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총선 성격으로 치러지는 오는 7.30재보궐선거에서 전남 순천·곡성 선거에 급격히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여권의 최고 실세 중 한 명인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이 지역 출마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전남 순천·곡성은 통합진보당 김선동 전 의원 지역구였지만, 김 의원이 지난 12일 대법원으로부터 의원직 상실형을 확정판결 받으면서 보궐선거가 치러지게 됐다.
그동안 지역 구도를 무너뜨리겠다는 신념 하나로 여권의 불모지인 호남에서 거듭 출마해온 이정현 전 수석이 다시 호남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그의 호남 출마가 ‘박근혜정부 심판’의 의미가 될 것인지, 지역구도 청산에 대한 진정성을 인정받는 ‘이정현 선거’가 될 것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청와대가 세월호 참사에 따른 책임론과 KBS 공영방송에 대한 외압설에 한창 시달리고 있던 시기, 이정현 청와대 전 홍보수석은 스스로 사의를 표명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사전 조율이 있었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전 수석이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지고 불과 며칠 지나 청와대는 신임 홍보수석을 임명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또는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을 향해 들불처럼 번지는 악화된 여론을 이 전 수석이 막아서고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동작을 아닌 순천·곡성
중요한 것은 이 전 수석이 대통령 보좌를 잘못한 청와대 참모진을 대표해 사퇴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면서도 스스로 사의를 표명함으로써, ‘문책’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언론과 여권 안팎에서는 이 전 수석의 향후 거취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이 전 수석이 7.30재보궐선거에 출마하거나 행정자치부 장관 또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 전 수석은 6.13개각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거취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7.30재보궐선거 출마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 전 수석이 7.30재보선에 출마할 경우,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인 여권 실세라는 이유에서 최대 승부처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서울 동작을 보궐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냐는 관측이 제기됐었다. 정치권에서는 6.4지방선거를 통해 여야가 승부를 가르지 못한 만큼, 미니총선 성격으로 치러지는 7.30재보선에서 다시 한 번 제대로 승부를 펼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 전 수석에 대한 동작을 출마설이 힘을 얻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당 내에서는 이 전 수석의 재보선 출마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도 있었다. 자칫, 재보선이 박근혜정부 심판론의 성격으로 치러질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와 관련, 차기 당권주자인 김무성 의원은 지난 9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이정현 전 수석의 재보선 출마설과 관련해 “만약 이 전 수석이 선거에 나오면 야권도 가만히 있지 않고 모든 초점이 그곳에 맞춰져 선거의 본질이 달라질 것”이라며 “이 전 수석이 그런 선택을 안 하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그러면서 “이 전 수석이 출마한다면 재보선이 이 정권에 대한 치열한 중간평가 선거가 돼버린다”며 “이 전 수석은 그 누구보다도 대통령에 대한 충정이 강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러지 않을 것이라 본다”고 덧붙여 말했다.
하지만, 이 전 수석은 당내 이 같은 부정적 목소리를 뒤로하고 재보선 출마의 뜻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은 동작을이 아닌 전남 순천·곡성이다. 이 전 수석은 이를 위해 지난 18일 새누리당에 입당원서를 제출했고, 당은 21일 이 전 수석에 대한 재입당 절차를 완료했다.
이 전 수석은 또, 주소지도 최근 자신의 고향인 전라남도 곡성군으로 옮긴 것으로 확인됐다. 곡성군에 따르면, 이 전 수석은 지난 13일 곡성군 목사동면사무소를 직접 방문해 주소지를 목사동면으로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감정 장벽 무너뜨리겠다”
이 전 수석이 전남 순천·곡성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정황들이 이 같이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이 전 수석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출마의 뜻을 확실하게 밝혔다. 이 전 수석은 지난 21일 <주간경향>과 인터뷰에서 ‘이번 7.30재보궐선거에 순천·곡성에 출마하냐’는 질문에 “당연하다. 출마할 것이다”며 “호남에서 출마하는 건 이번이 네 번째”라고 명확한 의사를 밝혔다.
이 전 수석은 특히, ‘새누리당으로 호남에 출마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 아니냐’는 질문에도 “전혀 아니다. 당선 확신을 갖고 간다”며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믿는 것은 지역의 민도다. 지난번 광주에서 출마해 39.7%의 지지율을 얻었다”며 “이것은 우연이나 운이 아니다. 호남사람들은 그만큼 생각을 가지고 투표한다”고 호남 민심에 강한 믿음을 드러냈다.
이어, “그동안 내가 활동한 정성에 대한 평가다. 진정성을 갖고 하면 통한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라며 “내가 쓴 책의 제목이 <진심이면 통합니다>다. 나의 진심을 알아주리라 믿는다”고 덧붙여 말했다.
이 전 수석은 또, 자신이 강조하는 ‘진정성’에 대해 “지역구도 타파”라며 “나는 누군가 이 지역구도라는 엄청난 장벽에 조그만 구멍을 뚫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1m 구멍을 뚫고, 다른 사람이 또 1m를 뚫고, 그 다음 사람이 또 1m를 뚫다 보면 지역구도 장벽이 무너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 전 수석은 “대한민국의 통합은 바로 그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김부겸 후보가 대구에서 40.3%를 득표했다”며 “이게 지역감정의 장벽이 무너지는 징조이고 신호다. 김부겸과 내가 그 벽을 뚫는 것이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아울러, 이 전 수석은 “이번 순천·곡성 출마는 출마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당선을 확신한다”고 거듭 자신했다.
이 전 수석은 자신을 ‘박근혜의 남자’, 또는 ‘박근혜 정부의 최고 실세’ 등으로 평가하는 데 대해서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나 스스로 ‘바른정치’를 꿈꿨고, 내가 바른정치를 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인물을 통해 이를 실현시키고자 노력했을 뿐”이라며 “그런 대의에 공감해 같이 호흡을 맞추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이다. 나는 가신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 전 수석은 ‘심지어 일부에선 박근혜 대통령의 환관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는 지적에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표현력과 그런 사람들의 시각에 뭐라고 하겠나. 그런 시각으로 본다고 내가 환관이 되는 것도 아니다”며 억양을 높여 “그럼 친노라고 하는 사람들 모두 노무현의 환관인가? 노무현이라는 인간이 좋아서, 그의 정치적 대의가 좋아서 좇는 것 아닌가? 단어를 아무렇게나 쓰면 안 된다”고 불쾌한 감정을 표출하기도 했다.
◆이정현 상대는 누구? 야권도 분주
한편, 이정현 전 수석은 여당의 불모지인 호남에서 이번까지 출마하면 세 번째 도전장을 내밀게 된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광주 서구을에 출마했지만, 득표수가 불과 720표(1.03%)에 그치며 낙선했었고, 19대 총선에서 다시 같은 지역구에 도전장을 냈지만 또 낙선했다. 하지만, 지난 총선에서는 득표율이 39.7%나 되면서 새누리당 출신으로 호남에서 당선될 수 있는 가능성을 크게 높여 놓았던 바 있다.

이 전 수석이 19대 총선에서 이 같이 높은 득표율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낙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호남에 노크를 두드림으로써 진정성을 평가받은 이유도 크다. 실제로, 이 전 수석은 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원내에 진출한 이후 호남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도 받아왔다.
이 전 수석이 이처럼 7.30재보선에서 전남 순천·곡성 출마 뜻을 굳힌 가운데, 야권에서는 다양한 인물들이 이미 출사표를 던져 놓은 상태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조순용 전 청와대 정무수석과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서갑원 전 의원, 안철수 대표 측근 인사인 구희승 변호사, 손학규 상임고문 측근인 노관규 전 순천시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통합진보당에서도 이성수 전 전남도지사 후보가 출마 채비를 마쳤다.
조순용 전 정무수석은 지난 20일 보도자료를 내고 “지난 지방선거에서 확인된 호남, 특히 심각하게 뒤틀려 있는 순천·곡성의 정치지형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호남이 중심이 돼 억지와 불통의 박근혜 정권을 종식시키는 정권교체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전 수석은 이어, “박근혜 정권을 제대로 견제하고 교체하기 위해서는 호남에서 DJ정신의 확고한 계승을 바탕으로 한 새정치민주연합의 착근이 필요하다”며 출마 배경을 설명했다.
서갑원 전 의원은 23일 새정치민주연합에 복당했다. 서 전 의원은 이날 복당에 이어 순천시선거관리위원회에 재보궐선거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서 전 의원은 “최근 박근혜 정부 실세인 이정현 전 정무수석이 순천·곡성 지역에 출마를 선언한 가운데 진행된 ‘복당결의’는 박근혜 정권을 심판하라는 당원과 국민의 간절한 염원을 반영하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당 지도부의 의중이 강력히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서 전 의원은 그러면서 “지난 몇 년 동안 지역 정가가 확실한 구심점 없이 단결되지 못하고 침체와 패배의 악순환이 되풀이 됐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왔다”며 “이번 복당으로 인해 지역 정치에 활력을 불어넣고 새롭게 출발하고자 하는 당 지도부의 의지가 확실해졌다”고 강조했다.
노관규 전 순천시장도 서갑원 전 의원과 같은 날 예비후보 등록을 마쳤다. 노관규 전 시장은 “새정치민주연합 중앙당은 무능하고 무책임한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를 심판하기 위해 도덕성-청렴성-정체성이 확인된 최적, 최강의 후보를 선택할 것”이라며 “미래 비전이 검증된 노관규 후보만이 지역문제를 가장 잘 해결하고 발전을 이끌어낼 적임자”라고 강조했다.
노 전 시장은 앞선 20일 보도자료를 통해서도 “이번 선거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심판 선거”라며 “새정치민주연합의 적통을 잇는 민주세력이고 청령섬과 도덕성, 전문성 등 모든 부분에서 새누리당 후보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후보라 감히 자부한다”고 출마의 뜻을 밝힌 바 있다.
구희승 변호사는 “최근 3년여 동안 순천지역에서 국회의원 두 차례, 시장 한 차례 보궐선거가 치러지면서 정치적 불안정이 가중되고 있다”며 “이제는 끝까지 책임지고 일하는 정치인이 필요하다”고 출사표를 던졌고, 강기정 의원 보좌관 출신인 고재경 예비후보도 “분열된 지역의 정치를 통합하고, 박근혜 정권의 민주주의 역행에 맞서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출마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통합진보당 이성수 전 전남지사 후보는 23일 이 지역에서 국회의원직을 잃은 김선동 전 의원 사무실에서 보궐선거 출마의 뜻을 밝혔다. 이 전 후보는 이 자리에서 “이번 보궐선거는 친일독재세력과 민주애국세력의 맞대결의 장”이라며 “친일독재 세력의 총집결체인 박근혜 정권 심판을 위해 출마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 전 후보는 이어, “박근혜 정권은 통합진보당에 대한 종북공세도 모자라 내란음모를 조작하고 야권연대 상징적 인물인 김선동 의원의 의원직을 빼앗았다”며 “야권단결을 막고 영구집권 의도를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서민을 위한 서민의 일꾼을 뽑아 몰락해가는 박 정권과 새누리당에 쐐기를 박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