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손익계산’ 분주
여야,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손익계산’ 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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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 테이블’서 속내는 제각각

6.4 지방선거가 6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의 꽃이라고 불리는 ‘공천’문제로 정치권 안팎이 시끌시끌하다. 그 이유는 바로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때문이다. 정당들이 이 제도로 저마다 지방선거에 대한 손익계산에 분주한 가운데 시간은 계속 흘러 지방선거가 코앞에 다가와 있다. 과연 6월 안에 이 문제를 처리할 수 있을 것인지도 변수다. 대선 당시 모든 후보들의 공약이었던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는 국회의 지지부진한 움직임 속에 아직도 지난 대선에 머물러 있다. 이번에는 과연 매듭을 지을 수 있을까?

 

▲ 지난해 대선 당시 여야는 모두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이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는 이상 공약 실현은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뉴시스

어느덧 대선이 1년이 된 시점에서 아직도 국회는 대선 후유증을 앓고 있다. 국가기관의 정치개입에 대한 논란이 종식되지 않았으며,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당시 세웠던 공약들은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거나 폐기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임기 1년안에 공약을 지키기는 무리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유야무야 됐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고 있다.

그 공약 중,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안철수 후보가 제기한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를 받아들여 문재인 의원, 안 의원과 함께 기초 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제 폐지를 외쳤다. 안 의원은 당시 신당 창당을 목표로 두고 ‘새 정치’의 일환으로 ‘기득권 내려놓기’를 외쳤다.

안 의원은 지난해 10월 8일 경북 경산 진량읍 대구대학교 성산홀에서 열린 초청 특별강연회에서 “(공천 개혁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시군구 의회의 정당 공천을 폐지해야 한다”면서 “그런데도 폐지를 못하는 이유는 큰 기득권 때문”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로써 여론이 기초선거의 공천을 폐지해야 한다는 쪽으로 쏠리자 여야 후보 모두 이를 받아들였다.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는 없던 것이다. 그러나 대선 후, 1년이 다되어 가는 시점임에도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의 애매모호한 태도로 기초선거 공천제 폐지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정치개혁특위 1월 안에 처리 가능할까?
대선 후 민주당은 지난 7월 전당원 투표를 통해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를 일찌감치 당론으로 확정하고 청와대와 새누리당을 압박해왔다. 6.4 지방선거가 몇 개월 앞으로 다가 왔기에 준비기간까지 고려하면 지금 결론을 내려도 빠듯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원혜영 민주당 의원은 8일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결론이 내년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를 제기했다. 원 의원은 “내년으로 넘긴다는 것은 출전을 준비하는 선수들에게 룰 없는 경기를 뛰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은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국회는 5일 정치개혁특위 구성안을 처리하고 12을 본 회의를 열어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정개특위에서는 기초선거 정당공천제와 교육감 선거제도 등 지방자치 관련 선거법의 처리가 남아있다. 정개특위의 활동 시한은 내년 1월말까지다. 그런데 과연 1월안에 처리가 가능한 것일까.

여야는 정개특위 구성에 합의하면서 ‘정당공천 폐지 문제 등 지방자치 선거제도 개선’과 ‘지방교육자치 선거제도 개선’ 등 두 가지 안건을 다루기로 했다. ‘기타 필요한 사항’도 다룰 수 있다고는 했지만 역시 지방자치제 개선이 핵심 안건이다. 6.4 지방선거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후보들은 정개특위의 방향에 대해 매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개특위의 결정에 따라 후보들의 당에 대한 거취나 선거 활동 방향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지방의 미래가 운명을 좌우할 중요한 지방선거를 목전에 두고 선거의 기본 규칙조차 정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지방 의원들은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공천’이란 일반적으로 정당이 공직선거후보자를 추천하는 것으로, 정당에서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할 후보자를 추천하는 것을 일컫는다. 공천이 정당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공천을 받아 정당 차원의 선거 지원을 받을 경우 당선되기가 비교적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방선거에서는 지역 인재를 발굴하지 못하고 당에 줄을 대는 사람이 공천권을 얻는 경우가 많아 다양한 지역 일꾼을 뽑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도 16일 이러한 문제를 제기했다. 최 원내대표는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해법을 모색하다’ 토론회에 보낸 축사를 통해 “기초선거 정당공천제를 실시하면 정당이 유권자 투표 선택의 핵심준거로 작용해 투표 참여를 독려함과 동시에 책임정당정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편으로 지방의 중앙 종속에 따른 고질적인 계파정치 확산, 고비용 선거구조 등의 부작용을 이끄는 것도 사실”이라며 정당공천제의 명과 암을 제시했다.

이렇게 극명한 장점과 단점을 지닌 공천제도는 여야의 정치적 셈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새누리당, ‘현역 프리미엄’에 수도권 참패 우려
새누리당의 공식 입장은 현재 확실하지 않다. 속마음은 공천제 폐지 반대로 쏠리고 있지만, 대선 공약이라는 무게로 인해 정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홍문종 사무총장은 13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당의 입장이 결정되지 않았다”며 “여러 기관을 통해 의견수렴을 하고 있다. 최고위원들도 있고, 진행과정을 살펴가면서 결정하도록 하려고 한다”며 당론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뜻을 밝혔다.

또한 당내에서는 폐지 찬성과 반대의 목소리가 크로스 되고 있다. 당 내에 공천폐지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아 이 또한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 예로 황우여 대표는 “당론으로 (정당공천) 폐지를 결정했다”고 말했다가 최경환 원내대표로부터 “당론으로 결정된 건 아니고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 반박 당한 바 있다. 이는 정당공천제 폐지를 바라보는 새누리당의 속내를 여실히 드러낸 것으로 여겨진다.

앞서 최경환 원내대표는 17일 “정당공천제를 실시하면 정당이 유권자 투표 선택의 핵심 준거로 작용해 책임정치를 실현할 수 있다”면서 “이를 폐지하려면 폐지에 따른 부작용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면서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혔다. 또한 최 원내대표가 사석에서 “민주당 소속 자치단체장이 대부분인 서울 및 수도권에서 무공천으로 어떻게 현역을 이겨낼 수 있겠는가”라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진 것은 당내 반대론을 확고히 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당내에서 반대의 입김이 센 이유는 새누리당 입장에서 정당공천제가 폐지되면 현역 기초단체장이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되고, 민주당 소속이 많은 서울 및 수도권 일대에서는 선거에서 참패할 것이라는 판단이 세워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새누리당 일부에서는 현역 자치단체장이 출마하지 않는 곳에 한해 무공천으로 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이들은 정당공천제 폐지에 상응하는 정치적 효과를 내며 의견을 아우를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바로 기초선거 공천 이원화다. 기초의원에 한해서만 공천을 폐지토록 하고 기초단체장은 공천제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아예 광역의회 의원의 정원을 늘리면서 기초의원 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또 ‘기초단체장에 대한 정당공천제가 폐지되면 이들을 견제할 수단이 없어진다’는 명목으로 ‘지자체 파산제’도 하나의 대안이 되고 있다. ‘지자체 파산제’는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하는 지자체에 대해 예산을 포함한 자치권을 박탈하는 일종의 견제 장치로, 무분별한 재정 사업으로 정상적인 행정 수행이 어려운 지자체의 빚을 중앙정부가 청산하는 대신 예산 및 인사 등의 권한을 가져갈 수 있다.

이는 새누리당내에서 일부 기초단체장이 선거를 염두에 두고 경전철과 지역 축제 등 전시성 사업을 경쟁적으로 유치하며 재정이 열악해지는 부작용을 막기 위한 방안으로 강구되고 있다.

▲ 민주당은 지난 7월 전당원 투표를 통해 정당공천 폐지를 당론으로 확정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최근 내부적으로 폐지 반대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어 여야 합의가 이뤄질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뉴시스

민주당의 셈법은? ‘安 신당 무력화’
이에 반해 이미 당론을 일찌감치 정한 민주당은 정당공천제가 폐지되면 서울·수도권 선거에서 압승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당 지도부는 새누리당을 거듭 압박하고 있다. 당의 투톱인 김한길 대표와 전병헌 원내대표는 16일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해법을 모색하다’ 토론회에서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를 재차 촉구했다.

김 대표는 “기초선거에서 정당공천제를 폐지하자는 것은 정치개혁과 기득권 내려놓기의 일환으로 지난 대선에서 여야 모두가 국민 앞에 약속했던 사안”이라며 “박근혜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 정치 쇄신안을 발표하면서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약속했다는 사실을 많은 국민이 기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여야는 대선 공약 이행을 위한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논의에 책임을 갖고 성실히 임해야 할 것이며, 더 이상의 혼란을 막기 위해 신속하게 법 개정 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강하게 피력했다.

전병헌 원내대표도 “민주당의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결정은 우리나라 정당 역사상 최초로 주요 정책을 전 당원 투표를 통해 결정한 의미 있는 행보였다”며 “국민에게 대선 당시 다짐했던 정치권의 기득권 내려놓기 약속을 지켜 정치 혁신에 앞장서는 하나의 시금석이 됐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토록 폐지 통과를 원하는 것은 수도권 내 압승만을 기대해서가 아니다. 바로, 대선 당시 하나의 열풍으로 자리 잡은 ‘안철수 신당’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는 해석도 있다. 안철수 신당이 ‘새정치위원회’를 발족하고 사실상 신당 창당 수순에 들어가자, 민주당 내에서는 기존 정치에 물린 정치인들이 ‘새정치’를 내세우는 안철수 신당으로 이동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 가운데, 안철수 신당이 전국적 조직이나 인물 영입이 미진한 만큼 승산 높은 지역에만 후보를 낼 가능성이 제기되자, 자신들의 텃밭이었던 호남을 뺏길 위험성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인사들이 안철수 신당으로 이동해 출마하는 붐이 일어날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인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 내부에서는 실제 지역구를 관리하는 지역위원장 가운데 반대파도 상당수다. 전 당원 투표를 통한 당론으로 이를 결정짓기는 했지만, 이들은 실질적인 고민으로 ‘돈이 많고 조직을 갖춘 지역 토호세력이 현역에게 유리해 금권정치가 되살아날 우려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군소정당, 껄끄러운 기초 공천폐지
처음 정당공천 폐지를 제안했던 안철수 의원 측의 속내는 폐지에 껄끄러움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폐지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공천 폐지를 했을 때, 지방선거를 통한 ‘안철수 신당’ 전면적 바람몰이가 곤란한 상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선 때 이미 안 의원이 ‘새 정치’를 전면에 내세우며 이슈를 불붙였던 탓에, 물러설 수 없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김효석 새정추 공동위원장은 지난 17일 대전을 방문해 신당 추진과 관련한 지역설명회를 가진 자리에서 “국민의 70% 이상이 폐지를 요구하는 만큼 신당의 유불리를 떠나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 폐지하는 게 옳다는 게 저희 입장”이라고 밝혔다. 안철수 의원 측은 좋든 실든 내년 지방선거에 기초선거 공천폐지에 찬성할 수밖에 없는 입장인 셈이다.

군소정당인 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는 정당공천제 폐지 주장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보였다. 정당공천제 폐지는 소수당의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는. 안철수 의원 측의 고민과 맞닿아 있는 지점이다.

심 원내대표는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당공천제 폐지는 그동안 정당공천제와 비례대표제 도입을 통해 여성등 사회적 약자, 소수당의 진출이 늘어 지방의회에서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가 확대되어 온 긍정적 성과를 축소시킨다”고 밝혔다.

이어 “작년 대선이후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 정당공천 폐지를 앞 다투어 대선공약으로 내건 이래 이 문제가 지방선거 개혁의 핵심인양 오도되어 왔다”면서 “정당공천제로 인한 문제는 공천개혁과 정당민주화, 그리고 정당지지율에 비례하는 의석수 보장을 통해 바로잡을 수 있다”며 ‘비례대표제’ 카드를 꺼내들어 “거대 양당의 과독점을 막기 위해 중대선거구제 취지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듯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는 각 당의 이해득실로 인해 첨예한 대치를 이루고 있어, 곧 다가오는 지방선거판은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채 어지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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