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 오르기 전 결국 자진 사퇴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0일 퇴임을 앞둔 정홍원 국무총리로부터 임명 제청을 받아들여 신임 국무총리로 내정한 지 14일 만에 논란이 일단락 된 것이다.
문창극 후보자는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서 창성동별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저는 박근혜 대통령님을 도와드리고 싶었다”며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제가 사퇴하는 것이 박 대통령님을 도와드리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저는 오늘 총리후보를 자진사퇴한다”고 밝혔다.
문 후보자는 “외람되지만 이 자리를 빌어 감히 몇 말씀 드리고자 한다”며 “박근혜 대통령께서 나라의 근본을 개혁하시겠다는 말씀에 공감했다. 또 분열된 이 나라를 통합과 화합으로 끌고 가시겠다는 말씀에 저도 조그만 힘이지만 도와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제가 총리 후보로 지명 받은 후 이 나라는 더욱 극심한 대립과 분열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며 “이러한 상황은 대통령께서 앞으로 국정운영을 하시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걱정됐다. 또 이 나라의 통합과 화합에 조금이라도 기어코자 하는 저의 뜻도 무의미하게 돼버렸다”고 자진 사퇴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문 후보자는 기자회견을 통해 줄곧 국민 여론과 국회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문 후보자는 “저는 민주주의, 특히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이라며 “자유민주주의란, 개인의 자유 인권 그리고 천부적인 권리는 다수결에 의해서도 훼손될 수 없다는 원칙을 지키는 제도”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를 위해서는 여론에 흔들리지 않는 법이 필요하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주권자인 국민 의사와 법치라는 두 개의 기둥으로 떠받쳐 지탱되는 것”이라며 “국민의 뜻만 강조하면 여론 정치가 된다. 이 여론이라는 것의 실체가 무엇인가. 여론은 변하기 쉽고 편견과 고정관념에 의해 지배받기 쉽다”고 지적했다.
또, “법을 만들고 법치에 모범을 보여야 할 곳은 국회다. 이번 저의 일만 해도 대통령께서 총리 후보를 임명했으면 국회는 법절차에 따라 청문회를 개최할 의무가 있다”며 “그 청문회 법은 국회의원님들이 직접 만드신 것이다. 그러나 야당은 물론 여당 의원 중에서도 많은 분들이 이러한 신성한 법적 의무를 지키지 않고 저에게 사퇴하라고 말씀하셨다”고 청문회 기회조차 주지 않은 국회에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국회가 스스로 만든 법을 깨면 이 나라는 누가 법을 지키겠는가. 국민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오도된 여론이 국가를 흔들 때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는다”고 일갈했다.
언론에 대해서도 문 후보자는 “언론의 생명은 진실보도다. 발언 몇 구절을 따내서 그것만 보도하면 그것은 문자적 사실보도일 뿐”이라며 “그러나 그것이 전체의 의미를 왜곡하고 훼손시킨다면 그것은 진실보도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널리즘의 기본은 사실보도가 아니라 진실보도”라고 일침을 가했다.
문 후보자는 덧붙여 “우리 언론이 진실을 외면한다면 이 나라 민주주의는 희망이 없다”고 꼬집었다.
신앙문제와 관련해서는 “개인은 신앙의 자유를 누린다. 그것은 소중한 기본권”이라며 “제가 평범했던 개인시절, 저의 신앙에 따라 말씀드린 것이 무슨 잘못이냐”고 따져 물었다.
특히, “제가 존경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님, 그의 옥중서신이라는 책에서 신앙을 고백했는데, 저는 그 책을 읽고 젊은 시절 감명을 받았다”며 “저는 그렇게 신앙 고백을 하면 안 되고 김대중 대통령님은 괜찮은 것이냐”고 불만을 쏟아냈다.
문 후보자는 이밖에 자신의 조부가 독립운동가였다는 점을 강조하며 자신이 결코 친일적 사관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오랜 시간을 할애해 강조했다.
한편, 문 후보자는 기자회견 말미에 “저를 이 자리에 불러주신 분도 그 분이시고, 저를 거두어드릴 수 있는 분도 그 분이시다”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사실상 청와대의 자진사퇴 종용이 있었던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