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지는 소설 쓰지 말고 기사를 써라
일간지는 소설 쓰지 말고 기사를 써라
  • 박강수
  • 승인 2006.03.11 16: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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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신문을 발행하면서 종종 듣게 되는 씁쓸한 소리가 있다. 일간지들이 공정한 사실만을 보도하는 것에 비해 주간지는 소설을 쓴다는 지적이다. 하나의 사건을 놓고 발 빠른 일간지들에 비해 시간차가 있을 수밖에 없는 주간지로서는 어쩔 수 없이 좀 더 사건을 깊이 있게 파고들어야 하는 이유 때문이다. 깊이 파고드는 만큼 예측이나, 추측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른바 ‘기획기사’라고 하는 것이다. 기획기사를 보며 사람들이 소설이라는 과장된 표현을 쓰는 것이다. 절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씁쓸함을 뒤로 하고 어느 정도 인정을 하고 넘어간다. 그러나 주간지를 보고 소설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일간지들. 요즘 일간지는 주간지보다 오히려 소설을 더 잘 쓰는 것 같다. 이러다가 주간지의 밥그릇까지 넘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기기도 한다. 최근 총리 골프 파문으로 덩달아 문제가 되고 있는 이기우 교육부차관을 바라보는 시선만 해도 그렇다. 소설가의 시선이 아니었더라면 어떻게 그런 기사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아무리 이 차관이 이해찬 총리의 측근이었다고 할지라도 평소 깐깐하기로 소문난 이 총리가 그를 백 년 만에 나올만한 공무원이라고 평가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졸 출신으로 9급 공무원부터 시작해 차관에 오르기까지 줄도 없고, 소위 말하는 빽도 없었던 이 차관이 쏟은 노력과 열정을 생각해본다면, 이 총리의 그 같은 발언은 어렵지 않게 이해되어질 수 있다. 평소 성실과 노력이라는 두 낱말을 가슴에 품고 30년이 넘게 공직 생활을 해 온 그를 두고 일부 일간지들은 ‘시대의 로비스트’라는 표현을 쓰며, 소설 같지도 않은 소설을 써내느라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소설을 쓰고 있는 그들 언론은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소설을 쓰기 전 철저한 사전 조사 정도는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힘들지 않게 교육부에 찾아가 하위직 공무원이라도 한번 만나서 그의 인물됨에 대한 평가를 들어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차관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그의 인물됨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는 이가 없다. 그만큼 이 차관은 위와 아래 모두에게 두루 인정을 받는 진실 된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런 이 차관이 로비를 통해 차관에까지 오르게 되었고, 또 로비로 총리를 어렵게 만들었다는 소문들은 일부 언론이 조작해 낸 소설도 아닌 소설에 가까운 말들이다. 이들 언론이 각성해야 나라가 살 수 있다. 성실 하나로 국민적 소망을 일구어낸 이 차관과 같은 인물을 모함한다는 것은 결국, 이 나라의 앞날에 희망도 미래도 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이제 언론과 정치권은 인재 죽이기에 앞장설 것이 아니라, 올바른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 민생을 위하는데 더욱 앞장을 서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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