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를 아우른 각계각층의 전방위적인 사퇴 압박에도 14일간이나 버텨온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난 24일 전격 자진사퇴하면서 인사 책임자인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에 대한 책임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김기춘 실장이 청와대 인사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이유에서다. 김 실장에 대한 이 같은 책임론은 단순히 문창극 후보자 한 사람이 낙마한데 따른 것은 아니다. 앞서 안대희 전 총리 지명자도 인사청문회 자리에 앉아보지도 못하고 여론의 사전검증 단계에서 낙마함으로써, 박근혜 정권은 사상 초유로 총리 후보자 2명이 연속으로 낙마하는 참극이 벌어지게 됐다. 그러다보니, 여당 내부에서조차 김기춘 실장 책임론이 확산되고 있는 분위기다. 특히 비주류 차기 당권주자들은 김 실장이 버티면 버틸수록 박근혜 대통령 국정운영에 부담만 될 뿐이라며 당청관계의 재정립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기춘 비서실장에 대한 야당의 사퇴 압박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벼랑 끝에서 자진사퇴하게 되자, 야당의 김기춘 실장 사퇴 요구는 더욱 거세졌다.
이와 관련,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공동대표는 24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세월호 참사의 수습과 진상조사는 제자리걸음이고, 국민의 뜻에 반하는 두 명의 총리후보자가 낙마했는데도 대통령은 국민께 한마디 사과의 말씀도 없다”며 “오히려 청와대의 인사검증책임자인 비서실장은 여전히 건재하다”고 김기춘 실장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박광온 대변인도 이날 오전 문창극 후보자의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국회 브리핑을 통해 “인사추천과 검증의 실무책임자인 김기춘 비서실장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시급하다는 것이 국민의 뜻”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때를 놓치지 마시길 바란다”고 김 실장에 대한 해임을 촉구했다.
박범계 대변인도 “인사검증시스템의 총책임자인 김기춘 비서실장의 즉각적인 경질을 시작으로 청와대부터 전면 개조하지 않는다면 제2의, 제3의 문창극은 계속 나올 것”이라며 “국정공백과 국력낭비가 일상화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통합진보당 홍성규 대변인도 이날 현안브리핑에서 “총리 후보자가 연이어 자진사퇴를 하는 이 사상초유의 사태에 대해 청와대는 어느 때보다도 가장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사과는 물론 인사위원장인 김기춘 비서실장은 그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 즉각 경질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 역시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박근혜 대통령은 이 모든 사태의 진상을 밝히고,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 전반을 바꿔야 한다”면서 “또한 인사위원장을 겸임하는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비주류 전방위 책임론 공세
야권에서만 이 같은 김기춘 비서실장 사퇴 요구가 빗발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새누리당 내에서도 더 이상은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사퇴 불가피론이 빗발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나 김기춘 실장 입장에서는 야당보다 여당 내 이 같은 사퇴론이 더 뼈아플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차기 유력 당권주자인 김무성 의원은 24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가진 기자회견 직후 기자들과 만나 ‘김기춘 실장 책임론’을 제기했다. 김무성 의원은 “총리가 낙마한 데 대해 그 (검증을) 담당한 분은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앞선 9일에도 한 라디오방송과 인터뷰에서 김기춘 실장 거취문제와 관련해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선택사항으로, 대통령께서 안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집무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하면 우리가 이해를 해 드려야 된다”면서도 “다소 좀 불만이 있다. 그래서 그 부분을 바꾸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김 실장에 대한 ‘불만’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당과 청와대 관계를 너무 수직적 관계로 만든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김 실장 거취에 대해 직접적으로 교체론을 제기한 것은 아니었지만, 대통령 핵심 참모로서 국정운영 보좌 스타일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함으로써 사실상 이때부터 김 실장 책임론을 제기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앞서 지난 19일, 당내 비주류로 서울시당위원장인 재선의 김성태 의원도 TBS라디오 ‘열린아침 송정애입니다’와 인터뷰에서 문창극 총리 후보자를 비롯한 거듭된 인사 실패 논란과 관련해 “두 번씩이나 총리 후보자 사퇴 논란에 빠진 새누리당이 국민들 앞에 고개를 들 수 없다”며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인사위원장이니까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김성태 의원은 “이 인사는 청와대를 중심으로 이뤄졌고 한 번도 집권당인 새누리당이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총리 인선에 참여하거나 의견을 제시할 수 없었다”면서 “이 구조가 대단히 잘못됐다고 본다”며 청와대 인사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7.14전당대회에 출사표를 던진 김상민 의원도 24일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자진사퇴하자, “문창극 후보자도 박근혜 정부 인사시스템의 피해자”라며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책임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가장 부정적으로 평가한 게 인사 실패이고, 가장 먼저 달라지기를 기대한 것 역시 인사”라며 “그런데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거듭 비판했다.
김 의원은 또, “그동안 국회 인준이 필요 없는 인사의 경우 청문회나 언론검증 과정에서 부적절하다고 판단한 인사도 그대로 임명된 경우가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인사시스템은 총체적으로 고장난 상태”라며 “김기춘 비서실장의 책임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같이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한 김영우 의원도 23일 오후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와 인터뷰에서 ‘김기춘 실장의 책임은 묻지 않아도 되느냐’는 질문에 “책임이 따라야 한다”고 답했다. 김 의원은 “첫 번째 안대희 총리 후보도 낙마됐는데, 두 번째 후보를 놓고도 이렇게 완전히 지금 외교문제 이런 부분에 정치권에서 손 하나도 못 대고 있다”며 “정홍원 총리도 사퇴 의사를 밝힌 지 두 달이 됐는데, 행정부나 입법부 모두가 공백 아닌 공백이다. 이런 사태는 너무나 엄청난 사태로, 이게 다 국민들이 손해 보는 것 아니냐”고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김 의원은 ‘김기춘 실장이 그 책임을 어떻게 물어야 하느냐’는 거듭된 질문에 “거취를 표명하든지 아니면 그런 식의 의사표현이 있어야 된다고 본다”며 “김기춘 실장이 청와대 1기가 안착하는 데는 굉장히 공이 컸다고 본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쇄신해야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좀 새로운 발상을 하는 분이 필요하지 않나’ 이런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당권주자인 김태호 의원도 25일 오전 평화방송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서종빈입니다>와 인터뷰에서 김기춘 실장 책임론에 대해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김 의원은 “아마 지금 청문회에 이런 제도가 있는 한 누가 인사위원장이 됐든, 누구를 내세우든, ‘옛날 황희 정승도 청문회를 나오면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다’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제도 자체도 근본적인 손질을 봐야 한다”며 “부실검증을 한 책임도 있지만, 근본적인 제도변화도 솔직하게 털어놓고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이명박 정권에서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됐었지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한 바 있다.

◆주류 “김기춘 아닌 KBS 책임”
이처럼 김기춘 실장에 대해 여권 비주류 및 비주류 당권주자들을 중심으로 사퇴론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친박계 주류 측에서는 김 실장 엄호에 들어간 모습이다. 김기춘 실장 사퇴론을 두고 여당이 또 다시 계파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김 실장 거취 문제는 새누리당 7.14전당대회 주요 이슈로 부각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와 관련, 김무성 의원과 함께 차기 당권 양강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친박 좌장 서청원 의원은 김기춘 실장 책임론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서 의원은 24일 마포구 경찰공제회관에서 진행된 ‘소통 투어’ 과정에서 문창극 후보자 낙마에 따른 김기춘 실장 책임론과 관련해 “많은 국민들이 인사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서도 “하지만 비서실장이 검증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책임론을 차단했다.
서 의원은 그러면서 “국가기관에서 탈세와 범죄 등은 밝힐 수 있지만, 논문까지 밝히긴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문창극 내정자도 교회에서 얘기한 걸 제보해줘서 알려졌는데 제보 전에 공공기관에서 검증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런 인사문제로 정국이 표류하고 난맥상으로 국가가 흘러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선 외국 예까지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인사 실패에 따른) 직격탄을 비서실장이 맡고, (비서실장에게) 맡기면 또 대통령한테 직격탄이 가는 건 좀 바꿔야 하지 않겠냐”면서 “청와대도 공직 후보자로 인해 정국이 몇 달씩 표류하는 과정은 바뀌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당대표 경선에 출마하고 여당 내 친박 실세로 통하는 홍문종 의원도 이날 성명을 발표해 야당의 김기춘 실장 사퇴 요구에 “법 무시 행태와 여론호도를 주도한 야당이 총리지명자 낙마 책임을 물어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사퇴를 요구한다”며 “또 다른 정치 공세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25일 <한수진의 SBS전망대>와 인터뷰에서는 ‘김기춘 실장 책임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책임을 진다면 KBS가 져야한다”고 책임론의 방향을 돌렸다. 홍 의원은 “하여간 KBS가 안타깝다. 국민들에게 공정한 방송이 돼야 하지 않냐”며 “국민들을 오도하면 안 되는데, 처음에 국민들에게 잘못된 인상을 심어줌으로 해서 국민들이 문창극 후보에 대한 싸늘하고 차가운 반응을 나타낼 수밖에 없는, 없도록 몰아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홍 의원은 이어, “일부 언론들이 문창극 죽이기로 공정하지 못한 방송들을 해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며 “그래서 지금 김기춘 실장이 이 분을 발탁하는데 있어서 무슨 잘못이 있었나, 한 번 곰곰이 따져볼 필요도 있다”고 김 실장을 두둔했다.
홍 의원은 또, “천번만번 양보해서 혹시 무슨 잘못이 있었다고 해도 장관이 되었든 총리가 되었든 지금 국회에서 청문회 자체가 여러 가지로 좋은 사람을 고르기에 어려운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런 면에서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비서실장에게 그 책임을 다 전가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는 것은 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홍 의원은 덧붙여 ‘문창극 후보가 잘못된 인사가 아니었다. 그러니 김기춘 실장도 당연히 책임이 없고 오히려 청문회 제도나 인사 제도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냐’는 질문에 “네”라고 대답하며 “마녀사냥식 언론보도, 우리 사회가 앞으로 선진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제돼야 하고, 좀 더 정리를 해주어야 하고, 좀 더 성숙돼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홍 의원은 김무성 의원 등이 김기춘 실장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는데 대해선 “대통령을 모시는 비서관들 중에서는 최고의 비서관, 말하자면 모시는 사람 중에서는 헤드이시기 때문”이라며 “인사위원장이기도 하시고, 좀 더 이러저러한 문제들을 잘 따져봤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은 있다”고 일부 문제의식은 수용했다.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책임론) 그렇게 이야기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 일로 책임지로 물러나야 된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상반된 견해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