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호 특별법’ 정국이 난항에 빠지고 이에 따라 새정치민주연합의 고민과 갈등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런 어수선한 상황에서 이른바 ‘온건파’가 전면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당 지도부 및 강경파와는 다른 목소리를 높이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어 정계의 시선을 끌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온건·중도파’의 급부상은 여러 의미를 띠고 있다. 무엇보다 이들은 ‘장외투쟁’을 기치로 내걸고 있는 당내 주류 강경파와 여기에 끌려가는 듯한 면모를 보이고 있는 당 지도부에 전면적으로 반기를 드는 모양새다.
◆ 26명으로 크게 늘어난 온건·중도파
이렇게 온건·중도파가 급부상함에 따라, 한편으로는 이 같은 양상이 ‘당 내분’으로 비춰질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당이 일치단결해도 모자랄 때에 내분 요소를 하나 더 보탤 필요가 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특히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이 7·30재보선 참패 이후 극심한 분열 양상으로 치닫는 상황이라, 온건파의 부상은 “내분을 가속화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새정치민주연합 내 주류로 분류되는 의원들은 이에 대한 불만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한 시사평론가는 “온건파 의원들의 세력화는 나름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 평론가는 “그동안 당내 강경파가 ‘현실 정치’를 도외시하고 ‘투쟁’에만 몰두한 면이 많다”고 말했다. “강경파의 목소리가 워낙 높다보니 당내에서 엄연히 한 축을 담당하고 있던 온건·중도파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 평론가는 “그동안 야권이 선거 때마다 ‘정권 심판론’을 전면에 내세웠다가 결국 크고 작은 패배를 당하고, 이제는 당 존립 여부가 불투명해지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 접어든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평론가는 “이러한 현실에서 온건·중도파 의원들의 급부상은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민심에 보다 부합하자는 합리적 정치 운동의 첫발을 내딛는 움직임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견해를 보였다.
이들 온건파 의원들은 지난 9월 1일 서울 시내 모처에서 오찬 회동을 진행하며 자신들의 존재감을 대외에 널리 알렸다. 이들 ‘민주당 집권을 위한 모임’(모임 명칭)은 오찬 자리에서 “장외 투쟁을 삼가하고 국회에 등원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이들 의원이 이날 다진 결의는 대내·외적으로 ‘야권에도 이런 목소리가 있다’는 선전 효과와 더불어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를 압박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정계 일각에서는 “이들 의원의 모임은 단순히 식사나 하며 뜻을 모으는 선을 뛰어넘어 일종의 강력한 독자 세력화를 만방에 선언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고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아울러 “특히 이들 의원 상당수가 당대표직에서 물러난 안철수 의원과 관련이 있는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온건파의 독자 세력화는 결국 ‘친노’로 대표되는 강경파 주류와의 권력 투쟁 서막을 알리는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 ‘국회에서 정치력 발휘해야’ 한목소리
이날 회동에는 김영환·김동철·박주선·조경태·노웅래·김승남·최원식·황주홍 의원 등이 참석했다. 이 모임에서 가장 목소리를 높인 의원은 단연 조경태 의원이다. 그동안 당내에서 ‘소수 이견’으로 두드러진 존재감을 과시했던 조경태 의원은 이날 모임에서도 “이제 장외투쟁을 멈추고 국회를 조속히 정상화하자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며 포문을 열었다.
이어서 조경태 의원은 “민생국회와 관련해서는 하루 속히 통과시키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 국회의원라면 마땅히 할 의무”라며 “이와 동시에 19개 국회 상임위를 정상화시켜 정상적인 국회 운영이 되도록 하고 실종된 정치를 복원시켜나가는 것도 국회의원의 의무”라고 말했다.
이어 조경태 의원은 “여당이 의사일정을 제안하지 않으면 우리 야당이 먼저 의사일정을 제안해서라도 국회 운영을 정상화 시키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주요 기류인 ‘장외 투쟁’에 전면적으로 반기를 드는 취지의 발언이라 이에 대한 당지도부 및 강경파 의원들의 반응이 주목된다.
이와 아울러 조경태 의원은 “세월호 특별법도 정치력을 발휘해 하루빨리 통과시켜야 한다”며 “이와 별도로 민생법안은 조속히 통과시켜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는 책임정당의 면모를 보여줘야 한다"고 일갈했다.
이날 오찬 회동에 참석한 다른 의원들도 ‘국회 정상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한껏 드높였다. 김영환 의원은 “국회를 보이콧한다거나 장외투쟁으로만 치닫지 말고 여당을 견제하는 가운데 협상력을 높여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산적한 국정 사안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환 의원은 “하지만 이것이 세월호 특별법을 뒤로 미룬다거나 포기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라며 “다만 전력을 약화시키는 국회를 버리는 투쟁노선에서 벗어나자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이와 아울러 김영환 의원은 중도·온건파가 세력화로 급부상할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당 노선을 둘러싼 논쟁은 아주 중요한 문제다. 작년 천막투쟁도 그랬으며 연말 예산국회에서도 계속 반복되어 왔다”고 답변했다.
김영환 의원은 “그동안 선거에서 번번이 패배했고 국민의 지지를 잃었던 만큼 이제부터는 패배의 방정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독자 세력화’에 대해서는 즉답을 피하는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또한 박주선 의원은 “만약 새누리당이 3자 협의체를 받지 않는다면, 우리 야당의 최고 무기는 장외투쟁이 아니라 의사일정에 합의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특별법과 국회 정상화 문제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며 “우리가 의사일정 협의 제안을 먼저 해야 한다”고 사고의 전환을 강조했다.
이들 의원들은 대체로 “새정치민주연합의 장외투쟁이 앞으로도 반복되는 한, 일반 국민의 시각에서는 ‘어떻게 정부를 맡길 수 있겠는가’라는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할 것”이라는 데 의견이 일치되고 있다.
이들 온건파 의원들은 오찬 모임에 그치지 않고 추석 연휴 기간 각 지역구에서 민심을 파악한 뒤 향후 당의 진로 등을 놓고 ‘난상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으로 알려져 있어 지펴놓은 ‘불씨’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 ‘강경파와의 맞대결은 시기상조’ 시각도
이렇게 온건·중도파 모임에 뜻을 같이한 의원들은 원래는 15명 선이었지만 최근에는 26명으로 크게 늘어난 상황이다. 그만큼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의 강경노선에 문제의식을 가진 의원이 상당하다는 방증이다.
현재 ‘민주당 집권을 위한 모임’에는 김동철·김승남·김영환·노웅래·문병호·민홍철·신학용·안민석·오제세·유성엽·이낙연·이상민·이언주·이종걸·장병완·전정희·정성호·조경태·주승용·최원식·황주홍 등 26명의 의원이 소속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으로 소속 의원 수가 늘어날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정치평론가는 “이들 온건·중도파 의원이 처음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계기는 지난 8월 말 이른바 ‘장외투쟁 반대 연판장’에 서명하는 활동을 본격화하면서부터였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8월 26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15명이 “국회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됩니다”라는 제목으로 된 장외투쟁 반대 성명서를 의원들에게 돌린 것이 계기가 됐다. 이날 이후 온건파 의원들의 뜻에 동조하는 의원들이 점점 늘어나 급기야는 ‘세력화’를 거론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특히 이들 의원 중 상당수가 장·차관 출신이라는 점도 시선을 끈다. 특히 김영환 의원은 김대중 정부 시절 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낸 바 있는 4선 의원이다. 장병완 의원(재선)·변재일 의원(3선)은 노무현 정부 시절 각각 기획예산처 장관·정보통신부 차관을 역임한 바 있다. 아울러 이들 중 상당수는 김한길·안철수 전 당대표 지도부에서 당직을 맡기도 한 공통점이 있다.
이에 대해 한 시사평론가는 “이들 온건·중도파 의원은 과거 국정 운영에 참여한 적이 있다는 점에서 ‘현실 감각’이 풍부하다는 특징이 있다”며 “이는 이른바 ‘운동권 이데올로기’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강경파 의원들의 마인드와 크게 구분되는 지점”이라고 분석했다.
그렇지만 당 일각에서는 “‘민주당 집권을 위한 모임’이 당장 독자 세력화 될 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가뜩이나 새정치민주연합이 극도의 혼란과 분열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데, 이런 부정적인 상황에 한몫 보탠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정치평론가는 “더욱이 ‘민주당 집권을 위한 모임’에는 안철수·김한길 대표 시절 지도부에 속했던 의원들이 많기 때문에 자칫 현 당 지도부에 반기를 드는 집단행동으로 비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며 “이 때문에 향후 총선 공천 문제도 그렇고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평론가는 “특히 ‘민주당 집권을 위한 모임’이 목소리를 높일수록 새누리당이나 일부 보수언론의 공격 수단으로 악용될 여지도 충분히 있는 만큼, 현재 수준에서 대랍각을 크게 세우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계 일각에서는 “이들 온건·중도파 의원들이 향후 안철수 의원의 재기와 맞물려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도 높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들의 응집력이 친노·강경파로 분류되는 의원들에 비해 어떨지가 가장 큰 관건”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결국 투쟁력에 있어 우위인 강경파를 넘어설 힘과 명분이 아직은 다소 부족하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