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0재보궐선거에서 대패한 야권이 생존의 몸부림 차원에서 다시 ‘야권 통합론’을 꺼내들고 있다. 4개월 전 안철수 세력과만 사실상 절반의 통합을 이뤘던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번엔 정의당과의 통합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 배경은 이렇다. 선거 때마다 필승전략으로 내세웠던 야권연대 효과가 이제는 거의 나타나고 있지 않으며, 더불어 정의당 입장에서도 거듭 초라한 선거 성적표를 받아들게 되면서 독자 생존이 막막해진 이유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과 정의당 양측 모두의 절박한 생존 본능이 통합의 필요성을 부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아직 통합 얘기가 진지하게 논의된 것도 아니고, 양당의 일각에선 여전히 독자 노선을 주창하는 목소리들이 적지 않아 당장 쉬운 문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차기 총선에 앞서 야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마지막 남은 카드로 ‘통합’ 논의가 달아오르게 될 것이란 관측이 확산되고 있다.
◆정의당, 독자생존 가능한가?
7.30재보궐선거 결과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 새정치민주연합 못지않게 위기를 맞이한 것은 정의당이다. 여론과 각종 언론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패배에 대해서만 따가운 질책과 쇄신 방안들을 쏟아내고 있어서 그렇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큰 충격에 휩싸여 있는 것은 정의당이다. 바꿔 표현하면, 정의당의 위기는 그만한 관심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인 것이다.
정의당은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야권의 간판급 스타인 노회찬이라는 인물을 내세움과 동시에 야권연대까지 이뤄 선거를 치렀다. 비록 아깝게 패배했고 무효표나 노동당 김종철 후보의 표가 합쳐졌더라면 승리할 수도 있었지만, 패배는 패배일 뿐이다. 이런저런 아쉬움을 얘기해봤자, 구차스러울 뿐이다.
그리고 선거 과정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측이 노회찬 후보 선거 지원에 소홀한 것도 아니었다. 당내 무게감 있는 인사들이 대거 출동해 노 후보 지원유세를 펼쳤고, 노 후보 역시 이에 크게 만족감을 표하기도 했었다. 즉, 노회찬 후보 입장에서나 정의당 입장에서나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한 선거였다고 봐도 무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졌다. 모든 총력전을 펼쳤는데도 노회찬 후보는 패배했고, 이후 당 안팎에서는 급격히 독자 생존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제기된 것이 바로 새정치민주연합과 야권통합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선거 때마다 야권연대를 이루는 것이 국민적 시각에서 이제는 하나의 꼼수처럼 비춰지기 시작하며 더 이상 ‘필승 공식’이 될 수 없다는 자각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아울러, 그동안 정의당의 포지션도 모호했던 것이 사실이다. 사실상 새정치민주연합 내 진보세력과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는 정체성은 물론이고, 정책적 차별성도 크지 않다는 지적이 많았었다. 그러다보니, 야권 안팎에서는 이럴 바에 차라리 정의당이 새정치민주연합과 합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었다.
실제로 지난 3일 <중앙선데이>에 따르면, 정의당-노동당-녹색당 등 통합진보당을 제외한 진보 3당의 당원 4명은 6.4지방선거 이후 ‘위기의 진보정당,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책을 내고 야권통합에 대한 의견을 담기도 했다.
이와 관련, 정의당의 당원은 “새정치연합을 숙주로 삼아 그 속에 왕창 들어가서 힘을 키우고 독자적인 세력화를 모색하자는 의견도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또 다른 정의당 당원인 이광수 부산외대 교수는 “과거 민노당이 국회의원 선거에서 10석을 얻을 때와 같은 ‘미친 시대’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다”고 위기를 진단하기도 했다. 노동당 당원 역시 “새정치연합이 반새누리당 표를 거의 흡수해 가고, 진보진영은 외면당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진보학자로 분류되는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 또한 <중앙선데이>와 통화에서 “한국에서는 진보정당이 완전히 독립적인 정당도 아니고 유럽식 연정을 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여서 계속 야권연대라는 형식이 나온다”며 ‘야권연대’ 자체의 불완전성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실상 노회찬 등은 새정치연합 내의 진보 블록과 큰 차이가 없다”며 “노회찬은 과거 꼬마민주당에도 함께했다. 새정치연합에 들어가 진보 블록 역할을 강화하고 진보정당은 보다 급진적인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게 옳다”는 견해를 밝혔다.
당장의 통합은 아니더라도 정의당이 새정치민주연합과 연정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국고보조금을 받는 정당은 자기 후보를 내고 선거가 끝난 뒤 연정을 하는 게 국민 앞에 책임 있는 모습”이라며 “후보를 내고 선거운동을 하다가 막판에 후보를 취소시키는 건 가치연대라고 할 수 없고, 특히 다른 정당을 떨어뜨리기 위해 연대를 하는 건 정당의 존립 정당성 자체를 흔드는 것”이라고 현재의 야권연대 형태를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연정의 또 다른 형태로 새정치민주연합과의 교섭단체구성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과거 이회창의 자유선진당과 문국현의 창조한국당이 원내 교섭단체 구성요건을 갖추지 못해 손을 잡았던 경험이 있듯, 정의당도 새정치민주연합과 공동으로 교섭단체를 구성함으로써 원내 정책 활동을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야권연대를 이루더라도 그렇게 정책적으로나 정체성에서 공감대 폭이 넓혀져 있어야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새정치 일각, ‘야권 재편’ 불가피
김한길-안철수 두 공동대표가 물러나고, 당이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적으로도 정의당과의 통합론이 서서히 힘을 얻어가고 있는 분위기다. 이 같은 통합 논의가 침체된 당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새정치민주연합 설훈 의원은 5일 오전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새아침>과 인터뷰에서 ‘앞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이 나가는 방향에 대해 당원들 중에는 정의당과 합당될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는 질문에 “우리당이 새로운 모습으로 나오려면 정의당과 통합을 하는 과정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설훈 의원은 “사실 그 부분은 안철수 대표와 민주당이 통합을 할 때 매듭을 지었어야 할 부분”이라며 “그때 김한길 대표에게 ‘통합을 할 때 (정의당과) 같이 해야 한다. 나중에 보궐선거나 총선을 치를 때 이 부분이 또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지금 할 때 통합을 같이하자’ (했다)”고 밝혔다.
설 의원은 그러면서 “그분들은 우리와 정치적 성향이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얘기했는데, 그게 안 됐다”며 “안 되다 보니 결국 보궐선거에서, 말하자면 그게 폐해점이랄까? 통합을 안 한 부분에 대한 결과가 나타났다고 생각한다”고 재보궐선거 패배 이유를 분석했다.
설 의원은 이어, “정의당에 있는 심상정 등등의 국회의원들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과 생각이 거의 같다”며 “물론 통합진보당과는 분명히 선을 그어서 다르지만, 정의당 의원들과는 거의 행동을 같이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국회 같은 교육문화관광위원회 소속의 정의당 정진후 의원을 언급하면서도 “우리당과 생각이 거의 같다. 그래서 행동도 같이 하고 있다”며 “굳이 이렇게 당을 갈라야 할 이유가 있는가 하는 생각을 저는 수도 없이 했다”고 말했다. 박영선 비대위원장 역시 같은 날 기자회견에서 정의당과 통합 문제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생각해 보겠다”며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또, 앞서 재보궐선거 직후인 지난달 31일 한정애 대변인은 평화방송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서종빈입니다>와 인터뷰에서 야권연대의 효과가 예전만 못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야권 재편’의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한 대변인은 이와 관련, “저희가 당 대 당 차원의 야권연대, 단일화 이런 것은 어떻게 보면 시효가 다 되었다고 봐서 하지 않았던 것”이라며 “선거 때마다 어떤 식으로든 야권연대를 해서 후보단일화를 했지만, 그것이 국민들이 보시기에 너무 정치적이고 ‘그때그때 그럴 것 같으면 하나로 합쳐서 일을 하지 못하느냐, 선거 때 돼서 그렇게 해야 하느냐’는 것에 대한 식상함도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리고 야권연대가 주는 시너지효과 같은 것도 예전과 같지 않고 오히려 흔히 말하는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하는 층의 결집효과를 가져오기도 했다”며 “그래서 예전과 같지 않기 때문에 야권이 재정비되고 하는 것은 야권 전체의 큰 틀에서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야권 재편’ 필요성을 언급했다.
한 대변인은 이어, ‘야권 재편’에 대해 “그런 것도 열어놓고 고민해야만 야권이 더욱 더 힘을 키울 수 있는 방식이 될 수 있다”며 “그렇지 않으면 도돌이표가 될 것이다. 야권이 다시 한 번 마음을 열고 가슴을 열어놓고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다만, 한 대변인은 통합진보당에 대해서는 “대상에 놓고 있지 않는다”며 야권 재편 과정에서도 통합진보당은 배제 대상임을 분명히 밝혔다.
◆쉽지 않은 통합의 길
이처럼 정의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안팎에서 야권통합 또는 그에 준하는 형태의 야권재편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지만, 아직 정의당은 공식적으로 이에 적극적이지 않은 모습이다. 정의당 이정미 대변인은 5일 한 언론과 통화에서 “이번에 지방선거를 치르면서 전국단위 선거를 처음 거쳤고, 국회의원 선거도 처음 치렀다”며 “2016년까지 어떻게 나아갈지 내적인 고민이 깊은 상황이므로 우리당 입장에선 당 바깥에서 통합을 추진하는 것은 크게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부정적 목소리를 냈다.
앞서, 천호선 대표도 지난달 31일 열린 상무위원회의에서 “야권이 이대로라면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없다. 야권 전체의 혁신은 이제 피할 수 없는 과제”라면서도 “재보궐선거라는 전투에서는 패배했지만, 새로운 대한민국을 바꾸기 위해 권력을 바꾸고 정치 그 자체를 바꾸는 거대한 전쟁은 앞으로도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의당의 앞길은 변함없이 거칠고 험하겠지만, 정의당에게 주어진 소명은 그대로”라며 “아니, 정의당의 역할은 더 커졌고 정의당이 할 일은 더 많아졌다. 결코 좌절하지 않고, 또 흔들리지 않고 꿋꿋이 나아가겠다”고 정의당의 독자노선을 강조했다.
심상정 원내대표도 이 자리에서 “오직 야권의 나약한 개혁 의지와 무능력에 대해 국민이 거센 채찍을 든 것 뿐”이라며 “이번 선거 결과로 정의당이 갈 길은 더욱 또렷해졌다. 정의당은 무거운 책임감으로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심 원내대표는 아울러, “(정의당은) 약속드린 대로 세월호 특별법을 비롯해 경제민주화, 관피아 척결, 민생정치를 위해 더욱 혁신하겠다”면서 “또 야권연대 과정에서 한국정치 발전을 위해 절실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결선투표제 등 선거법 개정에도 적극 나서겠다”고 통합보다 선거법 개정을 통한 독자생존 틀 마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심 원내대표는 “정의당은 선명하고 체계적인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진보정치 세력을 결집함과 아울러 야권혁신에도 주력하여 세월호 피해자들의 희생이 헛되이 되지 않도록 대한민국 개혁에 전력을 다 바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