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공포 ‘싱크홀’, 원인과 대책은?
도심 공포 ‘싱크홀’, 원인과 대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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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사-서울시 공동책임…시민 95% “불안해”

지난 5일 서울 잠실 석촌지하차도의 아스팔트 일부가 깊이 5m 아래로 무너져 내렸다. 약 일주일이 지난 13일 이곳 옆에서 길이가 무려 80m에 이르는 땅굴 모양의 거대 ‘동공(빈 공간)’이 발견됐다. 이후 지난 18일까지 이 동공을 포함해 대형 동공이 추가로 6개나 발견됐다. 이에 따라 주민들의 불안은 점점 커지고 있다.

▲ 지난 5일 서울 잠실 석촌지하차도의 아스팔트 일부가 깊이 5m 아래로 무너져 내린 이후 지난 18일까지 길이가 무려 80m나 되는 동공을 포함해 대형 동공이 추가로 6개나 발견됐다. 이에 따라 주민들의 불안은 점점 커지고 있다. ⓒ뉴시스

지난 5일 서울 송파동 지하철 8호선 석촌역 부근에서 주변 도로가 갑자기 주저앉는 땅 꺼짐 현상인 ‘싱크홀’ 현상이 발생했다. 가로 2.5m, 세로 8m, 깊이 5m의 싱크홀이었다. 서울시는 다음날 박창근 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를 단장으로 조사단을 꾸리고 싱크홀 발생의 원인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단은 이 조사를 통해 길이 80m, 폭 5~8m, 깊이 4~5m에 이르는 동공을 발견했다. 조사단은 18일 1차 중간 조사 발표를 통해 “(싱크홀 발생 원인이) 지하철 9호선 3단계 건설을 위해 석촌 지하차도 하부를 통과하는 쉴드(Shield) 터널 공사가 원인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우선 결론을 내렸다. 또 “동공이 발생한 석촌 지하차도 구간은 지하수에 취약한 충적층(모래·자갈)이 두껍게 자리한 구간으로 수위 저감시 침하(내려앉거나 꺼짐)가 발생할 우려가 높은 지역인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가 끝나지 않아 정밀한 추가 조사를 시행할 계획이다”라고 덧붙였다.

박창근 교수는 18일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저희들이 1차 싱크홀이 발견된 곳을 조사하면서 보니까 그 밑에 지하철 공사가 진행되고 있더라”며 “저희들이 장비나 각종 탐사 장비를 이용해서 관측을 해보니까 거기에 커다란 동공이 있다는 걸 저희들이 확인하고 개착작업을, 1m x 1m 되는 구멍을 뚫고 실제로 들어가서 조사를 해서 길이 80m 되는 걸로 저희들이 확인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1400톤 입방미터(㎥) 정도의 규모이고 15톤 덤프트럭으로 140대 분량의 흙이 사라져버린 꼴이 된 것”이라며 “그 밑에 지하철 터널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품질 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흙들이 유출되었을 것으로 추정을 하고 있는데 그것 말고는 거의 다른 원인을 찾을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즉, ‘쉴드공법’으로 터널을 뚫는 과정에서 삼성물산이 지반의 틈새를 메우지 않아 지반이 약화돼 도로가 내려앉았다는 것.

◆싱크홀, 삼성물산의 잘못인가
지하 터널 표면을 다지는 ‘그라우팅’ 작업이 부실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20일 서울시 시민조사단에 따르면 지하철 9호선 석촌지하차도 터널 공사를 진행하는 삼성물산(시공사)은 지난해 10월 원통형 굴착기의 ‘커터’를 교체하기 위해 공사를 중단하고 이미 뚫은 지반에 그라우팅 작업을 실시했다. 그라우팅은 터널을 뚫은 후 지하수 침투와 지반 침하를 막기 위해 특수용액으로 터널 표면을 단단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그라우팅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커터를 교체할 때 지하수가 터지고 토사가 쓸려 내려갈 수 있다.

당시 서울시와 삼성물산은 커터 교체를 앞두고 그라우팅 방법에 이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물산은 지상에서 수직으로 구멍을 뚫어 특수용액을 주입하는 ‘수직 그라우팅’을 제안한 반면, 서울시는 굴착기에서 용액을 뿌리는 ‘수평 그라우팅’ 방식을 주문했다.

삼성물산은 수직 방식이 수평보다 효과적이라고 설명했지만, 석촌동이 문화재 지역인데다 지하차도에 구멍을 많이 내면 도로 안전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서울시의 의견을 수용했다.

서울시 시민조사단은 삼성물산이 수평 그라우팅을 처음 시행했다는 점에 주목, 새로운 공법과 지질층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부실하게 작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수평 그라우팅을 하려면 굴착기가 이전보다 천천히 움직여야 하는데, 삼성물산이 중단된 공사 기간을 만회하기 위해 서둘렀다면 그라우팅이 제대로 안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삼성물산은 수평 그라우팅을 위해 장비를 일본에서 수입하고 굴착기를 다시 설계했다. 보통 커터 교체는 2주 가량 걸리는데 그라우팅 방식을 바꾸는 바람에 4개월이나 터널 공사가 중단됐다.

오직 삼성물산이 시공한 공구에서만 동공이 발견되었다는 점도 ‘삼성물산 책임론’에 힘을 싣고 있다. 9호선 3단계 공사의 6개 공구 중 4개 공구가 석촌호수 주변을 지나간다. 동공이 발견된 석촌 지하차도 구간은 919공구(삼전동 잠실병원~8호선 석촌역)로 삼성물산이 시공을 맡고 있다. 문제가 되고 있는 공구 외에도 여타 건설사들이 터널공사를 하고 있지만 삼성물산이 시공한 곳을 제외하면 아직까지 동공이 발견되지는 않고 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19일 한 언론과 통화에서 “아직까지 원인이 규명된 것이 아닌 만큼 최종 조사결과가 나와봐야 한다”며 “무엇보다 안전이 우선인 만큼 원인규명을 위해 조사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책임이 있다면 대책을 세우고 문제가 있다면 개선해 공사도 재개해야 한다”며 “하지만 최종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중간발표를 중계하듯 전해지는 것은 원인규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시민 불안만 가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삼성물산 관계자는 그라우팅 부실 의혹에 대해선 “공법의 장단점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면서 “동공이 발견되기 전까지 이상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서울시는 현재 싱크홀 발생이 우려되는 현장에 대한 복구 작업 계획서를 검토 중이며 국토교통부와 함께 20일 부터 지하철 9호선 구간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에 들어갈 예정이다. 따라서 싱크홀 원인 규명 최종결과에 따라 향후 서울시와 삼성물산이 ‘네 탓 공방’을 벌일 가능성도 제기됐다.

삼성물산은 현재 적용중인 공법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2012년 8월 시공계획서를 제출하면서 공사구간 지반의 취약성과 공사기법을 모두 보고했는데도 서울시로부터 별다른 대책마련을 지시받지 못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 서울시 조사단은 싱크홀의 원인으로 시공사 삼성물산을 꼽고 있다. ‘쉴드 공법’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다는 점이 주 요인으로 꼽힌다. 한편, 일각에서는 서울시의 관리 소홀을 비판하고 있다. ⓒ뉴시스

◆서울시 안일한 대처도 문제
한편, 전문가들은 서울시가 송파구의 지질 특성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점을 비판하고 있다. 과거 한강 본류가 지나가는 지역이던 석촌호수 인근에는 모래과 자갈이 두껍게 쌓여 있기 때문에 제2롯데월드·지하철 9호선의 굴착 공사가 이어지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충분히 내다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박창근 교수는 “싱크홀이 많이 발생하는 원인은 일단 옛날에 하천 지역이었던 곳”이라며 “송파·잠실 지역이 예전에는 하천이었고 또는 한강 인근 하천이었다. 이런 경우에는 모래층이 잘 발달되어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런 부분을 연약 지반이라고 하는데 이 연약 지반을 통해서 터널을 뚫는다든지 도시를 개발할 때 하수관거를 설치하면 누수가 많이 생긴다. 물이 하수관로를 통해서 빠져나오고 인근에 있는 모래를 끌고 어디로 가버리게 되면 그쪽에서 동공이 생기는 현상이 발생을 많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곤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19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금 하나하나를 개별 사건으로 보지 말고, 전체가 왜 이렇게 지반이 자꾸만 대규모로 붕괴사고가 일어나는가는 서울에서 땅 속에 대한, 지질에 대한 자료가 지금 없기 때문에 그렇다”라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서울시의 의뢰로 서울 전역의 지반 지질 상태를 조사해 ‘서울의 지반정보 관리시스템 개발연구 종합보고서’를 만든 사실을 언급하면서 “(보고서를)만들어줬는데 그걸 활용을 안 하는 것”이라며 “그게 바로 기본이다. 그런데 서울시는 만들어줬는데도 그걸 활용을 잘 안 한다”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제2롯데월드나 지하철 9호선 공사만 본다면 독자적으로 완벽해 보이는 공사라도 이러한 공사가 중첩될 때 연약한 지반에서 나타날 현상에 대비해야 한다. 송파구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어쩌면 그동안 제대로 된 자료 없이 진행한 난개발의 결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 지도에 따르면 잠실 지역과 석촌동 지역은 토사가 두껍고 지하수가 높으며 암석의 파쇄가 많아서 취약한 지반이므로 각종 토목공사 때 정밀한 지질조사가 필요하다. 동공과 싱크홀 가능성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여기에다 각종 지하 매설물의 위치, 건물들의 기초 형식과 유지관리 실태를 나타내는 자료들을 통합, 관리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신뢰성 있는 자료가 구축되면 싱크홀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충분히 예측 가능한 재해(災害)일 수 있다”고 당부했다.

◆시민 불안 가중
한편, 경기·서울·인천 등 수도권 주민 1000명 중 950명은 싱크홀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으며 이중 800명은 직접적인 싱크홀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기개발연구원 이기영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14일 수도권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싱크홀 발생에 대한 인식조사를 실시한 뒤 작성한 연구보고서 ‘도시를 삼키는 싱크홀, 원인과 대책’을 통해 “수도권 시민들은 도심 속 싱크홀에 대해 폭염이나 가뭄, 황사, 산사태보다 더 위협적인 재난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시민들은 싱크홀에 대한 불안감을 묻는 질문에 53.5%가 '매우 불안하다'(53.5%), 41.7%가 '불안하다'고 답했다. 95.2%가 싱크홀에 대해 불안감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이어 '당신도 싱크홀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그렇다'(55.1%)와 '매우 그렇다'(24.5%)가 79.6%를 차지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싱크홀 위험이 큰 지역은 관 주도만으로 넓은 지역을 정밀조사하기 어렵기 때문에 시민들로 하여금 기초벽체에 균열이 새로 발생하거나 창문 혹은 방문이 작동되지 않는 등 싱크홀 징후 발생 시 신고토록 해야 한다”면서 민과 관의 공조를 강조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또한 “싱크홀에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지침마련이 시급하다”며 “싱크홀 위험지도를 작성하여 도시계획부터 사업승인 및 관리에 활용할 수 있는 조례 제정 등을 주문하는 한편 지하수위 저하 및 개발사업 추진 시 급격한 지하수위 변화가 싱크홀 발생의 원인인 만큼 싱크홀 방지를 포함한 융합적 물 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서울시의 대응이 미비하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석촌지하차도에 생긴 동공 원인을 9호선 지하철 공사로 추정했을 뿐, 향후 대책과 계획에서 대해서는 시민들이 안심할 만한 실제 대책을 마련되지 않았고 긴급조치로 교통을 통제하고 빈 공간에 토사와 아스팔트를 부은 것이 전부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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