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재계에서는 2·3세에 대한 경영권 승계 작업이 한창이다. 웅진그룹·대상그룹·동원그룹·CJ그룹·한진그룹 등이 현재 승계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이 가운데에는 최근 심각한 경영 위기에 놓여 개선 작업이 요망되는 기업도 포함되어 있어 눈총을 받고 있기도 하다.
웅진 두아들, 출자 등으로 지분확대 행보
‘홀로 승진한 차녀’ 대상 경쟁구도 돌입?
재판 중인 父 대신 현장 뛰어든 CJ 남매

2014년 재계의 화두는 단연 기업 구조 개편이다. 특히 국회는 지난 12월 31일 본회의를 열어 대기업집단 계열사 간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신규 순환출자금지법 개정안은 법을 공표한 날짜일로부터 6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됨에 따라 올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적용된다. 이에 따라 재계에서는 “그동안 순환출자를 통해 기업총수의 지배력을 확장하고 아울러 경영권을 승계하던 관행에 상당한 변화가 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아울러 이렇게 신규 순환출자가 원칙적으로 금지되며 특히 우리나라 재벌 가운데 현재 2세에서 3세로 경영승계가 넘어가는 과도기 상황에 있는 곳이 커다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의식하듯 일부 기업에서는 올해 7월이 도래하기 전까지 경영권을 상당 부분 승계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기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경제평론가는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유독 작년 하반기부터 올해 초 사이 2세나 3세의 경영권 승계를 본격화하거나 마무리 짓는 기업이 눈에 많이 띤다”고 설명했다.
웅진, ‘2세 경영’ 신호탄
최근 2세 경영권 승계를 어느 정도 마무리 지은 기업으로 법정관리 졸업을 앞둔 웅진그룹이 첫손으로 꼽힌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1월 3일 창업주 윤석금 회장의 장남인 윤형덕 웅진씽크빅 신사업추진실장이 보유한 웅진홀딩스 지분이 12.52% 가량 늘어난 것으로 발표됐다.
윤형덕 실장은 지난 12월 26일 윤석금 회장이 보유했던 웅진홀딩스 지분 가운데 3.67%를 사들인 데 이어 지난 12월 28일에는 유상신주 504만5,170주를 171억 원의 금액으로 취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차남 윤새봄 웅진케미칼 경영기획실장도 윤석금 회장이 보유한 웅진홀딩스 지분 가운데 3.63%를 넘겨받았으며 유상신주까지 취득해 본인의 웅진홀딩스 지분율을 12.48%까지 늘렸다. 이들이 보유한 웅진홀딩스 지분을 합치면 25% 가량이며 윤 회장이 보유하던 지분의 전부다.
이에 대해 한 경제평론가는 “윤석금 회장은 본인이 보유하던 웅진홀딩스 지분을 두 아들에게 거의 반씩 나누어 넘긴 것”이라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윤석금 회장은 ‘아들들에게 경영권을 무조건 넘기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취지의 소신을 밝혀왔던 만큼 이번 상황에 대해 비난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웅진그룹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기업윤리적인 면에서는 비판 받을 여지는 있지만 법을 어긴 행위는 절대 아니다”라는 게 재계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지난 2013년 2월 윤형덕·윤새봄 형제는 법원으로부터 인가 받은 회생계획안에 따라 유상증자에 참여했으며 윤석금 회장 일가가 400억 원대의 사재를 출연하는 조건으로 지분 25%와 경영권을 보장하기로 채권단과 합의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재계 일각에서는 “비록 웅진그룹이 늦어도 올 2월 내로 법정관리를 졸업할 예정이라고는 하지만 윤석금 회장은 당분간 ‘실패한 오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힘든 만큼 일단 두 아들에게 경영권을 승계한 뒤 이른바 ‘막후 경영’을 통해 장기적 관점에서 재기를 모색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승진으로 경영일선 전면에?
‘동원참치’로 유명한 동원그룹 또한 2세 경영권 승계 작업을 사실상 마무리 짓는 단계에 들어갔다. 이미 동원그룹에서 계열 분리한 금융 부문은 장남인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부회장이, 그룹 모태인 식품 부문은 차남 김남정 동원엔터프라이즈 부회장이 본격적으로 경영을 맡게 된다.
김 부회장은 고려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1996년 동원산업에 생산직으로 입사했다. 이후 김 부회장은 2003년 미국 미시간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뒤 복귀해 동원그룹 주요 계열사 보직을 거치며 착실하게 경영 수업을 받아왔으며 지난 1월 1일 부회장으로 전격 승진 발령 받았다.
재계에서는 이렇게 김남정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 전격적으로 나서게 됨에 따라 그동안 그룹을 운영해온 창업주 김재철 회장과 공동 경영파트너로 활약해 온 박인구 부회장은 일단 경영에서 손을 뗄 명분을 확보했다고 보고 있다.
김남정 부회장이 현재 보유한 지분은 67.98%로 부친인 김재철 회장보다도 훨씬 많은 상황이다. 지배구조 측면에서 보아도 후계 구도에 전혀 하자가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김남정 부회장이 올해 승진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경영자의 길을 걷기 시작할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김 부회장의 나이가 40세로 아직 젊다는 점이 다소 걸림돌로 작용한다”며 “이 때문에 당분간은 박인구 부회장이 일종의 ‘멘토’ 역할을 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의견도 있다. “박 부회장은 아직까지는 경영 일선에서 뛰는 데 무리가 없는 연령인 만큼 그룹 전반의 업무를 총괄하는 역할을 계속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편 웅진그룹·동원그룹과 더불어 ‘자녀 경영권 승계’ 이슈로 시선을 모으고 있는 기업으로 대상그룹이 꼽히고 있다. 지난 12월 26일 대상그룹은 임원 인사를 단행하며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의 차녀인 임상민 대상(주) 부장이 임원(상무)으로 승진했다”고 발표해 주목을 모았다.
임상민 상무는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파슨스 스쿨을 거쳐 지난 2009년 8월 대상그룹에 입사했다. 이후 2010년 8월부터는 영국 런던 비즈니스 스쿨에서 MBA 과정을 마쳤다.
임 상무는 작년 10월 대상 전략기획본부 부본부장으로 복귀한 후 주로 신사업 발굴과 글로벌 프로젝트 검토 등의 실무를 맡으며 경영전반에 관한 업무들을 진행해 왔다. 경영 수업을 착실하게 쌓아왔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재계에서는 “대상그룹이 창립 60주년을 3년 앞두고 본격적으로 임상민 상무의 승진 발령을 통해 경영권 3세 승계 작업에 돌입하기 시작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임상민 상무가 보유한 대상홀딩스 지분(38.36%)이 언니이자 장녀인 임세령 상무(20.41%)보다 많은 것으로 알려져 한때 그 배경을 두고 업계에서는 이런 저런 추측이 나돌기도 했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이들 두 자매의 경쟁 구도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펼쳐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특히 이번 임원 인사에서 임세령 상무가 승진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경제평론가는 “지금 상황으로만 보면 임상민 상무가 더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두 자매가 거의 동등한 비중으로 대상그룹의 앞날을 이끌어갈 준비 작업의 일환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고 분석했다.
이 평론가는 “재계에서는 임세령·임상민 자매 사이가 상당히 좋으며 둘 사이에 이렇다 할 경쟁의식 없이 ‘함께 그룹을 운영해 나간다’는 동지의식이 강하다는 이야기가 많다”며 “앞으로 경영권 승계 작업이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은 확실하지만 지금 당장은 누가 더 우위에 있으며 누가 도태될 지에 대해 관측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보인다”고 설명했다.
CJ·한진도 승계 작업 중

CJ그룹 역시 연말연시 인사철을 맞이해 총수일가의 자녀들이 주요 보직을 받아 본격적인 경영수업에 나선 것으로 알려져 재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최근 CJ그룹은 이재현 회장의 장남인 이선호 씨를 CJ제일제당 영업지점에 전격적으로 배치했다.
또한 이 회장의 장녀인 이경후 씨도 CJ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CJ오쇼핑에서 상품개발본부 상품기획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남매 모두 경영 수업의 첫 단계인 ‘현장 근무’에 투입된 상황이다.
물론 업계에서는 “이선호·이경후 남매 나이가 아직 20대이기 때문에 이들이 승계를 통한 CJ그룹 경영 일선에 본격적으로 나서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하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렇지만 일각에서는 “현재 이재현 회장이 재판 중인데다 신부전증으로 인한 신장이식 수술까지 받은 상황이라 다소 무리하더라도 ‘후계자 수업’을 서두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견해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아울러 작년 8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한진그룹도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사전 작업을 서서히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2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장남인 조원태 대한항공 부사장이 지주회사인 한진 KAL 대표이사로 임명된 것이 이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로 꼽히고 있다.
이에 대해 한 경제평론가는 “‘장자 승계’를 원칙으로 삼고 있는 한진그룹의 풍토를 보면 조원태 대표의 승진은 향후 경영권 승계를 위한 경영에 전격적으로 나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진단했다.
이밖에도 재계 일각에서는 “삼성그룹·현대자동차그룹·롯데그룹이 늦어도 올해 안으로 경영권 승계 작업을 마무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신규 순환 출자를 금지하기는 했지만 기존에 이루어진 순환 출자는 예외를 두고 인정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 임기 내에 작업을 마무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재계에서는 “특히 현대자동차그룹이 정의선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더 늦기 전에 머리를 짜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 “현재 정 부회장은 현대자동차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현대모비스에 대한 지분을 많이 보유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