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지도부 "호남의 승자가 대선의 승자다"
정동영 텃밭 호남 '표밭 지키기'…박근혜 불모지 호남 ‘표밭갈이’
차기 대선의 길목에서 치러지는 5·31 지방선거는 전국 단위의 민심을 체크해볼 수 있는 올해 최대의 정치일정. 결과에 따라 여야의 최대 숙원인 '정권재창출'과 '정권탈환'의 가능성까지 점쳐볼 수 있다. 특히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지난 2004년 4·15 총선 이후 2년만에 정면승부를 벌일 것으로 예상되면서 여야 대권후보들 간의 기싸움 양상도 치열하다. 이에따라 차기 주자들의 지방선거 성적표에 따라 정치적 진로 역시 상당한 폭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차기 대선'이라는 결승전에 앞서 펼쳐지는 '5·31 지방선거'이라는 준결승에 여야는 전력투구를 선언하고 있지만 여야를 가리지 않고 잇따라 터지는 메가톤급 악재에 애를 태우고 있다.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의 'DJ 치매 노인' 발언에 이어 춘삼월 정국을 뜨겁게 달군 여야의 대표적 악재만 하더라도 △ 한나라당 최연희 전 사무총장의 성추행 사건 △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3·1절 골프 파문 △ 여성재소자 성폭행 자살사건과 천정배 법무장관 책임론 △ 우리당의 사할린동포 당비납부 의혹 △ 이명박 서울시장의 황제테니스 논란 등등 한둘이 아니다. 이밖에도 우리당의 경우 선거연합 등 지방선거 전략에 따른 시각차가 당내 갈등의 불씨로 작용할 수도 있고 한나라당의 경우 터질듯 말듯 조마조마한 공천잡음 등이 우려스럽다.
이런 가운데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21일 나란히 호남을 방문했다. 양당 지도부가 대거 동행했고, 지역개발 공약을 경쟁적으로 쏟아냈다. 정 의장은 전남지역에서 정책간담회를 열었고, 박 대표는 전북에서 정책 토론회에 참석했다, 우리당은 텃밭인 호남에서 민주당과 힘겨운 경쟁을 벌이는 처지고, 한나라당은 불모지 호남에서 선전해야할 입장이다. 우리당은 지역개발공약을 내걸고 5·31 지방선거에서의 필승을 다졌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21일 전남 여수와 광주를 찾았다. 이곳을 1주일 전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똑같은 코스로 다녀갔다. 정 의장은 최연희 의원의 성추행 사건을 언급하며 "한나라당과 박 대표는 국민 앞에 석고대죄 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시간 박 대표는 정 의장의 고향인 전주를 누비고 있었다. 정 의장은 이어 "한나라당은 교도관 성추행 사건으로 천정배 법무부 장관더러 사퇴하라고 하는데 당 대표가 임명한 사무총장(최 의원)이 여기자를 성추행 했으니 똑같은 잣대를 대라"고 공격했다.
◆정의장, 텃밭 호남 '표밭 지키기'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을 비롯한 당 지도부도 이날 전남 여수와 광주를 잇따라 방문해 호남 민심 잡기에 전력을 쏟았다.
여당 지도부가 이처럼 호남 민심 공략에 나선 것은 참여정부 들어 여권에 등을 돌 린 전통적 지지세력을 다시 결집시켜 5.31 지방선거에서 승기를 잡겠다는 계산에 서다. 여기에는 광주시장. 전남지사 선거 두 곳 중 한 곳도 승리하지 못할 경우 차 기 정권 재창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현재까지 광주와 전남은 민주당, 전북은 우리당 지지도가 높다. 만일 정 의장이 지방선거에서 전북을 사수하고 광주. 전남에서 민주당을 주저앉히면 그 여세는 대권 가도까지 이어진다.
정 의장은 이날 여수시민회관에서 열린 정책간담회에서"당의장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여당이 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우리당에 대한 지역민들의 호응도가 남다른 데 대해 만족감을 표시한 것이다.
정 의장은"예산은 야당이 아니라 여당이 확보하는 것"이라며 2012년 여수엑스포의 유치 지원, 여수공항 활주로 400m확장 추진, 익산∼순천간 철도전철 복선화사업의 2010년 완공 등을 약속했다.
그러나 상황이 녹록치는 않다. 우리당 전북지사 후보 자리를 놓고 김완주 전 전주시장과 경합중인 강현욱 현 지사의 탈당 설이 나돈다. 강 지사는 민주당으로의 이적 또는 무소속 출마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전남에선 민주당의 강세가 여전히 뚜렷하다.
만일 민주당이 광주전남을 지켜내고 전북을 일부라도 잠식할 경우, 정 의장은 대단히 곤란한 상황에 빠진다. 물밑에서 꿈틀대던 '고건 대안론'이 민주당의 상승세와 손을 잡고 정 의장을 위협하게 된다. 텃밭에서 '대선 경쟁력'에 빨간불이 켜지면 우리당 내에서 정 의장의 구심력 상실은 예정된 수순이다.
결국 정 의장에게 호남 지방선거 결과는 수도권에 버금가는 의미가 있는 셈이다. 호남 선거결과는 전북이 연고인 정 의장 자신에 대한 평가와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박대표, 불모지 호남 '표밭갈이'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또다시 호남지역을 찾아 남다른 '호남 사랑'을 보여 주고 있다. 지난 14일 지방선거 지원 투어 첫 방문지로 전남 여수와 광주를 택한지 일주일 만 인 21일 전북 전주를 찾은 것이다. 호남 방문은 올해 들어서만 네번째다.
박 대표는 이날 방문에서 전주상공회의소 임원들과 간담회를 하고 전북 경제 현황 에 대해 보고받은 뒤 당 지방자치위원회가 마련한 전북지역 현안 정책토론회에 참석했다.
간담회와 토론회에선 최근 대법원의 새만금 방조제사업 재개 판결과 관련한 새만금 발전 전략 등 지역의 주요 경제 현안들을 논의했다.
박 대표는 새만금사업, 김제공항 건설, 호남 고속철도 건설, 군산 경제자유구역 지정 등 전북지역 현안 해결을 약속했다. 박 대표는 전주에서 개최한'전북지역 현안정책토론회'에서 "호남고속철 예산이 원래 100억원인데, 조기 완공을 위해 200억원을 증액해 현재 300억원으로 예산이 통과됐다"며 한나라당의 노력을 강조했다. 이어"호남고속철 완공기간을 2017년에서 2015년으로 2년 앞당기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박 대표는 또"현재 중단된 김제공항 건설을 점검해 빨리 추진할 수 있도록 하고,4월 임시국회가 열리면 한나라당이 주도해 군산이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박 대표는"민생정책투어의 첫 장소로 광주에 다녀왔다"며"한나라당은 국민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가 이처럼 호남에 공을 들이는 것은 짧게는 5.31 지방선거에 앞서 호남인 들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방선거에서 호남지역에 실제 당선자를 낸다는 생각보다는 수도권과 충청권에 거주하는 호남출신들의 지지를 얻으려는 목적인 것이다. 길게는 차기 대권주자의 입지를 다지기 위한 의도도 있어 보인다. 한나라당이 호남 지역에서 한 자릿수에 그쳤던 대통령선거 득표율로는 차기 집권이 힘들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지난 15대, 16대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호남 득표율은 각각 3.27%, 4.87%였다. 앞서 치러진 3번의 지방선거에서도 호남지역 지지율은 4%~6%에 불과했다. 박 대표 측은 이를 반면교사 삼아 호남에서의 한자리수 득표율로는 정권 탈환이 어렵다는 논리를 펴 왔다.
이에 따라 박 대표의 잇따른 호남 방문은 당면한 지방선거에서 유의미한 지지율 획득에 목적을 두면서, 장기적으로는 대권 게임에서 자신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포석이다. 특히 호남지역의 지지율 상승은 수도권에 거주하는 호남출신 표심에도 영향을 미친다. 박 대표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관계 모색에 공을 들이는 이유와 같은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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