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대물림과 왕따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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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축개조’ 맹신 재고해야 할 시점

28사단 윤아무개 일병이 사망에 이르게 된 상세한 경위가 발표되자 이 사건을 두고 ‘군대판 악마를 보았다’라는 말이 인터넷 여론을 달구고 있다. 그 악마가 가리키는 이는 폭행 주도자 이 병장이었다. 그러나 한겨레 온라인판에 따르면 비교적 늦은 나이에 입대한 이 병장이 훈련 도중 손가락을 다친 일을 비롯해서 감춰진 이면이 공개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병장은 이병 시절 손가락 아픔을 견디고 제설작업을 하는데 선임병으로부터 “나이 처먹고 그것밖에 못하느냐”며 욕을 들어먹었다. 나이가 많은 이 병장은 나이 어린 선임병들로부터 자신을 무시하는 말을 듣고 잠을 못 잘 정도로 힘들어했다. 그러나 다른 부대로 전출한 이 병장은 그 뒤로 군대에 잘 적응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6월에는 ‘모범 운전병’으로 대대장 표창을 받았고 12월에는 근무유공 대대장 표창을 받았다. 이 병장에게는 여자 친구가 있었으며 입대 전에는 4,000만원을 모을 정도로 성실했다고 한다. 이런 모습에서 쉽게 악마의 모습을 보기 쉽지 않다.

또 구속된 가해 사병 중에는 윤 일병이 배치 받기 이전에 이 병장에게 지속적인 폭행을 당한 사병이 있었다. 불구속 기소된 이 일병은 치약 한 통 짜서 다 먹기 고문을 당한 적이 있고 구속 기속된 지 병장은 ‘죽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맞았다고 한다. 특히 지 병장은 이 병장이 휴가 등으로 자리에 없으면 직접 폭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폭력의 자발적인 대물림이다. 이런 배경을 고려하면 어떤 의미에서 구속된 가해자들도 일종의 피해자로 볼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애초에 평범하고 선량한 청년들이 군대 생활에 길들여지면서 악마가 됐다며 일부 책임자 징계로 끝내선 안 되고 군대 시스템 전체를 바꿔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병장은 ‘타고난 악질’이라는 반박도 만만치 않다. 이 병장이 이병 시절 당했던 것에 비하면 그가 윤 일병에게 가했던 폭행의 질과 양은 도를 넘어 그런 피해 이력만 갖고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가해자들이 한때 피해자의 위치에 있었다고 해서 가해자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 응당의 댓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한다. 해묵은 논쟁의 재현이다.

◼ 병영 쇄신은 왕따 적폐 해소부터

폭력의 대물림 논란에서 불거져 나오고 있는 의견의 큰 두 가닥을 잡아 보면 대개 정치적인 지향성에 따라 분류되는 듯하다. 야권 성향은 주로 시스템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여권 성향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개인의 책임’에 역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논쟁은 하되 한 가지 간과해서 안 될 점이 있다. 윤 일병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윤 일병과 같은 비참한 피해자뿐 아니라 한때 평범했던 젊은이들이 군대에 가서 가해자가 되어 구속까지 된 이 상황 자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발생했느냐에 대해 사실에 입각해서 정밀 조사와 더불어 종합적인 판단이 요구된다.

▲ 육군 28사단 윤일병 폭행사건을 주도했던 이모 병장이 대답을 똑바로 안한다는 이유로 윤일병의 뺨을 2회 폭행하는 모습을 재현한 현장검증 사진을 육군이 지난 4일 공개했다. ⓒ 뉴시스

이 사건은 얼마 전에 있었던 22사단 임 병장과 사건과 공통점이 있다. 군대에서 고문관 소리를 듣는 사병들은 대개 왕따로 낙인찍힌다. 윤 일병은 어눌한 목소리와 대답을 늦게 하는 언행으로 군 내 ‘관리’ 대상이 되었다. 이 병장은 헌병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윤 일병을) 관리하라고 하면 하 병장, 이 상병, 지 상병이 윤 일병을 때렸다”고 말했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권오성 육군참모총장은 5일 물러나는 자리에서 “병영 문화 쇄신이 절박한 과제”라고 말했다. 윤 일병 사건이 터진 후에 전문가와 군 관계자들은 모두 병영문화을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 한 가지는 은폐 의혹 때문이기도 하다. 군 당국은 이런 사건이 터지면 덮어버리려는 대응이 아예 관행(?)으로 굳어져 가고 있는 것 같다.

새정치민주연합 윤후덕 의원은 4일 국방위 긴급 현안질의에서 “윤 모 일병이 사망한 다음날인 지난 4월 8일, 28사단이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김관진 현 청와대 안보 실장에게 보고한 문건을 보면 윤 일병이 지속적인 가혹행위와 집단 구타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국방부가 4월 7일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 상엔 윤 일병 사망 사건이 ‘회식 중 발생한 사건’으로만 적혀 있을 뿐이라며 집단구타와 가혹행위를 일부러 숨기려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국민의 거대한 불신에 직면한 군이 최근 병영 사고에 대한 해결책으로 관심병사 분류의 정교한 기준을 제시한다든가 병무청에서 사전에 문제 사병이 될 인원을 차단한다든가 부대별로 전문상담관을 늘리겠다는 등의 조치는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는 군대 내 고문관 즉, 왕따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어 보인다. 그 이유는 왕따 문제가 군대뿐 아니라 학교와 직장 등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보편적인 현상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통상 대인관계에서 대응 양식이 ‘별난’ 개인과 그 개인을 둘러싼 집단의 문제로 뿌리내렸다. 속전속결로 풀릴 문제가 아니다.

군대는 상명하복이 생명인 특수사회다. 그래서 더 심각하다. 이런 곳에서 왕따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소외된 사병은 외부에 도움을 요청할 수 없기 때문에 예측불허의 행동을 하는 등 언제든 윤 일병, 임 병장 사건이 재발할 위험성이 있다. 군은 입대 전에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던 이 병장이 잔혹행위의 주범으로 탈바꿈한 사례에서 보듯 입대 후에 군대라는 특수 사회 속에서 행동양식이 달라지는 사병들에 정기적으로 관심을 기울어야 한다.

군인들은 힘든 훈련을 정기적으로 겪어야 하는 일과를 보내기 때문에 누구나 좀 편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개별 사병의 마음에 간절하다. 그래서 군대가 잘 굴러가지 않게 되면 ‘군기가 빠졌다’며 수시로 벌칙성 훈련 등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어떤 사병이 내무반 물을 흐려 놓는다는 판단이 집단 내부에서 공유될 경우 앞서 윤 일병 폭행사에서 본 것처럼 최고참자는 직속상관의 묵인 아래 바로 ‘관리’에 들어가고 이때 관리는 거의 폭행과 폭언이란 수단을 통해 행사된다. 이러한 생경한 폭력이 쓸모 있는 군인이 되는 데 시간이 걸리는 사병을 빨리 강한 군인으로 만들 수 있다는 압축개조에 대한 맹신을 재고할 때가 되었다.

사병 관리에서 발생하는 이 악순환을 끊을 제도적 방안이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수준에서 민간 전문가와 협력을 거쳐 군과 정부에서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윤 일병 사건의 악마들은 다시 대물림되어 병영 안을 휘젓고 다닐 것이다. 대통령이 명한 일벌백계는 마지막 단계에서 검토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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