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 마련위해 ‘윤락행위’까지…
주부들이 도박열풍에 휩싸이고 있다. 여자 셋이 모이면 그릇이 깨진다는 것은 옛말. 주부 셋이 모이면 고스톱 판이 벌어진다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다. 남편은 회사에, 아이는 학교에 보내놓고, 알음알음 몰래 치던 주부들의 고스톱이 이젠 상습 도박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심지어 자금마련을 위해 범죄에 가담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가정은 뒷전, 전 재산을 잃어도 헤어나지 못하는 주부 도박 열풍을 본지가 취재해봤다.

가정주부를 대상으로 무허가 카지노 도박장을 운영한 조직폭력배들이 경찰에 검거됐다. 도박에 빠진 주부들은 25명이었고 3개월 동안 판돈은 282억원에 달했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 6일 유령회사를 만들어 카지노 도박장을 개설한 뒤 주부를 대상으로 28억원을 챙긴 혐의로 J파 조직원과 환전소 직원 등 9명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종업원 등 1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그들 말고도 경찰은 상습적으로 바카라 도박을 한 주부 김모(55)씨 등 4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다른 주부 2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몰래 치던 고스톱, 상습도박으로…‘빚 갚으라’ 조폭에게 협박 당해
가정 뒷전, 전 재산 잃어도 헤어나지 못해…가정파탄·사회불안 원인
주택가까지 파고들어
김씨 등 주부들은 지난해 10월부터 3개월간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S빌딩 2층에 모였다. 제일기획이라는 유령회사를 일반회사로 위장한 무허가 카지노 도박장에 출입했던 것. 이들은 도박장에서 하루 평균 200만∼400만원의 판돈을 걸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광역수사대 권두섭 강·폭력수사계장은 “바카라 도박이 다른 도박에 비해 비교적 쉽고 승률이 높다는 모집책의 꾐에 빠져 주부들이 모였다”며 “내부엔 실내 침구를 배치하는 등 주부들을 위한 아늑한 공간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최근 주부들이 도박에 빠진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심지어 이들은 공동묘지 옆도 마다하지 않았다. 경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해 11월16일 수도권 야산에 천막을 치고 수억원대의 도박판을 벌인 혐의로 도박판 운영자 6명과 상습 도박자 2명을 구속하고 59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그리고 여기엔 40~50대 주부 35명이 포함돼있었다.
이들은 지난해 9월부터 최근까지 평택과 안성, 용인 등 수도권 야산을 돌며 한 번에 5만~200만원씩 판돈을 걸고 하루에 200여차례에 걸쳐 6억원대의 속칭 ‘도리짓고땡’ 도박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차량 접근이 어렵고 인적이 드문 야산 20여곳을 옮겨 다니며 대형 천막을 설치해 속칭 ‘하우스’를 개설했다. 또 도박장 입구에 망을 세워 단속을 피할 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이들의 도박 장소가 민박집, 원룸, 게임장, 펜션, 농촌 빈집 등 다양한 형태로 위장돼 최근엔 주부들의 주택가까지 파고들고 있었다. 365일 연중무휴 형태로 운영되는 인터넷 도박이 성행하는 등 우리사회 곳곳에 주부 도박이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었던 것. 한 주부는 전세자금 등 1500만원을 탕진하고 도박 운영자에게 빌린 2000만원을 갚지 못해 3년6개월간 윤락행위를 협박당했다고 털어놔 충격을 주고 있다.
가족해체는 주부의 몫?
주부 도박단들은 대체로 30~50대가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자녀가 학교나 직장을 다녀 상대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주부들은 처음엔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날이 갈수록 도박의 유혹에 빠져나오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충북 청원에서 검거된 주부 A(45)씨도 남편과 두 아이가 있는 가정의 안살림을 책임져왔다. 하지만 1년 반 전 도박에 빠지고 난 뒤 가정은 뒷전이 됐다고 털어놨다. 그는 “가족들을 생각해 그만둬야겠다 생각했지만 막상 판이 열렸다는 연락이 오면 빠지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재미삼아 화투장을 만졌지만 커져가는 판돈의 유혹에 모아둔 쌈짓돈도 모자라 사채까지 끌어 썼다고 고백했던 것.
한 경찰 관계자는 “도박중독에 빠진 주부의 남편이 ‘아내가 집안을 돌보지 않아 가정이 파탄났다’고 제보해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주부들의 중독적인 도박은 자칫 가족해체로 이어질 수 있어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사실 A씨뿐 아니라, 경찰에 적발된 이들 대부분이 도박으로 인해 가족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도박으로 두 차례 입건된 전력이 있는 B씨(38)는 결국 지난 5월 남편과 이혼하고 원룸에서 혼자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우울증치료까지 받은 B씨는 “결혼하고 3년간 애가 안 생겨 스트레스를 받던 차에 아는 언니의 소개로 도박에 발을 들였다”며 “남편이 말릴 때 진작 관뒀어야 했다”며 후회를 감추지 못했다.
최근엔 B씨의 경우처럼 가족 내 문제나 스트레스를 도박을 통해 해소하려는 경향도 보이고 있다. 남편이 직장업무 등을 내세워 가정을 무시하거나 등한시 한다는 느낌을 받은 주부들이 기분장애의 일환이란 정신병적 차원에서 도박에 빠지게 되는 것. 주부들은 도박을 통해 좌절된 욕구를 배출함으로써 가정과 사회와는 애써 거리를 두려는 잠재의식을 갖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가정 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도박에 빠질 경우 더 큰 사회적 문제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의 의견이다. 이는 ‘주부’가 가정에서 아내요, 어머니라는 숭고한 자리를 차지하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개념과는 다른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경찰관계자는 “주부 도박의 경우 가정파탄과 사회불안을 가져올 수 민생침해범죄라는 점에서 폐해가 큰 만큼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며 “가능하면 가정 내 화목이 먼저 자행되도록 가족 구성원들끼리의 따뜻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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