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 "한·미 FTA 손해보는 장사 안 할 것"
"요즘은 인터넷에서 박살나고 있다"…국민과의 인터넷 대화
"인터넷에서 대세를 잡아서 일반선거의 대세로 몰아간 아주 희귀한 대통령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인터넷이 제 마당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저를 지원하는 글이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저도 이제는 박살나고 있더군요"
국가원수로는 최초로 시도된 인터넷을 통한 노무현 대통령이 인터넷 공간에서 국민들과 만났다. 향후 역점 과제로 제시한 양극화 문제에 대해 네티즌들의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였다. 취임 3주년 행사를 겸해 개최된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에서 노 대통령은 부동산, 교육, 일자리 등 양극화와 관련한 다양한 쟁점을 설명하는데 시종일관 열성적인 태도로 임했다.
노 대통령과 국민과의 대화가 누리꾼들의 적극적인 참여 속에 화기애애하게 마무리됐다. 대화를 지켜보던 청와대 기자실에서도 노 대통령 특유의 유머섞인 표현이 나올 때마다 연방 웃음이 터져 나왔다. 노 대통령은 네이트, 다음, 야후, 엠파스, 파란 등 5개 포털사이트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국민과의 인터넷대화 '양극화, 함께 풀어갑시다'에 출연해 양극화해소 및 각종 국정현안을 두고 패널들과 대화를 나눴다. 노 대통령의 상세한 설명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인터넷 방송'의 특성상 이날 행사는 당초 오후 1시부터 80분 가량 진행될 계획이었으나, 예정 시간을 훌쩍 넘겨 2시간 동안 계속됐다. 또한 인터넷 및 네티즌 문화 친숙하기 때문인지 노 대통령은 행사 중간중간 농담을 섞는 등 여유있는 모습을 보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23일 "참여정부는 좌파 신자유주의 정부"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1시부터 2시간 넘게 진행된 '인터넷 국민과 대화'에서 양극화 해소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양립하기 힘든 두 가지를 임기 4년차 과제로 제시한 것과 관련해 "양극화 해소와 FTA는 선진한국으로 가는 양 날개"라고 주장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경제 회복됩니다. 걱정말고 쓰시라"
"경제가 언제쯤 어느정도 풀리겠느냐"는 질문을 받은 노 대통령은 당당한 어조로 "회복됩니다. 저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고 단언했다.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 초반 가장 큰 골칫거리였던 신용불량자 문제가 해결되고 있음을 설명하면서 "이 문제가 우선 풀렸으니까 우선 시장에서 소비가 풀릴 것으로 믿는다"고 강조했다.
또한 "금융시스템의 위기요인이 없다"고 전제, "2004년 4천∼5천원 하던 하이닉스 주식이 지금 1만5천원으로 올라 다 죽어가던 외환은행이 벌떡 일어나 값이 비싸지고 서로 사겠다는 것 아니냐"며 "그래서 지금 론스타에 잘못 팔았다는 얘기들이 있어서 공무원들이 죽을 맛"이라고 설명을 이어갔다.
노 대통령은 "청와대 울타리처럼 부동산, 금융 등에도 경보장치가 있다"며 "하지만 지금 아무데도 빨간불이 안들어온다"고 말하고, "기름값, 환율 등은 걱정스럽지만 위기요인은 아니다"고 소개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이제 한숨 돌리고 좀 (돈을) 쓰십시오. 몇년동안 경제 위기는 오지 않으니까 걱정말고 쓰십시오"라며 "미래는 우리 사회의 건전한 상식에 맡기도록 하고 우선 인간다운 생활을 위해 쓸 수 있는 데까지 쓰고 세금도 좀 많이 내서 자신있게 가보자"며 '소비'를 권장했다.
한편 노 대통령은 신용불량자 문제를 설명하면서 "제가 탄핵에서 해방된 시기가 384만명으로 피크(정점)였다"며 "신용불량자는 계속 늘어나는데 대통령은 탄핵으로 갇혀있고... 싱거운 얘기인데 그랬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미 FTA 관련, 두가지 약속
노 대통령은 이날 한미 FTA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제일 황당한 게 신자유주의자가 아니냐고 질문하는 것"이라며 "다른 한쪽에서는 좌파 정부라고 질문하는데, 좌우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 경제에서 필요한 것을 하자는 것이다. 서로 모순된 것은 조화시키는 게 정치가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참여정부는 좌파 신자유주의 정부이며, 이는 나쁘지 않다"며 "획일적인 이론적 틀 안에 현실을 집어넣으려고 하지 말고 뭐든지 현실을 해결하려는 열쇠로 써먹을 수 있으면 써먹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은 또 한미 FTA 협상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미국 시장에서 일본이나 중국보다 단 1%라도 유리한 위치를 갖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노 대통령은 한미 FTA가 궁극적으로는 법률, 교육, 의료, 금융 등 서비스 시장 개방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른이 되면 집에서 내보내야 한다. 국내 서비스산업에 자극을 주기 위한 쇼크 요법"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두가지를 약속하겠다"며 손해보는 장사를 하지 않을 것이며 협상을 하다가 손해볼 것 같으면 합의하지 않겠다는 것을 첫번째 약속으로, 농업부분을 비롯한 취약부분에 대한 대책을 세울 것이라는 점을 두번째 약속으로 내걸었다.
◆"8.31대책 우습게 보지말라"
토론은 '양극화 해소'를 구성하는 5개의 글자 가운데 하나를 노 대통령이 뽑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노 대통령 우선 "제가 해결을 해야 하니까 해결사로서 '해'자를 뽑겠다"고 말했으며, '해'자에 해당하는 질문은 서민들이 가장 큰 부담으로 여기고 있는 부동산 문제였다.
노 대통령은 "부동산은 만병의 근원이며, 여러가지 나쁜 일의 주범"이라고 전제한 뒤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결과에 대해 "자신한다. 임기가 아직 2년 남았다"며 확신을 보였다.
나아가 "8.31 대책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짧게 표어로 말하면 8.31 대책 우습게 보지 말라"고 답했다. 이 '표어'를 언급하는 과정에서 노 대통령은 '10자 문답'에서 했듯 다시 손가락을 꼽아 웃음을 자아냈다.
노 대통령은 또한 "내용이 부실하면 저항에 무너지지만, 내용이 완벽할 경우 결국 시간이 흐르면 저항이 꺾이게 돼있다"며 거듭 8.31 부동산 정책의 효과에 대해 자신감을 보였다.
동시에 "'사회의 공기라고 생각하는 일부 언론도 8.31 조치가 갖고 있는 내용적 위력을 제대로 국민에게 전달 안해주는 것 아니냐, 무력화를 바라는 것 아니냐'고 느낄 정도"라며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당부했다.
◆스크린쿼터 축소가 미국에 대한 굴복, 압력 아니냐
영화 '왕의 남자'에서 공길역을 맡아 스타덤에 오른 영화배우 이준기씨는 "영화계에서는 스크린 쿼터 축소 결정이 미국의 압력에 대한 굴복이 아니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대통령께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다"고 공세를 취했다.
이 질문에 대해 노 대통령은 "영화에서만 매력적인 줄 알았더니 실물 보니 정말 잘 생겼다"고 잠시 숨을 고른 후, 바로 "이준기씨와 함께 하는 영화인들에게 묻고 싶다, 한국 영화가 참 많이 발전했는데 정말 자신 없는 것이냐"고 도리어 질문을 던졌다.
이에 이씨는 "단순히 생각한다면 한국 영화가 경쟁력이 있고 자신은 있지만 아직 경쟁력은 미국보다는 낮다"며 "미국의 물량공세와 스크린쿼터 축소 압력으로 인해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만든 영화가 상영되지 못한다면 관객의 선택도 받지 못하고 더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없게 될까하는 걱정이 든다"고 답변했다.
노 대통령은 "그런 걱정은 이해하는데 실제로 자신이 없어서라기보다 미국에 굴복했다는 불쾌감이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에) 더 많이 개입됐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이 있다면 그렇게 하지 말고 내부적으로 경쟁력을 키워 자신있게 가자"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현재 이집트, 멕시코에도 국내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고 세계로 나가고 있다"며 "문화의 다양성과 전통은 다문화가 교류하는 가운데서 지켜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영화계가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스크린쿼터를 축소했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노 대통령은 "스크린쿼터 문제는 우리가 능동적으로 나가고 있고 이 문제 말고도 미국에게 꿇리지 않는 대한민국이 될 수 있다"며 "국민들의 역량이 올라왔기 때문에 외교, 안보 분야 등도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단기간에 숫자 못 줄여"
양극화 해소를 위한 재원 마련과 관련된 세금 증가 논란에 대해 노 대통령은 "그 부분은 아직 저도 확실하게 답을 할 수가 없다"며 "세금 더 내자는 말은 아니고 함께 생각해보자는 것"이라고 즉답을 회피했다. 그는 "세금 얘기가 나오니까 바로 나오는 게 '월급쟁이가 봉이냐'며 자영업자와 형평 문제를 제기하는 데 근로소득세의 90%를 상위소득자 20%가 낸다"며 "나머지는 별로 손해볼 것 없다고 이해해달라"고 밝혔다.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 노 대통령은 "지금 제일 심각한게 비정규직 문제인데 참 답답하기 짝이 없는 것"이라고 어려움을 표했다. 그는 "솔직히 단기간에 숫자가 갑자기 줄지는 않을 것"이라며 "안되는 걸 될 것처럼 얘기해서 헷갈리게 할 일이 아니다"고 민주노동당 등 현 '비정규직 보호법'이 '비정규직 양산법'이라고 비판하는 것에 역공을 가했다.
노 대통령은 "지금 비정규직법의 성과에는 기업 문화가 가장 크게 작용한다"며 "정규직 해고가 어려운 만큼 비정규직이 늘어난다. 이런 여러가지가 얽혀 있어서 제도로서 강제하는 게 어렵다"고 말했다.
◆후임총리 어떤 분을 선택할 것인가?
노 대통령은 토론의 중심주제인 양극화 문제에 대해선 막힘 없이 평소 소견을 밝혔지만 총리 인선 문제에 관한 질문을 받자 "죄송합니다"며 좀처럼 말문을 열지 않았다.
마지막 질문자로 나선 패널이 "총리 임명시 기준과 그 기준으로 봤을 때 한명숙 의원과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 중 어떤 분을 선택할 것인가"라고 묻자"이 문제는 아직도 마음을 못 정했다"며 구체적 언급을 피한 것.
노 대통령은 그러면서 "제 소신만 가지고 할 수 없는 일이다. 여러가지 종합해야 한다"고 말해 참모들의 전언대로 '정책적 연속성'(김병준)과 '정치적 분위기'(한명숙) 사이에서 고민중임을 시사했다.
"(인선) 기준이 여러가지이고 방향마저 결정하지 않고 있다"는 노 대통령의 말에 그 패널이 "뭐가 어려운 기준인가"라고 캐물었지만, 노 대통령은 "제가 까딱하면 속을 뻔했다"며 "그거를 대답하면 제가 앞에 말한 것과 모순이... 무엇이 제일 어려우냐가 결정이 안 돼있다"며 피해갔다.
토론에 앞서 청와대 관계자들은 "대통령의 고민이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네티즌들로부터 총리 인선에 관한 질문이 나와도 원론적 언급만 하실 것"이라고 예고했었다.
◆토론 마무리에 역사책 소개
노 대통령은 토론회를 마무리하면서 '코리아, 다시 생존의 기로에 서다'(배기찬 지음)라는 역사책을 네티즌들에게 권유해 눈길을 끌었다.
노 대통령은 "한국의 외교, 안보 관계의 전략적 방향이 어디로 갈 것이냐에 대해 상당히 분석이 잘 돼있다 싶은 책이 있어 들고 나왔다"며 일독을 권유했다. 이 책에 대해 노 대통령은 "지금까지 교과서, 일반적 책에서 볼 수 없었던, 그야말로 한반도를 둘러싸고 진행된 역사의 본질적 구조를 분석하고 오늘의 현실과 대조하고 있다. 100% 맞지 않지만 상당히 많은 면에서 도움이 된다"고 소개했다. 이어 "대통령이 좌파, 신자유주의 같기도 하고 미국에 자주하면서 굴복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하는데 대해 이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재외공관장 초청 만찬에서도 이 책을 대사들에게 선물하면서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한 생존전략과 관련한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책"이라며 일독을 권했었다.
한편 노 대통령은 네티즌들과의 본격적인 토론에 앞서 '10자 문답'으로 몸을 풀었다. 이는 '10자'를 맞춰 질문과 답변을 하는 것으로, "대통령이 네티즌과 즉석 대화할 순발력이 있는지 보겠다"며 사회자인 송지헌 전 KBS 아나운서가 즉석 제안해 이뤄진 것이다.
패널들은 '양극화 해소에 비법은요', '세금 안내고 살 순 없나요', '여자라면 셋째 낳겠어요' 등 정확히 10자로 질문을 던진 반면, 노 대통령은 글자수를 맞추느라 애를 먹었다.
노 대통령은 "이거 정말... 전혀 훈련이 돼있지 않은데...(10자) 이내로 하면 봐준다거나..."라며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손가락을 꼽아가며 각각의 질문에 성심껏 답했다. 각 질문에 대해 노 대통령이 수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친 뒤 "모두 함께 풀어 봅시다요", "아주 힘이 센 사람이라면", "딸에게 낳으라고 했어요" 등의 답을 내놓아 일단 '순발력 테스트'는 통과했다.
이날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는 네이트, 다음, 야후, 엠파스, 파란 등 5개 포털사이트가 공동으로 주관했으며, 기존의 딱딱한 토론회와 달리 자유롭고 격의없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대화에는 '영웅아줌마' 블로그를 운영하는 주부 최금숙(52)씨, 연세대 인간행동연구소 선임연구원 장근영(38)씨, '맞벌이 부부 10년 10억 모으기' 카페 운영자 박범영(34)씨, 프리랜서 기자 고경원(31)씨, 대학원생 김우섭(30)씨 등이 패널로 참여했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