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처럼 서울대 기업식 운영 우려
2학기 시작부터 구성원 반발 가능성
두산그룹이 경사를 맞았다.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이 법인화된 서울대의 이사장에 선출됐됐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의대 교수와 서울대병원장을 지냈다. 그간의 이력을 봤을 때 서울대 이사장을 맡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서울대 구성원들은 법인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때부터 법인화를 반대했고, 박 회장이 중앙대 이사를 맡으면서 벌였던 행보를 놓고 봤을 때 서울대가 기업식으로 운영될 것이라는 우려를 토해내고 있다.
박용현 서울대 이사장은 2006년까지 서울대병원에서 의사와 병원장을 지냈다. 이후 두산건설 회장과 두산그룹 회장을 지내며 기업인의 면모를 보였다. 현재는 두산연강재단 이사장직을 수행하고 있으며 얼마 전까지 서울대 이사회의 이사로 활동했다. 동시에 중앙대 이사회의 이사이기도 했다.
지난달 28일 서울대 이사회는 이사회를 열고 제2대 이사장에 박 회장을 이사장으로 선임했다.
이사회는 박 이사장이 30년가량을 서울대 교수로 재직했고, 중앙대 이사로서 대학 운영에도 충분한 경험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서울대 구성원 중 반대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별다른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으며, 서울대 노동조합 또한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할 것이 없다”고 밝혔다.
서울대, 중앙대의 복사판?
박 이사장이 이사장으로의 충분한 자격을 갖춘 것은 사실이지만 일각에서는 우려를 보이고 있다. 이는 박 회장이 이사로 활동 중인 중앙대가 여러 비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두산그룹은 지난 2008년 중앙대를 인수했다. 박 회장의 형인 박용성 회장이 제9대 이사장으로 취임하며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두산그룹은 곧바로 전체교수회의를 열고 여기서 ‘CAU2018+’라는 중장기 발전계획을 발표했다. CAU2018+는 핵심은 ‘선택과 집중, 실행력 강화, 선순환 구조 확립’이었다. 또한 국내 대학 최초로 100% 연봉제를 도입했다.
중앙대 측은 이를 철저하게 능력과 성과에 따라 임금을 결정해 교수진의 잠재 역량을 끌어 올린다는 취지라며 교직원의 임금제도도 호봉제에서 연봉제로 전환시켰으며 행정조직도 개편해 외부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갖췄다고 설명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구성원인 학생들에 대해서도 열심히 공부할 수밖에 없도록 학사관리제도를 강화했으며, 졸업을 하려면 일정 수준의 영어실력과 회계학 등 신설된 필수 과목을 이수하도록 해 ‘더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는 대학’으로 만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를 놓고 중앙대 측은 기업의 업무 프로세스를 대학에 그대로 접목시켰다는 강한 저항에 부딪쳤다.
일부 학생들은 졸업 후 취업을 할 때 유리해질 수 있을 것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지만 많은 중앙대 구성원들은 의학이나 공학 등 특정 계열에는 많은 투자가 이뤄질 수 있지만 인문학 등 기업이 크게 선호하지 않은 계열은 오히려 사라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총학생회에서는 두산그룹이 학교 발전방안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중앙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을 염두에 두고 학교를 인수한 것을 두고 감사할 것은 아니라며 대척점에 서기도 했다.
각종 반발에도 불구하고 두산은 중앙대에 입성 후 가장 먼저 단과대를 조정했다. 기존 18개 단과대 77개 학과를 10개 단과대 46개 학과로 학문 단위 통폐합했다. 이 과정에서 취업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인문·사회대 학과가 대규모로 축소 폐과됐다.
대신 기업의 선호도가 높은 경영학부와 경제학부의 정원을 늘리면서 중앙대는 아카데미가 아닌 예비직장인 양성소라는 비판까지 들었다.
또한 중앙대는 직선제였던 총장 선출을 폐지했다. 교수들이 선거에 직접 참여해 총장을 선출했던 방법에서 재단이 임명하는 방식으로 바꾸자 교수사회의 반발도 이어졌다.
학내 구조조정이 계속해서 이어지자 학생들은 학교 측과 대항에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김창인 씨는 두산이 중앙대에 실행한 구조조정에 반발하며 한강 다리 위에 올라 플랜카드를 흔들었다. 그런 그에게 돌아온 것은 무기정학이라는 학교 측의 징계뿐이었다.
김 씨는 무기정학이 부당하다며 법원에 이의를 제기했고, 법원도 학교 측의 징계가 너무 과하다고 판결했다. 이후 중앙대는 김 씨에게 18개월의 유기정학 처분을 내렸고, 징계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학교는 또다시 김 씨에게 구조조정 토론회를 기획했다는 이유를 들어 근신 처분을 내렸다.
중앙대 측은 김 씨에게 수여했던 장학금을 반환하라고 요구했다. 징계자에 대해 장학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결국 김 씨는 지난 5월 7일 자퇴기자회견을 열고 중앙대를 떠났다.
이날 김 씨는 “나는 두산대학 1세대다”라고 서두를 연 뒤 “두산재단과 함께 시작한 대학생활은 녹록치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박용성 이사장은 대학이 교육이 아닌 산업이라 말했다. 대학도 기업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중앙대라는 이름만 남기고 모든 것을 바꾸겠다고 했다. 그리고 불과 5년 만에 그의 말은 현실이 되었다”라며 “정권에 비판한 교수는 해임되었고, 총장을 비판한 교지는 수거되었다. 비용 절감을 이유로 교양 과목은 축소되었고, 이수 학점은 줄어들었다”라고 중앙대 측을 비판했다.
서울대 미래 아직까지 ‘관망 중’
서울대가 중앙대와 비슷한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예상과 서울대가 사립대학이 아닌 이상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을 것이란 의견이 아직까지는 수면 아래에 있다. 신임 이사장과 신임 총장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대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들은 박 이사장이 현재까지도 중앙대 이사로 있으면서 단 한번도 박용성 이사장의 결정에 반대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서울대를 기업처럼 운영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대’라는 프리미엄이 많이 사라진 지금, 취업률을 높이려면 결국 기업이 선호하는 인물로 양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박 이사장이 취임하기는 했지만 남은 기간이 2년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서울대 시스템을 완전히 바꾸기는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더욱이 사립대학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만 할 수 없어 ‘전횡’은 불가능하다고 강변하고 있다.
현재 대학은 방학 중이다. 하지만 2학기 시작이 불과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서울대의 2학기는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다. [시사포커스 / 전수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