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의 ‘종북(從北)’ 논란이 일파만파로 확산되며 올 12월 대선을 앞두고 대선주자들의 국가관과 대북관 및 정체성 문제가 주요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념을 둘러싼 여야의 공방이 격화되면서 여야 주요 대선 주자들에게 적지 않은 여파가 미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여권은 통합진보당 이석기·김재연 의원에 대한 제명 추진에 이어 민주통합당 임수경 의원의 탈북자 매도 발언과 이해찬 상임고문의 북한인권법 비판 발언에 공세수위를 높이고 있다. 반면 민주당 등 야권은 이에 반발하며 ‘색깔론’으로 이를 규정하는 등 맞대응에 나서며 여야 모두 확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대선주자 대북관 등 정체성, 주요 쟁점 부상
野 “공안정국조성으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野 대선후보, 색깔론 차단하고 국면 전환 꾀해
여권, 안보 이슈 부각 통해 보수층 결집 도모
여야의 이같은 색깔 논쟁은 초기 통합진보당 부정 경선 사태로 촉발된 종북 이념 공방에서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에 대한 자격심사 논란까지 확산되는 등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형국이 됐다.
여야, 이념 공방 치열
특히 자격심사 논란의 당사자인 이해찬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국회 기자회견에서 “매카시적 광풍으로 대선을 치르겠다면 이는 용서할 수 없는 범죄 행위”라며 “지금 새누리당은 종북 용공 광풍을 조장하고 있다”고 강력히 비난했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이 상임고문에 대해 “국회의원으로서 자격을 심사하는 데까지 이를 수밖에 없다”고 언급한 것에 대해 맹공으로 화답하며 이 고문은 “헌정 질서를 유린한 5·16 박정희 군사 쿠데타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계시냐”라며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한 공세도 퍼부었다.
여기에 이명박 대통령도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제57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려는 어떤 자들도 우리 대한민국 국민은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교포 젊은이 중에는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조국을 지키겠다고 우리 군에 자원입대한 사례가 적지 않다”며 “대한민국 헌정 질서를 파괴하려는 자들도 있지만 전쟁이 나면 최전선에서 싸우겠다는 젊은이들의 비율도 우리가 세계에서 제일 높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남도발을 협박하는 북한을 향해 “철통 같은 안보태세로 한반도 평화를 수호하고 어떤 도발에도 준엄하게 응징하겠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박 전 비상대책위원장도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나라를 위해 헌신한 애국선열과 국군장병들이 계셨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고 대한민국의 번영이 있음을 되새긴다”며 “우리가 그분들에게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보답은 지켜주신 조국과 자유를 손상됨이 없이 지켜내고 더 발전시켜 우리 후대에도 물려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야 “색깔론 즉각 멈춰야”
이에 대해 박지원 민주당 비대위원장은 라디오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이 대통령은 종북세력 운운하고 있고, 박 전 위원장은 국가관을 거론하며 색깔론과 이념대결로 분열과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며 “역사와 국민을 위해 시대착오적 색깔론과 사상검증을 즉각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대표 경선에 나선 김한길 의원은 새누리당의 색깔론 공세를 '신(新)공안정국 조성을 통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로 규정하고 “새누리당이 우리당의 당대표 후보인 이해찬 의원에게 퍼붓는 색깔 공세는 현 정부의 무수한 실정을 감추는 한편 신공안정국을 조성하려는 불순한 시도”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인권의 이름으로 평화를 위협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우리 국민은 색깔공세가 아닌 진정성 있는 북한인권 개선을 희망한다”고 이 후보를 향한 새누리당의 공세를 비판했다. 또 "민주당은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냉전의식과 대결주의에 사로잡혀 남북 분단 상황을 정략적으로 활용하려는 새누리당의 낡은 정치 공세에 일치단결해 단호히 맞서야한다"며 당 차원의 대응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전광삼 수석부대변인은 임 수경 의원에 대해 "대국민 전향 선언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지금이라도 국회의원직에서 스스로 물러나라"고 촉구했다.
전 부대변인은 "대학생 시절 대한민국을 반통일 세력으로 규정하고 국법을 무시했던 임 의원이 대북관을 바꿨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며 "지금이라도 국민들에게 북한체제와 주체사상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김일성 수령과 함께 찍은 사진에서는 다정함을 넘어 애절함마저 느끼게 했다"며 "그런 임 의원에게 탈북자들이 변절자로 여겨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여 “어느 나라 국회의원이냐”
김영우 대변인도 서면 브리핑에서 "북한 인권을 논하는 새누리당에 대해 공안정국 운운하는 분들은 도대체 어느 시대 어느 나라 국회의원들인지 모르겠다"고 가세했다.
여야는 논평을 통해서도 일전을 불사했다. 새누리당은 논평에서 "우리의 각오는 분명하다. 피로 지킨 대한민국을 온전히 지키고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이라며 "국토의 수호, 자유민주주의의 수호, 국민의 재산권과 생명 보호는 한 치의 양보도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민주당은 "순국선열과 민주열사들이 지키고 만들고자했던 대한민국은 자유와 정의, 민주와 평화가 강물같이 넘치는 나라라고 믿는다"며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은 순국선열과 민주열사들이 실현하고자 한 대한민국이 진정 무엇인지 깊이 자성하라"고 강조했다.
통합진보당은 "분단을 악용해 권력을 잡고, 민주주의를 파괴해온 역사는 청산돼야한다. 서로 다른 이념을 인정하지 못하고 함부로 정치공세에 활용하는 것은 자유주의도, 민주주의도 아니며 자유민주주의는 더더욱 아니다"라며 밝혔다.
민주통합당 지도부와 유력 당대표 후보군들의 이같은 대응은 박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황 대표 등 새누리당 지도부의 색깔론을 앞세운 공세가 대선에서의 우위를 선점하려는 움직임으로 평가하며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포석으로 보인다.
색깔 정국, 언제까지
이에 따라 박지원 비대위원장과 문재인 상임고문 등 민주당 지도부와 유력 대선 후보도 여권의 색깔론 공세에 맞서 안보관 정립 노력으로 국면 전환을 꾀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박 위원장은 기자간담회를 열어 "차관급인 보훈처장을 장관급으로 격상하는 법안제출을 검토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재향 군인들을 국가가 책임져 주는 제도가 많다"며 "자식에게만 지급되는 독립유공자 연금도 생활이 어려운 손자세대도 받을 수 있도록 신경 쓰겠다"고 말했다.
문 상임고문도 특전사 출신임을 강조하며 경기도 파주의 모 부대를 방문, 배식봉사를 하며 색깔론 논란을 일축했다. 특히 문 고문은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인권 향상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면서도 "종북과 같은 단어를 쓰며 색깔 정국으로 몰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안보 이슈 부각을 통해 중도층의 불안 심리를 자극하고 보수층의 결집까지 도모하는 추세이다. 황 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지도부가 앞서 백령도를 방문해 최고위원 회의를 개최하는 등 안보 행보를 펼친 것도 이같은 모습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낙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