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어내기에서 쥐어짜기 까지, 유통업계 실태보고서
밀어내기에서 쥐어짜기 까지, 유통업계 실태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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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甲’질을 고발한다

남양유업 사태로 여론이 들끓고 있는 가운데 전통주 제조업체인 배상면주가의 ‘밀어내기(물건강매)’로 대리점주가 자살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더구나 밀어내기 관행이 유통업계 전반에 뿌리깊게 만연해 있는 것으로 속속히 드러나면서 그 해결책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에 ‘갑’의 횡포가 더는 발붙이지 못하도록 관련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유통업계의 밀어내기와 쥐어짜기 실태를 담았다.


 

기업의 평판이 소비자와 주식시장에도 영향
“‘착한기업’이 경쟁에서 살아 남을 수 있다”
집단소송·피해보상 등 공정거래법 개정해야

남양유업 사태가 진화되기도 전에 전통주 제조업체인 배상면주가의 대리점주가 자살하는 사건이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인천에서 배상면주가 대리점을 운영하는 이모(45)씨는 14일 자신의 대리점 사무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씨는 본사의 제품 강매와 빚 독촉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다는 취지의 유서를 남겼다.

밀어내기 고통에 대리점주 자살

이씨는 한 동료 대리점주에게 12일 미리 건넨 달력 4장의 뒷면에 남긴 유서에서 “남양(유업)은 빙산의 일각. 현금 5000만원(권리금)을 주고 시작한 이 시장(주류 대리점 영업)은 ‘개판’이었다. 본사 묵인의 사기였다. 밀어내기? 많이 당했다. 살아남기 위해서 (판촉)행사를 많이 했다. 그러나 남는 건 여전한 밀어내기”라고 썼다.
그의 유서에 따르면 본사의 밀어내기로 피해를 많이 봤지만 권리금 때문에 대리점을 접을 수도 없었다고 한다.
이씨 주변인의 증언에 따르면, 이씨는 신제품이 출시된 2010년께부터 막걸리 판매를 강요받았다고 한다. 당시 이씨는 신제품 판매를 위해 냉동 탑차 3대를 각각 2천만원에 구입했으나 제품 판매가 안 돼 적자가 쌓여간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집을 담보로 배상면주가에 1억2500만원의 빚을 지고 있고, 최근 빚 상환 독촉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동료 대리점주는 “이씨가 2개월 전부터 죽고 싶다고 말하는 등 우울증을 앓아왔다”며 “물량 밀어내기를 증명하는 영업사원 통화 녹취록을 갖고 있으며 본사는 잘 안 팔리는 주류 입고를 압박해왔고 유통기한이 지나도 반품처리를 해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배상면주가 관계자는 “이씨가 숨진 것은 유감이지만, 물량 밀어내기를 한 적이 없고 빚도 빨리 갚으라고 독촉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남양유업사태로 촉발된 밀어내기가 유통업계의 고질적인 병폐임과 더불어 쥐어짜기 논란도 공분을 사고 있다.

밀어내기에서 쥐어짜기까지

식품업계에 만연한 것으로 알려진 밀어내기는 커피전문점도 예외가 아니었다.
서울 목동에 거주하는 송모(37세 여)씨는 커피전문점을 하다가 폐업했다. 송씨는 가정주부로 지내다가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을 5년 전에 오픈했다. 본사의 지원을 받으면 손쉽게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그것도 잠시. 오픈하고 판촉물품으로 밀어내기 물품이 1개월이 멀다하고 내려왔다. 물품이 팔리기 전이라도 대금은 곧바로 빠져나갔다. 카페에서 팔아야 할 물건이 아니라며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문제는 밀어내기만이 아니였다.
각종 판촉행사나 이벤트를 실시하면서 대리점의 의견과 상관없이 본사가 일방적으로 정했다. ‘아메리카노 한 달간 1000원’이라는 광고는 본사가 하는데 부담은 개별 영업점이 진다고 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본사로부터 공급받는 원두 등 모든 원·부자재 가격이 시중가보다 비싸다는 것이다. 송씨는 “양평동 코스트코에서 판매하는 커피원두와 과일이 본사에서 공급받는 것 보다 훨씬 싸다”며 운영이 어려워지자 본사 공급량을 줄이고 사제 물품을 구매했다고 한다. 물론 본사 이외의 공급물품을 영업점에서 사용하는 행위는 계약해지 사유였지만 가격차이가 크다보니 위험을 감수했다고 항변했다.
홈쇼핑업계의 쥐어짜기도 논란이 일고 있다. 소비자가 제품을 싸게 살 수 있는 홈쇼핑의 영업비밀은 쥐어짜기에 있다고 한다. 홈쇼핑업체는 고객들이 이용하는 전화자동응답(ARS) 비용, 세트제작비, 영상제작비, 배송비 등까지 모두 부담해야 한다. 또한 판매가 부진할 경우에는 물품 가격조차도 인하하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납품업체 관계자는 “홈쇼핑업체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홈쇼핑업체가 하자는 대로 하지 않을 수 없다” 고 고충을 털어 놓았다.
대기업의 하청업체 쥐어짜기도 문제다.
지난 10일에는 현대중공업 직원들이 ‘슈퍼 갑’의 지위를 내세워 하청업체 쥐어짜기로 거액의 뒷돈을 챙긴 사실도 드러났다. 일개 부서 간부와 직원 25명이 무려 10년 넘게 하청업체 7곳으로부터 25억 원을 받아오다 내부 감사에 걸렸다.
현대중공업 직원들이 저지른 행각은 하청업체들의 약점을 악용한 것으로 대금을 실제보다 부풀려 계약한 다음 그 차액을 되돌려 받는 수법으로 주머니를 채운 것이다.

‘갑의 횡포’ 방지법안 시급

‘갑(甲)의 횡포’에 대해 밀어내기를 차단하고 유통업계의 불공정거래 근절을 위해 공정거래법 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새누리당 전·현직 의원 모임인 ‘경제민주화실천모임(경실모)’은 14일 국회에서 ‘대기업-영업점 불공정 거래 근절 정책간담회’를 열어 불공정한 갑을관계 해결방안을 모색했다.
경실모는 ‘밀어내기’ 등 불공정 거래를 근절하기 위해 △집단소송제 전면 도입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 △내부 고발자 보호 및 보상 강화 △사인의 행위금지 청구 제도 도입 △공정위 결정에 대한 고발인(신고인)의 불복 기회 부여 등 5대 개선사항을 반영해 공정거래법을 개정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종훈 의원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와 관련해 “공정위가 대기업에 과징금을 부과해도 신고자에게는 아무런 혜택이 없다”며 “불공정거래 행위 피해자들에게 배상액이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사회적 정의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약탈적인 갑을관계 문화를 바꾸려면 실질적인 제도 개선을 위한 관련법 정비가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제도개선을 위한 착수작업에 돌입했다.
‘밀어내기’로 표현되는 제품 강제구매 행위가 적발될 경우 피해액의 최대 10배에 달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도록 하는 법제정도 추진된다.
참여연대는 우원식 민주당 의원과 함께 일명 ‘남양유업 방지법’인 대리점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을 입법 발의할 예정이다. 이 법안은 대리점 사업자가 구입할 의사가 없는 상품 또는 용역을 구입하도록 강제하거나 유통기한이 지난 상품을 부당하게 반품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만약 본사가 이 같은 불공정 행위로 대리점 사업자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에는 피해액의 최대 10배에 달하는 배상 책임을 지도록 했다.
최근 불거진 갑의 횡포에 관한 파문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산업계 전반의 평가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본사와 대리점, 기업과 소비자가 모두 상생하는 경제 민주화의 근본적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 유통업계의 뿌리깊은 관행이 이번 기회를 통해 해소될지 그 향배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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