명박 대선캠프에 가서 일하다가 지금은 모 공기업 감사로 있다”고 덧붙여 현 정권의 김 전 대통령 ‘음해설’을 부각시키면서 “잘못된 보도를 시인하고 반박문을 게재한 언론 보도를 보고 음해판을 벌이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주 의원의 ‘폭로’를 꼬집었다.
박지원 “전형적인 DJ 죽이기. CD 있다면 검찰 즉시 수사하길 바란다”
‘내사설’ 휘말린 검찰, 대검 중수부서 “100억원 CD 신빙성 확인 중”
해당 기자는 당시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기소돼 벌금형에 약식기소 됐으며 지난 총선에는 한나라당 후보로 공천을 신청했다 낙천한 후 현재 한국산업인력공단 감사로 있다.
이에 임 총장은 “2006년 일어난 일이라 잘 파악하지 못했고 총장 재직 중엔 그런 것을 들은 적도, 보고받은 적이 없다”고 해명하면서 “100억짜리 CD를 확보했는지 알아보겠다”고 답변했다.
뿔난 DJ “고소로 대응하겠다”

주성영 의원의 ‘DJ 비자금 의혹’ 제기와 관련 김 전 대통령측은 “월간조선 재방송 수준에 불과한 해괴한 음해”라고 일축하고 있다. 이와 함께 법적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DJ측 최경환 김대중 전 대통령 공보 비서관은 성명을 내고 “확인되지도 않은 정체불명의 CD를 갖고 전 대통령을 음해하면 안 된다”며 “김 전 대통령 내외는 단 한푼도 부정한 비자금을 만든 일도 없고 돈을 받은 적도 없다”고 강조했다.
최 비서관은 “주 의원의 주장 대부분은 미국에 있는 일부 무책임한 교포신문들이 수 년 동안 거듭 주장해 온 허무맹랑한 내용으로 국내 일부 언론도 이를 보도했다가 법정에서 패소하고 정정보도를 한 일이 있다”며 “무책임한 발언으로 전직 대통령 내외의 명예를 훼손한 만큼 주 의원을 고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최 비서관은 또 “모 언론에서 DJ 비자금 3000억원설을 보도했다가 사과문을 실은 적도 있다. 보도했던 두 언론인이 공기업과 청와대 비서실로 갔는데 (주 의원도) 그걸 바라는 건가”라고 캐물었다.
민주당도 “허무맹랑한 폭력식 정치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고 주 의원을 비난했다.
민주당 최재성 대변인은 “주 의원이 폭로한 내용은 재탕 삼탕, 수십탕을 했던 한약 찌꺼기와 같은 폭로”라며 “사법적 판단도 이미 진행된 일을 다시 꺼내 흔드는 주 의원의 모습이 측은하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이어 “옛날 방식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아보기 위해 허무맹랑한 폭로를 하는 것은 대한민국 정치 발전을 위해 용납할 수 없다”며 “차라리 면책특권 밖으로 나와 이 문제를 확신있게 제기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파면 맞은 검찰 ‘검풍’ 일으킬까
주성영 의원측은 이후 ‘DJ 비자금 의혹’에 대한 자료 등에 대해 “검찰에 모든 것을 넘겨줬다”며 검찰에 공을 넘겼다.
이미 주 의원의 주장으로 ‘내사설’에 휘말린 바 있는 검찰은 이번 사건의 파장 등을 감안,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직접 수사를 지휘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 중수부 관계자는 “주성영 의원이 김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추정된다는 취지로 공개한 100억원짜리 CD의 신빙성을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주 의원에게 CD를 넘긴 전직 검찰 관계자에 대한 조사에도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대검 관계자는 “주 의원이 제출한 CD와 관련해 검찰이 사전에 첩보를 입수한 적은 없다”면서 “문제의 CD가 정치권 주변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가짜인지, 아니면 근거가 있는 자료인지를 철저히 확인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신한은행 비자금 조성 주장에 대해서는 검찰 내부에서 신빙성있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으며 임채진 검찰총장은 “홍업·홍일씨의 자금은 추적을 했지만, 이 부분을 확정하려면 홍콩·스위스의 계좌를 봐야 하기 때문에 공조를 요청해 놓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주 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키로 하고 변호사를 선임해 법률을 검토하는 등 강력한 법적 처벌 의지를 보이고 있는 김 전 대통령측으로 인해 CD의 진위 여부와는 별개로 검찰 수사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아니면 말고’식으로 진행하기에 ‘DJ 비자금’ 의혹은 비중이 크다”며 “실제 주 의원이 국감장에서 발표한 것 외에 사안의 파장을 우려해 거론하지 않는 ‘연결고리’ 등 증빙자료가 더 있을 경우 전 10년 정권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을 제기했다.
그는 또 “최근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는 김 전 대통령에게 보내는 ‘경고’일 수도 있다”며 “크게 뒤흔들다 보면 ‘털어서 먼지 안나리’라는 보장은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