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가에 ‘의리 마케팅’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의리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할 도리를 뜻하는 말로 올 상반기 최대 이슈 단어로 꼽힌다. ‘불의’가 판치는 사회에 ‘의리’가 소비자에게 주는 호감은 기업의 제품으로까지 이어진다. 월드컵 마케팅이 16강 좌절로 꺾이고 그 자리를 집어삼킨 ‘의리 마케팅’에 대해 살펴보자.
2014년 상반기 뒤흔든 ‘의리 마케팅’ 돌풍 후끈
‘의리’가 주는 호감, 기업과 상품에 영향력 행사
불의 팽배한 사회, 의리에 대한 갈증 마케팅으로
여기저기 ‘의리’를 앞세운 마케팅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인정’많은 한국인에게 의리란 떨어뜨릴 수 없는 필수불가결의 요소일이지 모른다. ‘김보성’이란 연기자에게 제 2의 전성기를 안겨준 의리 마케팅, 그 시작은 세월호 참사로 전 국민이 감기처럼 앓았던 우울감에서 시작됐다.한 달가량 지상파 방송에서 예능프로를 찾아 볼 수 없던 시기, 기업들은 ‘마케팅’ 활동을 마치 죄악으로 여겨 신제품 발표도 연기하며 조용한 행보를 이어갔다. 이러한 움직임은 경기침체로 이어져 소비자의 지갑은 굳게 닫혔으며 기업들은 세월호 여파를 감내해야했다. 그 시기 유튜브에 올라온 한 광고가 신드롬을 일으켰다.

팔도, ‘의리 마케팅’ 최대 수혜 기업
팔도 비락식혜가 ‘김보성’ 광고 효과로 열풍을 일으키며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 팔도 홍보실 관계자는 2일 <시사포커스>와의 통화에서 “5월 7일 김보성을 모델로 한 ‘비락식혜’ 광고를 유튜브에 공개한 이후 5월 31일까지 비락식혜 540만 개 이상 판매돼 전년 동기 대비 35% 이상 신장했다”며 “판매금액으로 따지면 약 6억 원 증가한 수치”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식혜가 전통음료이다 보니 젊은 층의 구매율을 늘리기 위한 내부적 노력이 강화됐고 젊은이들의 접근성이 높은 유튜브를 통해 광고영상을 노출했다”고 밝혔다.
특히 젊은 층에서 많이 구입하는 할인점에서 104.4%, 편의점에서는 51.9%가 증가해 큰 신장세를 보였다. 팔도가 유쾌한 광고로 젊은층을 주요 구매고객으로 유입하는 데 성공했단 해석이다. 전통음료인 식혜로 젊은 세대들과 소통한다는 것은 어쩌면 무모한 도전이었을지 모른다.그렇지만 지난 5월 비락은 의리파 배우 ‘김보성’을 발탁 광고를 선보였다.
광고는 ‘우리 몸에 대한 의리’를 주제로 무의식적으로 커피나 에너지음료와 같은 자극적인 음료를 마시는 소비자들의 식습관에 초점을 맞춰, 무카페인, 무색소, 무탄산 음료로 소화와 숙취해소 등 다양한 효과가 있는 ‘비락식혜’를 마시는 것이 우리 몸에 대한 의리임을 재미있게 담아냈다. 불신이 팽배해 소비심리도 위축된 가운데 ‘의리’를 내세워 구매욕을 자극하거나 할인 혜택을 강조하는 마케팅 기법이 유행이다.
배우 김보성의 경우 ‘세월호’ 사고 피해자들을 위해 은행 대출까지 받아 기부를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리의 아이콘’으로 광고계 블루칩으로 급부상했다. 비락식혜 광고는 현재까지 유튜브에서 290만 건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1990년대 중반이후 제2의 비락식혜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비락식혜’의 광고가 공개된 뒤 편의점 매출증가는 물론 대형마트 및 소매점 매출 10~20% 신장을 이뤄내며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의리남’ 김보성에게 호감을 느낀 소비자들이 지갑을 여는 ‘의리’로 호응한 것이다.
각박해진 사회…의리에 대한 갈증 시기적절 표출
수백 명의 어린 승객들을 두고 제일 먼저 탈출한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의 ‘불의’를 연일 뉴스와 기사로 접하며 사람들은 각박해진 사회에서 의리에 대한 강한 갈증을 느꼈을지 모른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져버린 그들을 향한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안전 불감증에 빠진 대한민국에 ‘의리’ 신드롬은 시기적절하게 찾아왔고 사람들은 열광했다.
6월 세계인의 축제 월드컵을 두고 침체된 내수 경기 활성화의 최대 기회라는 기대 속에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 유통업체들이 평소보다 큰 행사를 준비했지만 러시아전 무승부와 알제리전 패배로 싸늘히 식으며 행사가 축소되거나 취소됐다. 여기에 벨기에전 패배로 16강 진출이 좌절되자, 국내 소비심리 위축은 장기화될 우려에 놓였다.
유통업체도 더 이상 월드컵 특수를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침체된 경기 속에서도 의리를 내세운 유쾌한 패러디가 쏟아지며 소비자에게 웃음을 안겨주고 있다. 팔도가 시작한 ‘의리 마케팅’에 편승한 여러 업체들의 마케팅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CJ오클락은 ‘패션 위크’ 행사를 진행하면서 2000원이 할인되는 쿠폰에 ‘패션 의리쿠폰’이라는 별칭을 붙여 홍보하기도 했으며, 타 쇼핑몰과 여행사들도 ‘의리’를 넣은 쿠폰을 내놓는 등 ‘의리 마케팅’에 동참했다.
여기에 비교적 저렴한 6000~2만 원대 ‘의리 티셔츠’ 시리즈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흰색이나 검정 바탕에 ‘의리’라는 글자를 써넣은 제품으로 단체 티셔츠로도 인기가 좋다는 것이 업계의 후문이다. G마켓의 패밀리사이트 G9도 의리의 아이콘 배우 김보성과 진행한 ‘김보성과 함께하는 고기파티’를 성황리에 마쳤다. 고객 감사 이벤트 차원에서 마련된 이번 행사는 지난달 28일 배우 김보성이 직접 운영하는 한남동의 음식점 ‘의리의리한 집’에서 추첨을 통해 선발된 G9 고객 120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G9의 의리 마케팅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오는 7월 김보성과 함께 모델로 활동 중인 걸그룹 에이핑크와의 이벤트도 진행할 예정이다. G9는 지난 5월 에이핑크와 김보성이 모델로 출연한 TV 광고가 크게 이슈화되면서 모바일 방문자수가 급증하는 등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고 밝혔다. G마켓 G9 마케팅 관계자는 “의리의 아이콘 배우 김보성과 함께 진행한 고객 감사 이벤트가 참석자들의 큰 호응을 얻으며 성황리에 종료됐다”며 “다양한 즐거움과 특별한 혜택 등 새로운 쇼핑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힘쓰겠다”고 말했다.
의리 마케팅 시초는 현대차?
지난 2009년 미국 TV에서는 현대자동차가 도로를 달리는 광고 속 모습 아래 ‘어슈어런스(Assurance)’ 단어가 실렸다. 당시 대량 해고사태가 줄을 이으면서 상당수 샐러리맨들은 언제 해고통지서를 받게 될지 몰라 불안에 떨고 있던 시기로 현대차는 연방 정부 공무원들과 현대차 고객들을 위해 할부금 상환을 유예해주는 ‘어슈어런스’ 프로그램을 실시한 것이다.
어슈어런스는 현대차를 보유한 고객들이 할부금을 상환할 길이 없어지자 이 기간 중 할부금 납부를 유예해주는 프로그램으로 그 당시 현대차는 날개 달린 듯 팔려 나갔다. 현대차의 ‘의리 마케팅’이 통한 것이다. 덕분에 현대차는 금융위기 직후 미국시장에서 가장 성장세가 두드러진 브랜드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며 도약의 계기를 마련했다. 지난해 10월 현대·기아차는 미국시장에서 판매가 주춤하자 어슈어런스 프로그램을 재가동을 결정했다. ‘어겐인(Again) 2008년’으로 다시 한 번 미국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목적인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의리마케팅’ 성공에 대해 기업이 자신들의 이득을 불리는 데 안간힘을 쓰는 것이 아닌 소비자와 함께 가는 ‘공생’의 의미를 상품으로 혹은 마케팅으로 전달할 때 소비자의 마음도 움직인다고 보고 있다.
웅진식품도 동참…15년 전 광고모델과 재계약
웅진식품이 매실음료의 대표브랜드 ‘초록매실’의 광고 모델로 가수 조성모와 재계약을 맺었다.지난달 26일 웅진식품은 조성모와의 계약은 지난 1999년 광고모델 이후 15년 만에 이뤄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웅진식품은 “광고 모델 재계약을 통한 광고 촬영뿐만 아니라 조성모의 가수 활동에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웅진식품은 조성모가 케이블 방송 SNL Korea에 출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방청객들이 마실 700여 개의 ‘초록매실’ 제품과 ‘우리도 이럴 줄 몰랐어요’라고 재치 있는 사과 문구를 담은 화환까지 함께 보내는 등 성의를 보였다.

이후, 조성모와 초록매실의 관계가 화제가 됐고 초록매실 광고 재계약을 요청하는 온라인 댓글이 달리는 것은 물론, 본사로 전화를 걸어와 모델 계약을 요청하는 소비자도 있었다. 초록매실은 2013년 기준 국내 매실음료시장의 56%를 차지하고 있는 국내 대표 매실음료 브랜드로 지난 2000년 조성모가 광고 모델로 활동할 당시 초록매실 매출액은 소비자가격 기준 1900억 원으로 동기간 콜라 매출을 넘어서기도 했다.
웅진식품 관계자는 “웅진식품은 단순히 계약관계로 얽힌 모델과 광고주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동반자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훈훈한 ‘의리 마케팅’은 소비자로 하여금 기업의 제품을 신뢰하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업계 일부 관계자들은 지나치게 만연한 의리 마케팅에 대해 불편한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의리를 희화화하는 코미디 프로와 개그맨들을 언급하며 의리가 웃음거리로 전략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인 것이다.
들어주기 어려운 부탁을 ‘의리’를 앞세워 강요한다면 그것은 다른 형태의 폭력으로 다가올 수 있다며 전문가들은 지나친 ‘의리’ 신드롬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경계하고 있다. 의리가 곧 ‘정의’는 아니지만 불의가 팽배한 사회에 ‘의리’를 앞세운 마케팅은 분명 소비자에게 유쾌하게 다가왔다. 2014년 상반기를 휩쓴 ‘의리’ 열풍, 침체된 유통업계에 활계를 준 신의 한수임에는 분명하다. [시사포커스 / 이지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