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내 호남출신 의원들, 노 대통령 연정 제안 방식에 불쾌감 표출
연정에 대한 여야간 논의도 앞으로 진전되기 쉽지 않을 전망인 가운데 오히려 연정을 제안한 여권쪽에서 불협화음이 빚어지고 있다.
호남중진인 신중식 의원이 연정에 반발해 탈당의사를 시사하고 나서면서 연정을 둘러싼 여야간 논의가 오히려 여당내 분란 소지로 작용할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는 것.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원도 1일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는 “정책과 노선의 경쟁이 없는 게 지역주의를 극복하지 못하는 핵심적 문제”라며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없이도 지역주의를 극복해 갈 수 있는 길을 개척”하자고 주장하며 일단 ‘연정’에 반기를 들었다.
이처럼 지역구도 해소를 명분으로 내세운 노무현 대통령의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제안을 두고 호남출신 의원들을 중심으로 당내 반발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뒤늦게 심각성을 인식한 당 지도부가 설득에 나 섰지만 일부 의원들의 동요는 가라앉지 않고 있는 상태다.
◆ 호남출신 의원들 심상치 않다
노 대통령의 ‘한나라당 주도 대연정’ 제안 이후 열린우리당 내 호남출신 의원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게 전개되고 있어 당 안팎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이들 호남출신 의원 가운데 일부는 지난 4·30 재·보선 참패 이후 호남지역 민심 이반 현상과 맞물려 ‘탈당설’ 등이 제기된 바 있어, 노 대통령의 ‘연정론’이 호남출신 의원들의 탈당의 계기로 이어질지 주목되고 있는 것이다.
당 전남도당위원장 유선호 의원(전남 장흥·영암)은 지난달 29일 당 홈페이지 올린 칼럼을 통해 “대통령께서는 계속해서 연정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당은 어떠한 의견 수렴 절차도 거치지 않고 있다”며 노 대통령의 ‘연정’제안 방식과 이를 대하는 당 지도부의 태도에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유 의원은 “(이같은) 현재의 상황은 당으로부터 당원이 소외되는 현상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고 이는 당의 혼란과 무기력만을 가중시킬 것”이라면서 “작금의 상황은 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불쾌감을 여과없이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유 의원은 또 “만약 작금의 정치 현실 속에서 이러한(연정) 논의가 부적절하고 오히려 열린우리당의 안정적 운영과 정체성 논란을 가중시킨다면 (당 지도부는) 대통령에게 연정제안을 거두어 주기를 건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그간 당내 호남출신 의원 ‘탈당설’의 중심에 서서 고건 전 총리를 핵으로 한 정계개편론을 폈던 신중식 의원(전남 고흥·보성)도 유 의원이 칼럼을 게재한 같은날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노 대통령의 ‘연정’제안과 그 방식에 대해 분개하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신 의원은 “최근 (노 대통령의) 일련의 발언과 서신내용은 바로 과거 제왕적 총재 이상의 권능으로 당원들에게 일방적으로 내려보낸 고서나 칙령처럼 보인다”고 지적한 뒤 “열린우리당이 그렇게 힘이 없어 보입니까. 열린우리당이 이제 그럴 능력도 자신도 없어 보입니까”라며 노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신 의원은 당 지도부에 대해서도 “이토록 엄청난 정치변화와 나라 전반에 걸쳐 상상을 초월하는 사태에 직면하고서도 당 중앙상임위원회의와 의원총회를 즉각 소집하지 않는 이유는 또 뭔지 아쉽다 못해 어이가 없다”고 발끈하기도 했다.
신 의원은 현재 당적 등 거취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가운데 사실상 ‘탈당’쪽에 무게를 두고 그 시기를 저울질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대통령은 호남에서 만들었지, 자기가 스스로 됐느냐. 한나라당 견제하라고 뽑아줬더니 한나라당에게 권력을 주느냐”라며 가뜩이나 불안한 호남 민심에 ’불을 지른‘ 노 대통령의 연정 제안에 울분을 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내 호남출신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이런 움직임은 노 대통령의 ‘한나라당 주도 대연정’ 제안의 진정성 여부를 떠나, 지난 4·30 재·보선이후 하락세인 호남지역의 당 지지율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한나라당 주도 대연정’제안은 호남지역에서는 절대 용납될 수 없는 것인 만큼 극단적 위기감의 발로라는 것이다.
실제 당 안팎에서는 ‘한나라당 주도 대연정’은 곧 호남을 완전히 포기하자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냐는 말까지 나돌고 있는 상황이다. 자칫 ‘한나라당 주도 대연정’제안으로 향후 호남지역에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몰고 올지도 모른다는 진단이다.
이와 관련, 여당 내 또 다른 호남 출신 의원도 “현재의 지역구도 등 정치 구조적 문제를 감안할 때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 등의 배경에 대해서는 일단 긍정적인 입장”이라면서도 “당과 충분히 상의하고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데… 좋은 방식은 아닌 것 같다”며 돌발적인 방식으로 거듭되는 ‘연정’ 제안에 대해서는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
◆ 연정 반발 확산?
문제는 호남 출신 의원들 반발 움직임이 당내 초·재선 의원들 사이에서도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노 대통령의 제안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면서 “지역구도를 타파하자는 충정은 이해가 가지만 왜 그렇게 자신감 없는 태도를 보이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 의원은 “정말 지역구도를 타파하고 정치문화를 바꾸고 싶으면 대통령과 당원들이 열심히 현장을 뛰면서 민심을 챙기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또 “지금은 북핵 6자회담 등 중 요하게 처리해야 할 다른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의원 역시 “우리당은 과반에 가까운 의석을 가지고 있다. 국민의 지지만 있다면 (대연정이 없어도) 못할 일이 무엇이겠느냐 ”고 반문한 뒤 “지금 여권이 가장 신경써야 할 일은 경제 양극 화 문제이며 이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당의 주요 지지세력인 서민들로부터 외면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수도권의 일부 초·재선 의원들도 28일 밤 긴급회동 을 갖고 연정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모임에서는 여당이 분당될 수도 있다는 우려 섞인 전망이 나왔고, 일부 참가자들은 차라리 노 대통령이 탈당 한 뒤 중립내각을 구성하는 게 낫다는 의견도 개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 대권주자는 ‘연정’ 어떻게...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계로 분류되는 '국민정치연구회(국정연)'에서는 '지역주의 극복'이란 대통령의 대명제에는 인정하면서도 그 방법론으로 제기된 연정, 특히 한나라당과의 연정을 택한 데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분위기다.
장영달 회장은 "지역구도로 인해 생긴 각종 폐해에 대통령이 절망을 느낀 것 같다"면서도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정체성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말해 부정적인 입장을 우회적으로 피력했다.
이인영 의원도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의 차이보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사이의 정체성의 차이는 훨씬 크다"며 한나라당과의 차별성을 부각했고, 우원식 의원은 "한나라당은 지역주의에 기생하고 지역주의를 이용해서 살아 온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과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연정한다는 논리가 이해되지 않는다"며 좀 더 노골적인 반발 조짐을 보였다.
당내 보수그룹인 '안정적 개혁을 위한 의원 모임(안개모)'는 일단 함구한 채, 며칠간 사태 추이를 두고 보기로 했다. '대연정'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기류가 역력하지만 자칫 또 대통령과 지도부에 반기를 드는 것으로 비쳐질까봐, 우선은 몸을 낮추는 분위기다.
특히 정동영계에서는 그동안 대연정론에 대해서 특별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불쾌감은 감추지 못했다.
정동영 장관이 통일부 장관 및 NSC상임위원장을 겸하며 명실상부한 '2인자' 자리를 차지하면서 '포스트 盧'자리의 독점적 지위를 굳혔다고 여겨왔던 터다.
그러나 '한나라당으로 권력이양과 정권교체'이라는 노대통령의 대연정 전략은 사실상 '열린우리당 단독 재집권 전략'을 뿌리채 흔드는 것으로 여당 대선주자 1순위인 정 장관이 대연정론에 가장 큰 결정적 피해를 입었다는 관측이다.
정동영 장관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대통령의 대연정 발언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며 "고도의 정치적 문제라 제 머리로는 잘 모르겠다"고 대연정에 거부감을 나타냈다.
이와함께 우리당은 불법도청 테이프 발견을 계기로 ‘X파일’ 정국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어 X파일 사건 대응기조도 고민거리다. 대연정론에 지나치게 집중할 경우 X파일 정국의 주도권을 야당에 내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나라당이 이번주 특검법안 발의를 기회로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의 특검 도입 요구도 거세질 것으로 보여 당 일각에서는 ‘선 검찰수사 후 특검’이라는 원론 대응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우리당 관계자는 “노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으로 당장 X파일 정국이 연정 정국으로 전환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X파일 사건의 파장이 어떤 방향으로 치달을 지모를 일인 만큼 대응기조를 면밀히 재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당내 ‘연정론’ 반발 조짐이 점차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당은 조만간 의원총회를 개최해 대연정에 대한 소속 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단일대오를 갖출 방침이다. 하지만 지도부의 ‘연정 불씨살리기’ 노력이 당내의 비판적 여론을 쉽게 잠재울지에 대해서는 미지수다. 내달 12일 소집되는 당의 최고의결기구인 중앙위원회가 대연정 당론화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여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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