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외상 다나카 마키코
돌아온 철의 여인 - 다나카 마키코(田中 MAKIKO 59)
풍운아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총리의 외동딸로, 93년 아버지의 지역기반인 니가타현에서 당선하여 화려하게 정계에 데뷔했다. 3선 의원이었던 그녀는 2001년 고이즈미 (小泉純一郞) 정권탄생의 일등 공로로 일본여성 최초로 외상으로 입각했으나, 내각내의 불화, 비서관 월급 유용 의혹등에 휘말려 장관직과 의원직을 박탈 당한다. 사실상 고이즈미 총리에 의해 토사구팽을 당한뒤 1년 3개월만인 , 이번달 9일에 치러진 중위원 선거에 니가타현 지역구 에 무소속으로 당선하여 정계에 복귀했다. 당선후 그녀는 이번달 18일 제일야당 민주당과 무소속연합인 `민주당/무소속클럽`에 입회하므로써 자민당 고이즈미 정권과의 정면 대결을 시사했다.
상대의 기를 꺽으려는 듯한 날카로운 눈빛, 까무잡잡한 피부, 자신의 소신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도톰한 입술 , 한번 주장하면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 강한 성격의 카리스마…
우선 그녀하면 떠오르는 것이 이처럼 철의 여인이란 강성 이미지다. 그녀는 한때 고이즈미 총리에 뒤를 이어 강력한 차기 수상 후보로 매스컴의 주목을 받은바 있다. 국민여론조사에서 수상이 되었으면 하는 정치인 중에 그녀는 늘 1, 2위를 차지했었다.
다나카 마키코는 고(故)다나카 기쿠에이(田中角榮) 전 수상의 딸이다. 다나카 전 수상은 역대 수상 중 카리스마의 지도력으로,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중국과의 수교를 이뤄낸 불도저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바로 이 같은 아버지를 그대로 빼어 닮았다는 다나카 마키코.
그녀는 1944년 1월에 도쿄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적 성격은 밝고 쾌활했다. 유년기 그녀는 정치에 대한 혐오감이 강했다. 옆에서 아버지의 권력다툼을 적나라하게 지켜본 까닭이다. 그래서 어린 소녀 다나카의 꿈은 연극배우가 되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그녀는 친구들과 함께 교실에서 곧잘 단막극을 만들어 연기하면서 놀았다. 주변 친구 사이에서도 인기가 좋았다. 그녀는 고1때 갑자기 미국유학을 결심한다.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자신의 꿈을 키우고 싶었다. 당연히 어린 딸을 미국에 보낸다는 것에 아버지는 반대했다. 그러나 그녀의 확고한 결심 앞에 천하를 호령하던 아버지도 두 손을 들고 만다 .
미국유학시절 스탠포드대학에 유학와 있던 고노이치로 의원의 아들인 고노 요헤이(河野洋平:전 외무장관)와 사귀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만남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미 그녀에게는 첫사랑의 상대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고향이자 지역구인 니가타에 한 남자를 그녀는 좋아했다. 미국에 유학을 와서도 편지를 통해이들의 사랑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미국 대학진학을 눈 앞에 두고 일본에서 아버지로부터 연락이 왔다. 대학만큼은 일본국내에서 다니라는 아버지의 간곡한 요청이 온 것이다. 마키코는 아버지의 간곡한 요청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첫사랑의 대한 그리움을 견딜 수가 없었다. 미국에서 대학진학을 단념하고 일본으로 돌아와 유학생 특별신분으로 와세다대학 상학부에 입학한다.
그녀가 와세다대에 입학하자마자 가입한 것이 바로 연극동아리였다. 학내 극단 <고다마>에 가입,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연기를 배웠고 친구들도 사귀었다. 물론 아버지인 다나카 가쿠에이는 외동딸이 딴따라가 되는 것을 반대했다. 그녀의 내면 속에서는 말 못할 불안감이 하나 자리잡고 있었다. 그건 거물정치인의 딸이라는 신분이었다. 그녀는 신분을 떠나 그 누구와도 친해지고 싶었다. 연극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거라고 믿었다.
역시 그녀의 불안은 적중했다. 미국 유학 전부터 사귀었던 첫사랑 남자, 친구들에게 그하고 결혼할 것임을 공공연하게 밝혔던 그 남자가 그녀 곁을 떠난 것이다.
거물정치가의 딸을 배우자로 맞이하기에는 그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마키코의 충격의 컸다. 그녀는 거물 정치인의 딸이라는 자신의 신분이 원망스러웠다.
그녀는 다나카 가쿠에이의 딸이 아닌 그냥 한 여성의 평범한 인간으로서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연극처럼 살고자 희망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이 같은 슬픔을 잊고자 그녀는 연극에 더욱더 전념했다. 대학 졸업 후에도 연극활동은 계속됐었다. 극단 운(雲)에 연구생으로 입단하여 활동했다. 그러는 가운데에도 그녀의 아버지 다나카 가쿠에이는 자신의 후계자로 스즈키 나오키란 인물을 점찍어 두고 있었다. 스즈키 나오키(鈴木直紀), 그의 아버지가 전전 내무성 관료출신으로 전후에는 두 번의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의 막내아들이었다. 다나카 가쿠에이는 그를 데릴사위, 즉 딸과 결혼함과 동시에 자신의 아들로 만들 생각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결혼당사자인 마키코였다. 자유연예주의자였던 마키코는 그런 정략결혼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그러다가 결국 그녀는 대를 이을 아들이 없다는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하고 스즈키 나오키와 결혼한다.
또한 결혼하는 순간부터 스즈키 나오키는 다나카 나오키로 성이 바뀌었다. 그런 관계로 다나카 마키코는 남편의 성을 따를지 않고(결혼한 여자는 남편의 성을 따를는 일본관행) 아버지 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녀는 연극도 그만두었다. 남편을 아버지의 대를 이을 정치인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아내인 자신의 내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 때부터 남편은 아버지의 곁에서 정치수업을 받고 자신은 좀처럼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는 어머니 대신 아버지의 그림자 노릇을 하기 시작했다.
1972년 일본열도개조론을 들고 나온 그녀의 아버지 다나카 가쿠에이가 대망의 수상자리에 오르자 그녀도 덩달아 바빠졌다. 어머니를 대신해서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일본 수상이 가는 곳에는 곧 그녀가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익힌 정치적 감각, 활발한 성격, 거기에다 유창한 영어, 그보다 더 훌륭한 퍼스트 레이디가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권력은 오래가지 않았다. 중국과의 수교 등 어느 역대 수상보다도 뛰어난 업적을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나카 수상은 권력의 권좌에서 내려와야 했다. 미국 항공사의 록히드사로부터 6억엔의 뇌물을 받은 일로 그녀의 아버지는 수상직을 사임해야 했다. 또한 법의 심판을 받는 죄인이 되었다. 연일 떠들어 데는 여론의 지탄 속에서도 그녀는 의연했다. 오히려 그녀 마음속에서는 특유의 오기가 발동했다.
그녀는 정치일선에서 물러난 아버지를 대신하여 남편을 국회에 보내기로 마음 먹었다. 그것도 니가타가 아닌 시집 고향에서 출마시켰다. 일반상식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론은 또 한번 떠들어 되기 시작했다. 다나카 전 수상의 데릴사위 출마를 맹렬하게 비난했다. 도저히 승산이 없는 출마였다. 하지만 그녀는 정면 돌파 하기로 결심한다. 놀랍게도 선거결과는 당선, 사람들은 마키코라는 여자에 대해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녀의 야심에 세상은 주목하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보고 들어 몸에 익힌 정치적 감각, 미국유학으로부터 배운 국제적 바란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뛰어난 결단력, 연극무대에 서면서 터득한 세상을 바라보는 눈, 수상인 아버지를 도와 퍼스트 레이디로서 경험한 외교적 테크닉….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사망하자 한동안 실의에 빠진 그녀에게 니가타현에서 다나카 전수상의 후계자로 딸인 그녀가 출마하기를 권유한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남편의 정치기반 다지기에 힘을 쏟고 있었을 뿐 본인은 국회에 진출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녀의 등장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결국 그녀도 그동안 억눌렀던 정치에 대한 끼를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다. 93년 그 해 일본 전국에서 최다득표라는 신기록을 세우며 그녀는 당당하게 국회의원으로서 국회에 입성했다. 이를테면 부부가 국회의원인 셈이었다. 남편은 자민당 소속, 하지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냉혹한 정치세계, 아버지 수상시절 그 대단했던 다나카파벌의 정치인들은 다나카 전 수상의 사망과 함께 다른 파벌에 흡수되어 사라지고 그녀는 외로이 무당파로 남았다. 그렇지만 의정생활을 하면서도 예의 거침없는 그 성격은 변함이 없었다.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직격탄에 정부관리들이 쩔쩔맸다. 2001년 다나카 의원은 고이즈미 전 후생상이 자민당 총재 후보로 나서자, 자칭 ‘응원단장’을 자임하며 고이즈미 후보를 적극 지원, 현 고이즈미정권 탄생의 어머니 역할을 했다.
이제 그녀는 무소속으로 4선 의원이 됐다. 그동안 과학기술성 장관, 일본여성 최초의 외상을 지내는 등 행정관료로서는 과오도 있었지만, 그녀만의 독특한 칼라를 발휘하여 국민들로부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일본국민들에게 그녀가 인기 있는 것은 남자들도 쉽게 행하지 못하는 직선적인 성격과 다나카 가쿠에이 전 수상을 연상케하는 강한 리더십이다. 퇴보하는 일본정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을 것을 기대하는 일본국민, 자신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면 주저하지 않고 그대로 비판을 해대는 다나카 마키코에게 대리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반면 동료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투명하지 못한 정치활동에 대해 매사에 딴지를 거는 그녀를 눈엣가시처럼 껄끄럽게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그녀지만 정치인으로서의 약점은 정치적 기반이 없다는 것. 즉 조직이 없다는 것이다. 만약 기성 정치인들처럼 파벌을 조성하여 조직을 형성했다면 고이즈미가 아니고 틀림없이 그녀가 수상이 됐을 것이라는 것이 정치평론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렇듯 거물 정치인의 딸로 태어나 역시 한 사람의 여성 정치인 거목으로 우뚝 선 다나카 마키코. 과연 그녀는 이번 중의원 선거 당선으로 명실공히 홀로서기가 가능할지 , 야당에 합류하여 현 고이즈미 정권에 그 날카로운 눈 날을 세울지 일본정치는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이 관심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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