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업계, 알뜰주유소發 시장 재편 ‘솔솔’
정유업계, 알뜰주유소發 시장 재편 ‘솔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SK 시장 점유율 30% 기대…2·3위 경쟁 ‘안개 속’

정유업계가 그동안 마진이 박하다며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알뜰주유소 시장을 잡기 위한 혈투가 끝났다. SK에너지와 현대오일뱅크가 알뜰주유소 공급권을 확보했다. 이번 알뜰주유소 공급권 확보를 위해 정유4사는 치열한 경쟁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현대오일뱅크는 3위인 시장점유율을 높여 GS칼텍스를 잡기 위해 과감한 승부를 벌였다는 후문이다. 그만큼 알뜰주유소 시장이 확대됐음을 방증한다. 정유업계는 이번 알뜰주유소 공급권이 향후 업계 판도를 바꿀 수도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기름 팔아도 남는 것이 없다’고 아우성치는 정유사들과 조금이라도 더 싼 주유소를 찾는 소비자들의 소비심리가 대치하면서 민간 주유소를 운영하는 이들은 골머리를 앓고 있는 실정이다.

그동안 정유업계는 알뜰주유소를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 알뜰주유소에 석유제품을 공급해봐야 남은 것이 거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알뜰주유소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만큼 자신들의 마진율은 줄어 뿐만 아니라 자영주유소에 우월적 지위를 행사할 수 없다고 판단해왔다.

하지만 도입된 지 3년 만에 알뜰주유소는 많은 이들이 기름을 넣기 위해 찾아오는 곳이 됐고, 올해 알뜰주유소에 석유제품을 공급하기 위해 벌어진 입찰에서 현대오일뱅크와 시장 점유율 1위인 SK에너지가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 알뜰주유소가 점점 시장을 확대하면서 올해 알뜰주유소 석유제품 공급 입찰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정유업계 1위인 SK에너지도 입찰에 참여 우선협상대상자 2위에 선정됐다. ⓒ뉴시스

SK에너지, 1위 자리 굳건히 지킬까

SK에너지는 정유 시장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 2012년 시장 점유율 32.2%를 기록하며 2위 GS칼텍스를 5%p 이상 앞질렀다. 이 같은 결과는 2012년 한 해에 그치지 않고 한동안 계속돼 왔다.

SK에너지가 1위를 고수했지만 고민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시장 점유율이 계속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그럼에도 SK에너지는 그동안 알뜰주유소에 기름을 공급하려 했으나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가격을 적정하게 매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SK에너지는 알뜰주유소 1부 시장 입찰 순위에서 2순위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업계에서는 다소 의외라는 평가다.

알뜰주유소 1부 시장은 자체 유통망을 갖추고 알뜰주유소에 직접 휘발유·경유·등유 등을 배송한다. 이 시장에서 공급자로 선정될 경우 농협과 석유공사를 통해 자영알뜰주유소와 433개 고속도로 알뜰주유소에 석유제품을 1년간 공급한다.

SK에너지가 최종 공급자로 선정되면 그동안 떨어졌던 시장 점유율을 다소 회복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알뜰주유소는 시장 점유율 10%를 넘기며 안정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그간 알뜰주유소에 석유제품을 공급해왔던 현대오일뱅크와 에쓰오일은 시장 점유율을 늘려나갔다. 더 이상 정유시장에 절대 강자가 없게 만든 것은 바로 알뜰주유소라는 분석이 업계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한국석유공사 석유수급통계에 따르면 올해 4월 정유업계 시장 점유율은 SK에너지 28.9% ▲GS칼텍스 24.1% ▲현대오일뱅크 23.1% ▲에쓰오일 18.7%이다.

SK에너지의 30%대 시장 점유율이 무너진 반면 현대오일뱅크와 에쓰오일의 시장 점유율은 증가했다. 이 두 업체는 모두 알뜰주유소에 석유제품을 공급했던 업체다.

업계에서는 SK에너지가 알뜰주유소에 석유제품 공급권을 따낼 경우 또다시 시장 점유율 30%대를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SK에너지가 운영하고 있는 주유소는 충성도 높은 고객들을 확보한 상태다.

‘OK캐시백’ 회원이라면 SK주유소에서 주유를 할 경우 기름값의 최대 0.5%를 적립할 수 있다. 회원수가 3700만 명에 달하는 OK캐시백 회원들은 이렇게 적립한 포인트로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SK주유소를 이용하는 고객들의 이탈이 그다지 많지 않다.

이 때문에 알뜰주유소를 이용하는 고객들을 확보할 경우 시장 점유율 확대는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정유업계 3위인 현대오일뱅크(오른쪽)는 올해 알뜰주유소 석유제품 공급 입찰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 우선협상대상자 1위에 선정됐다. 업계에서는 현대오일뱅크와 2위인 GS칼텍스의 시장 점유율 차이가 크지 않아 올해 시장 판도가 뒤바뀔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GS칼텍스·현대오일뱅크

GS칼텍스 vs 현대오일뱅크, 2위 자리는 ‘내 것’

이번 알뜰주유소 공급권 입찰에서 가장 공격적인 행보를 보인 곳은 바로 현대오일뱅크다.

현대오일뱅크는 올해 4월 정유업계 시장 점유율에서 2위인 GS칼텍스와 불과 1%p 차이로 GS칼텍스에 뒤져 3위에 머물렀다.

더욱이 GS칼텍스가 지난해 말 STX에너지를 인수하면서 STX가 보유한 50여 개의 주유소와 400여 개의 거래처를 빼앗겼다. 피 말리는 시장 점유율 경쟁에서 이 정도 규모는 결코 작은 것으로 넘길 수 없다.

이 때문에 알뜰주유소 공급권마저 GS칼텍스에 빼앗길 경우 GS칼텍스와의 격차를 줄이기는커녕 자칫 에쓰오일과의 격차가 좁혀질 수 있는 상황에 빠졌다.

업계에 따르면 이런 위기감을 느낀 현대오일뱅크는 과감하게 가장 낮은 금액을 써내며 1순위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됐다.

현대오일뱅크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안정적으로 시장이 확대되고 있는 알뜰주유소에 대한 석유제품 공급권을 따내면서 1년간 시장 점유율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GS칼텍스에 빼앗긴 STX에너지 시장도 알뜰주유소 시장을 통해 충분히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입찰 과정에서 현대오일뱅크는 정말 사활을 걸었다고 할 수 있다. 2위 자리를 넘볼 수 있다는 희망과 함께 4위와의 격차가 줄어들을 수도 있다는 판단 때문에 입찰에 가장 적극적이었다”며 “알뜰주유소 공급권을 따낸 것은 다행이지만 GS칼텍스와의 실질적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주유소를 늘려야 하는데 현재 상황에서는 주유소를 늘리는 것도 쉽지 않아 2, 3위 싸움은 정말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현재 현대오일뱅크는 39만 배럴의 정제시설 보유와 함께 전국 2500여 개의 직영·자영주유소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반면 GS칼텍스는 전국에 2900여 개의 직영·자영주유소에 제품을 공급하면서 현대오일뱅크와의 격차를 400여 개 정도로 유지하고 있다. 자영주유소를 뺏기지 않는다면 GS칼텍스로는 2위 자리를 수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입찰 결과 에쓰오일은 2·3 싸움에서 밀려났다. 그동안 에쓰오일도 알뜰주유소에 석유제품을 공급하면서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와의 격차를 5~6%까지 좁혔다.

하지만 올해 알뜰주유소 공급권을 획득하지 못하면서 시장 점유율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에쓰오일 측은 직영·자영주유소를 늘려 줄어든 시장 점유율을 회복한다는 계획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에쓰오일의 직영·자영주유소는 2000여 개 정도다. 영업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도 주유소 수를 늘릴 수 있지만 ‘주유소가 황금알을 낳는 시대는 지났다’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자영주유소 수가 줄어들고 있어 에쓰오일은 직영주유소를 더 많이 늘려야만 상황에 놓였다.

▲ 알뜰주유소로 인해 가격경쟁에서 밀린 주유소들이 문을 닫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소비자들은 알뜰주유소의 가격이 당초 계획했던 것에 미치지 못해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뉴시스

주유소 엑소더스 시대 오나

10년 전만 해도 자영주유소를 운영하던 이들은 ‘동네 유지’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돈을 벌었다. 많은 매출은 서비스로 이어졌고 생수와 티슈는 기본이고 라면에 심지어 오래 이용한 고객들에게는 가전제품을 선물로 안겼다.

하지만 현재는 이런 부가서비스를 받기는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워졌다. 같은 주유소를 찾아 수십 번 주유를 해야 라면 몇 개 받을 정도가 되었다.

자영주유소의 월급 사장으로 10여 년 넘게 근무한 박모(43) 씨는 “예전에는 자영주유소를 운영했던 이들이 월급 사장을 두고 자신은 매일 정산만 했었지만 현재는 많은 이들이 직접 주유소에 나와 직접 주유를 하기도 한다”며 바뀐 주유소 모습을 설명했다.

이어 “지금은 조금이라도 싸게 기름을 공급하는 업체들을 찾아 주유소 폴(pole·정유사 표시)을 바꾸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만큼 가격 경쟁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며 “아예 특정 정유사 폴을 달지 않고 여러 정유사의 기름을 받아쓰는 주유소도 갈수록 늘고 있다. 이런 방법까지 쓰면서도 경영이 제대로 안 돼 문을 닫는 주유소는 알뜰주유소로 바꾸거나 이마저도 어려우면 문을 닫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문을 닫는 주유소가 점점 늘고 있다. 2012년 200여 개, 2013년 300여 개의 주유소가 폐업했다. 올해 4월까지 70개의 주유소가 문을 닫았다.

알뜰주유소가 시장을 확대하면서 폐업하는 자영주유소가 늘은 것으로 보고 있다.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은 조금 멀더라도  가격이 싼 주유소를 찾다보니 공급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은 일반 자영주유소의 경우 가격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정유사들이 경쟁적으로 주유소를 내다보니 매출과 이익이 함께 줄면서 경영 위기에 처했다.

서울 마포구에서 자영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는 구모(52) 씨는 “예전에는 근방에 주유소가 많지 않다보니 나름 매출이 괜찮았다. 정규직원 다섯 명에 아르바이트생 세 명을 두면서도 벌이가 괜찮았지만 다른 정유사 폴을 단 주유소가 들어서면서 경쟁이 치열해졌다”며 “처음에는 서비스로 승부를 걸었지만 원래의 매출을 회복하기는 불가능해졌다. 그러다 보니 직원을 줄일 수밖에 없어 현재는 정규직원 두 명에 아르바이트생 네 명을 쓰면서 인건비를 줄이고 있는 실정이다”고 말했다.

또한 구 씨는 “기름 가격을 리터당 5원만 올려도 당장 기름 넣으러 오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실시간으로 가격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싼 가격으로 주유하기 위해 약간 먼 주유소로 차를 돌리는 경우가 부지기수다”고 말했다.

송 씨는 정유사들이 알뜰주유소에 공급하는 가격 정도로 자신들에게도 기름을 공급한다면 그나마 알뜰주유소와 경쟁해 볼 수 있지만 정유사들도 마진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 것 같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일부 소비자들은 알뜰주유소가 생각보다 싸지 않다고 얘기하고 있다. 알뜰주유소업계는 애초에 기존 주유소보다 리터당 100원가량 싸게 주유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현재 대다수 알뜰주유소의 주유비는 기존 주유소와 비교했을 때 리터당 10~20원 정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심지어 가격 차이가 나지 않는 알뜰주유소도 있다.

매일같이 차량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송석무(36·가명) 씨는 “출퇴근길에 알뜰주유소가 하나 있어 가끔 들러 주유를 한다. 처음에는 가격이 싸다고 느꼈는데 포인트 적립이나 추가 할인 같은 것이 없다보니 기존 주유소와 가격이 별반 차이가 없었다”며 “집에서 조목조목 계산해 보니 기존 주유소를 이용하면서 포인트를 쌓거나 카드 할인을 받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해 알뜰주유소 가는 빈도가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구 씨는 “알뜰주유소가 처음 생길 때 기대를 많이 했지만 대형 정유사 주유소에 비해 찾기가 힘들 뿐만 아니라 가격도 저렴하다는 것을 체감하기 힘들다. 당초 계획대로 일반 주유소와 가격 차이가 확연히 나면 어려워진 경제 사정에 큰 보탬이 될 것 같다”고 강조했다.

[시사포커스 / 전수영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