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개혁’이라는 화두를 중심으로 그동안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 깊은 적폐들을 해소하기 위해 머리를 모으고 있다. 이 과정에서는 관피아, 철피아, 군피아 등 적폐의 민낯들이 드러나며 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고, 이런 분노는 국정원을 비롯한 검찰, 경찰 등 사법당국에 대한 개혁의 목소리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사실 검찰이나 경찰보다 개혁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곳이 있다면, 바로 스스로 신성불가침의 영역처럼 행동하고 있는 법원이다. 그 어느 누구보다 공정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스스로 객관성을 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법원이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엔 이런 일이 있었다. 안전성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채 도심 한복판에 세계 최초로 건설되는 당인리 서울화력발전소 문제를 두고 지역 주민들은 법원에 소송을 냈다. 그런데 재판 과정에서 판사는 주민들이 낸 소장을 전혀 읽어보지도 않고 나와서는 그 자리에서 소장과 법전을 뒤적이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는 소송을 내기 전에는 인가가 안 났었고, 소송을 내고 나서야 인가가 났으니 소송이 필요 없다며 패소 판결을 내려버렸다. 무성의를 넘어서 이토록 무책임한 판결이 어디 있을 수 있겠는가.
또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임플란트를 하러 치과에 갔더니, 의사가 임플란트를 하기 어려우니 대신 브릿지를 하라고 해서 치아 3개를 치료받게 됐다. 그런데 후에 의학서적을 찾아보니, 흔들리는 차아는 지대치로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정보를 얻게 됐다. 결국 이 문제는 법정까지 가게 됐다. 그리고 법정에서 참고인으로 출석한 의사는 잘못된 브릿지 시술이라고 증언했고, 심지어 시술을 한 담당 의사까지 흔들리는 치아를 지대치로 사용했다고 인정했다. 그런데도 판사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리고 말았다. 도대체 판결의 기준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은 판사가 어떤 기준에 의해 어떤 이유로 판결을 내리게 되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 때문에 판사의 무성의한 오판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게 된 사람들은 울분을 토로하며 법원개혁에 목소리를 높여오기도 했다.
이처럼 무성의하고 무책임한 판사들의 판결로 억울한 피해를 더 이상 양산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국민참여재판을 대폭 늘려야할 필요성이 강조된다. 나아가서는 원고나 피고 중 누군가의 요청이 있을 시에는 재판 과정 전체에 대한 녹음 또는 녹취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도 만들 필요성이 강조된다.
항소심 재판부에서는 보통 하급심에서 올라온 자료만 토대로 판결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1심에서 제대로 사건의 배경을 충분히 이해하고 판결을 했는지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1심에서 오판을 하게 되면, 항소심에서도 오판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그래서 항소심에서는 이런 모호한 판결의 경우 1심 재판부가 제대로 판결을 했는지 녹취나 녹화 파일을 통해 확인한 후 판결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재판부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성역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그들이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있더라도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상처 받고 억울함에 피멍이 드는 것은 법에 무지한 서민들뿐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향후 상급심에서는 하급심에서 재판 과정이 잘 됐는지 판단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도 검토해봐야 할 것이다. 그것이 거듭된 판결 불복을 최소화할 수 있고, 법원이 다시 권위를 세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박강수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