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리더십은 매력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리더십은 매력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성애, 낙태 등 파격적 관점 제시

▲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는 14일부터 4박5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한, 세월호 참사 생존자들과 유족들을 비롯, 천주교 순례자 124위 시복식,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쌍용차 해고자 등이 참석하는 4차례 미사를 집전한다. ⓒ 교황방한준비위

교황 프란치스코(77)가 14일부터 18일까지 한국을 찾는다. 이번 교황의 한국방문은 1989년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문 이후 25년만의 일이다. 방한을 준비하는 한국 가톨릭 교회뿐 아니라 전세계 외신도 이번 방한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첫 남미 출신으로 교황에 선출된 그는 즉위 이후 파격 행보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증을 자아낼 정도로 언행 하나하나가 지구촌 사람들에게 신선한 자극과 더불어 논쟁거리를 선사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남미출신답게 탱고를 좋아해서 가수 이름을 줄줄이 꿰고 있으며 아르헨티나 축구 리그 ‘산 로렌조’ 클럽 회원으로 열렬한 축구팬이자 수백만 명의 팔로워가 따라다니는 트위터를 통해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한편, 꿋꿋이 바티칸 교황청 개혁을 이끌어내고, 시장 만능주의와 금융시스템이 전횡하는 자본주의 사회를 직설적으로 비판하며 사제들을 향해 거리로 나가 가난한 약자의 편에 서라고 당부하는 교황의 행보 속에서 변화를 갈망하는 전세계인들이 보기 드문 리더십의 힘을 체험하고 있다.

◼ 신앙을 지키되 차별하지 않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본명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이며 1936년 12월 17일 이탈리아 이주 노동자의 아들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잠시 나이트클럽 경비원 등을로 지내다 예수회에 입회, 1969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1973~1979년까지 예수회의 아르헨티나 관구장을 지냈고 1998년에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을 거쳐 2001년에 추기경에 서임됐다. 당시 베르골료 추기경은 2013년 2월 28일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고령으로 직무 수행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교황직을 사임한 후에 소집된 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단의 선거시스템인 콘클라베를 통해 3월 13일 다섯 차례의 투표 끝에 과반수를 득표 로마 바티칸 266대 교황이 되었다.

이로써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 교회사상 최초의 남아메리카 대륙 출신 교황, 최초의 예수회 출신 교황, 또한 시리아 태생이었던 그레고리오 3세 이후 1,282년 만에 최초의 비유럽권 출신 교황이 돼 즉위와 동시에 기록 세 개를 갈아치웠다. 2014년 3월 ‘포춘’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 50인을 뽑았는데, 교황 프란치스코가 1위로 선정됐으며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013년 올해의 인물로도 선정됐다.

하베무스 파팜(우리는 새 교황을 갖게 됐다) 선포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이 보여준 행보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파격’이었다. 그는 본래 이름을 버리고 자신의 이름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에서 가져왔다. 프란치스코 성자는 자신의 재산을 하나도 남김없이 빈자들에게 나눠주었던 전설적인 가톨릭의 성자다. 그 이름 하나 바뀐 게 무슨 대수냐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CNN의 바티칸 전문가 존 앨런의 생각은 많이 다르다. 그는 ‘프란치스코란 이름은 가난, 겸손, 소박함과 가톨릭교회의 재건설’을 상징한다며 “새 교황은 예사롭지 않은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3월 19일(현지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된 교황 즉위 미사에 참석한 정진석 추기경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 뉴시스

교황 선출 다음날 미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임 교황들이 전통적으로 입었던 빨간색 모제타 대신 수수한 제의를 입고 나타났다. 그리고 가톨릭식 축복 의식인 강복(降福)을 행할 때는 앉아 있는 대신에 추기경들과 나란히 서서 의식을 거행했다. 그는 현재도 교황 전용 관저를 사용하지 않고 바티칸의 산타마리아 게스트하우스에서 생활한다. 그는 이곳 공동식당에서 추기경들과 함께 식사하며 평일 오전 미사도 바티칸의 일반 직원들과 함께 드린다.

교황은 지난해 11월 29일 자신이 직접 작성한 문서 ‘사제로서의 훈계(복음의 기쁨)’을 발표해서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그는 “불평등의 구조적 원인을 차단하고 투기 행위를 근절하는 등의 노력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세계의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할 것이다”며 “집 없는 노인이 유해한 환경에 노출돼 죽은 것은 기사가 안 되고, 주식지수가 2포인트가 떨어지는 것은 보도된다”고 말했다. 또 사제들을 향해서는 “조직의 안위에만 매달리는 교회보다는 길에서 뒹굴며 상처 입고 때 묻은 더러운 교회를 더 좋아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현실 참여의 강력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해석했다. 이때부터 프란치스코에게는 ‘좌파 또는 빨갱이 교황’이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그러다 그가 보내는 신호의 한 정점이 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4월 17일(현지시각) 이번 ‘성 목요일 만찬’ 미사에서 로마 외곽에 있는 노인 재활시설 ‘섭리의 성모 센터’에서 리비아 출신 무슬림과 이디오피아 여성, 아프리카의 작은 섬나라 카보베르데 출신의 소년 등 환자 12명의 발을 씻겨주었다. 이는 가톨릭의 2000년 관습을 깨뜨린 일로써 여성과 무슬림에게 세족식을 행한 최초의 교황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동성애와 낙태 등 첨예한 논쟁에 대해서도 교황은 전향적인 관점에서 접근했다. 교황청은 전통적으로 동성애를 ‘내재하는 도덕적 악’으로 보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그래서 동성 커플의 자녀들은 교회활동에서 일부 배제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작년 7월 브라질 방문을 마치고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누군가 동성애자가 선한 의지를 하나님을 따른다면, 내가 어떻게 그를 정죄할 수 있겠는가‘라며 ’비록 가톨릭이 동성애 행위를 죄악으로 가르치고 있지만 사회는 동성애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6월 교황의 이런 의지가 반영된 75쪽짜리 교황청 보고서가 나왔다. 올 10월 있을 주교회의를 앞두고 전세계 교구 사제와 신자들을 대상으로 동성애와 피임 등 가족 관련 39개 문항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가 담긴 이 보고서는 예전에 비해 동성애를 비판하는 강도가 한층 누그러졌으며 공손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바티칸 관리들은 여론에 편승해서 가톨릭 교회의 교리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역설하면서도 “인간과학과의 대화를 통한 신학적 연구를 통해 동성애 현상을 여러 각도에서 접근할 것이다”고 밝혔다. 또 피임과 이혼·재혼·동거 등 가족과 밀접한 문제들에 대해 신자들의 교리 이해가 부족하다고 인정했다. 가톨릭 교회가 도덕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 앞으로는 배타적이며 차별적인 태도와 거리를 둘 것이라는 신호로 풀이된다.

◼ 차분하지만 과감한 교황청 개혁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한 뒤 잠깐의 시간을 번 뒤에 자기 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우선 그는 교황청과 바티칸 시국 현안 개혁에 나섰다. 2013년 4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산의 장기적인 안정화를 고려해서 교황청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지급하지 않기로 했고, 바티칸 은행 감독 위원회에서 보너스로 매년 추기경들에게 25,000를 지급하던 관례도 폐지하였다. 이 역시 신임 교황이 선출되면 교황청 직원들에게 소액의 보너스(2005년 기준 220만원)를 지급해 온 관례를 깬 전례 없는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마피아 자금 세탁 논란이 일어 부패의 온상으로 지목됐지만 교황 취임 이후 교황청 경제위원회와 함께 바티칸은행 개혁 작업에 동참하여 1900개에 가까운 계좌를 조사해온 로마 교황청 직속 바티칸은행의 에른스트 폰프라이베르크 은행장이 사임했다.

같은 해 5월 프란치스코는 교황청 금융정보국과 미국 재무부 산하 금융범죄단속네트워크(FinCEN) 사이에 양해각서를 체결해서 불법적 성격의 금융 거래 차단 의지를 보인 데 이어 벨기에와 스페인, 슬로베니아와도 비슷한 성격의 협정을 체결했다. 이번 협정 체결에 대해 교황청 금융정보국장으로 임명된 렌 브루엘하트 국장은 “바티칸이 금융 규제를 강화하려는 의지”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7월 교황청 바티칸 시국위원회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형법 개정에 최종 서명했다고 밝혔다.

개정된 형법은 그동안 아동 관련 범죄를 일반 범죄법으로 묶어 취급했으나 이제는 UN아동권리협약에 따라 아동 인신매매, 아동 성매매, 청소년 성범죄, 아동포르노물 소지 등에 관한 형사처분 기준이 강화됐다. 또한 종신형(무기징역) 제도가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지적에 따라 종신형을 폐지했고, 최고 형량은 35년으로 정했다. 프란치스코의 개혁은 그 이듬해에도 이어졌다. 지난 2월 프란치스코는 교황청의 재무와 행정, 인사, 조달 등의 분야를 감독할 경제 사무국을 만들었다. 교황청은 이날 성명을 통해 “새 기구를 창설한 목적은 현행 관리 구조를 간소화하고 감독 기능을 강화 내부 통제와 투명성을 제고하는 것”이라며 “빈자들을 위한 교황청 사업 지원을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매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 바티칸 홈페이지

◼ ‘먼저 행동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움직이라’

교황 방한을 즈음해서 한국인들은 이러한 파격 행보와 개혁 추진을 지켜보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인기몰이를 하는 교황의 힘의 실체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다. 여론들도 연이어 교황 관련 기사를 보도하고 서적 출판도 잇따르고 있으며,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교황과 방한 의미 이해하기’에 부쩍 열을 올리고 있다. 교황은 이번 4박 5일 방문 일정 중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과 위안부 피해자들을 만난다.

‘세상의 매듭을 푸는 교황 프란치스코’의 저자 제병영 신부는 sbs와의 인터뷰에서 교황의 방한 의미에 대해 “추기경 시절 때 부에노스아이레스 나이트클럽에서 불이 났을 때 소방관들과 긴급 구호팀이 오기 전에 이미 그곳에 가셔서 그 희생자들을 수습하셨다”며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항상 달려가시는 분이다”고 말했다.

교황은 그닥 불행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일반인들에게 어떤 권고를 하고 싶을까? 지난달 5일 교황은 이탈리아 남부의 몰리세 지역에서 미사를 집전하면서 “일요일에 문을 열고 사업체를 운영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일요일에 가족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가톨릭 신자와 상관없이 도덕적인 선택이다”고 밝혔다. 교황은 또 이 자리에서 “경제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가 돼야 한다”면서 “일요일에 노동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인지 우리 자신들에게 물어보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신자·비신자를 가리지 않고 울림을 주는 교황의 언행에 대해 정치적 리더십 차원에서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베스트셀러 ‘무지개 원리’의 저자인 차동엽 신부는 자신의 저서 ‘교황의 10가지-따봉, 프란치스코!’에 관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쁨의 비밀, 행복의 비밀을 깨달은 대가”라며 “억지로 그런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기 때문에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고 평했다. 이어 차 신부는 “(교회에 적대적인) 반대 그룹에서 볼 때도 교황은 대립하는 상징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교황은 좋은 의미의 ‘무서운 전략가’이고 말과 행동의 파장을 아는 분이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기 언행의 파장을 알고 있을까? 알고 있는 것 같다. 교황은 지난 7월말 아르헨티나 주간지 ‘비바’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마다 자기 식대로 살아가는 방식이 있으니 타인을 향해 함부로 자신의 사고방식을 주입하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포용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교황은 종교 간의 경쟁을 불러일으키며 타인을 억지스럽게 자기가 믿는 종교에 귀속시키려는 전도 문제에 대해 “교회는 개종 활동이 아니라 매력을 발산하면서 성장할 수 있다”며 로마의 격언을 인용해 ‘먼저 행동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움직이라’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