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재계는 매일 '잠못드는 밤'
'금융계 마당발'로 불리는 김재록 인베스투스 글로벌 전 대표의 로비의혹 사건이 정치권에 묘한 긴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단순히 김씨가 특정 사안과 관련해 정. 관계에 로비를 했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공교롭게도 그의 정치권 인맥이 여야를 망라해 있을 뿐 아니라 유력 대선주자 진영에도 광범위하게 포진해 있어 이번 사건이 자칫 내년 대권 판도에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는 점에서다. 이 같은 로비의혹사건이 터질 경우, 한쪽은 일방적 공격을 펼치고 다른 한쪽은 방어하느라 급급한 양상을 보이기 일쑤지만 이번 사안의 경우, 여야 모두 "왜 이런수사를..."하며 마땅치 않아하는 모양새도 특이하다. 여야 각정파와 일부 대선주자 진영은 검찰 수사가 자신들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까지 갖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참 희한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김씨가 DJ 정부 시절 각종 기업 구조조정에 깊숙이 관여했던 만큼 DJ 정부의 적자를 자임하는 현 정부와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을 것이라며 대여 공세를 펼치고 있지만 내부 사정은 복잡하다.
◆한나라"노 대통령, DJ 정권 브로커도 세습했다"
한나라당은 금융브로커 김재록씨에 관한 각종 의혹 사건을 '김재록 게이트'로 규정, 정치쟁점화를 시도하고 나섰다. 하지만 여야는 내심'김재록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몰라 긴장하는 분위기다.
우선 이명박 서울시장의 경우, 이 시장과 가까운 한 의원이 수억원을 수수했다는 서초동(검찰)발 의혹제기와 함께 현대차그룹 양재동 연구개발센터 인허가와 관련한 서울시 로비 의혹 등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신경이 곤두서 있다. 이 시장측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하지만, 은근히 검찰 수사의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눈치다.
더욱이 이 사건의 당내 진상조사단장에 박근혜 대표와 가까운 이한구 의원이 임명된 것도 두 사람의 대권 경쟁과 맞물려 묘한 추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만일 이 사건의 수사 파장이 이 시장쪽으로 쏠릴 경우, 진상조사단을 누가 이끄느냐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재오 원내대표가 2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주요당직자 회의에서 작심한 듯 입을 열었다.
금융브로커 김재록 씨 사건과 관련, 이 원내대표는 "노무현 정권은 김대중 정권 때의 비리도 세습하고 브로커도 세습하고 있다"며 공격의 포문을 열었다.
그는 윤상림·황우석 사건 등을 언급한 뒤 "권력이 있는 곳곳에 노 정권의 권력이 크든 작든 행사돼 비리가 만연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검찰의 태도도 문제다. 김 씨와 연루된 정관계 인사들이 청와대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청와대가 이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하진 않았는지 의혹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정훈 정보위원장은 구체적으로 검찰의 기획수사 의혹을 제기했다. 정부가 5·31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정치적 의도를 갖고 검찰의 사건에 관여했을 수 있다는 게 김 위원장의 주장이다.
그는 "김 씨가 주로 민주당 쪽 인사와 친분이 있을 가능성이 있고 일부가 고건 전 총리의 선거캠프에도 가 있다고 한다"며 "호남표를 두고 민주당과 경쟁해야할 우리당이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과 고 전 청리의 발목을 잡으려는 건 아닌지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이날 당내 경제통으로 꼽히는 이한구 의원을 단장으로 하는 진상조사단을 구성키로 했다.
◆우리당 "지방선거 영향 미칠까" 전전긍긍
열린우리당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다. 당의 중진 또는 초선 의원들과 김씨와의 친분설과 함께 유력 대기업의 컨설팅 수수료 관련 의혹, 유력 카드회사 설립 관련 의혹 등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의 경제부총리를 지낸 이헌재씨와 김씨와의 친분설이 곧바로 현 정부 경제통 출신 정치권 인사들의 연루설로 확산되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터져나온 로비의혹 사건이 여권에 결코 유리하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당 정동영 의장측의 초조한 기색도 감지된다. 이 사건이 불거지면서 성추행 파문이나 이 시장의 `황제 테니스' 논란이 급속히 가라앉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여당측은 불만이 많다. 한 중진 의원은 "검찰이 우리를 도와준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푸념했다.
우리당은 28일 오전 열린 고위정책회의에서도 당 지도부의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그러나 김 전 대표가 부회장으로 있었던 아더앤더슨 코리아에 자녀들이 취직했던 강봉균 정책위의장과 김진표 교육부총리 등은 본인들이 나서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등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이날 회의에서 강 정책위의장은 검찰에 구속된 금융브로커 김재록씨와의 관련의혹에 대해 결백을 주장하고 나섰다.
강 정책위의장은 "자신의 딸이 김재록씨가 부회장으로 있었던 아더앤더슨 코리아에 잠시 근무한 적이 있지만 그 과정에 아무런 의혹도 없다"고 해명했다.
강 정책위의장은 특히 "일부 언론에서 추측성 기사를 남발해 국민들에게 의심을 주는 일이 있다면서 이러한 보도 태도는 개선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간접적으로 언론보도에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강 정책위의장은 "자신이 정부에 몸담았던 지난 2000년 1월까지 김재록씨를 알지 못했으며,그 이후로도 김씨로부터 합법적인 후원금도 단 한푼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강 정책위의장은 이와 함께 "검찰의 엄정한 수사를 거듭 촉구한다"면서 "정치권과 관련된 사안일수록 정치권에 눈치보지 말고 검찰은 신속하게 수사하고 언론도 있는 그대로의 수사상황을 보도해 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한 고위 관계자도 "김 전 대표가 여기저기 후원금을 돌렸다니까 정치권이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라며 "대형 게이트로 비화하면 지방선거를 앞두고 엄청난 태풍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민주당 "김재록 게이트 참여정부에서 일어난 일..."
민주당은 김씨가 DJ의 특별보좌관을 지낸 인물인데다 국민의 정부시절 각종 로비 의혹이 있는 것으로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대해 불만이 많다. 특히 김씨의 동생이 한화갑대표의 2002년 당내 경선을 도와줬다는 점에서 검찰 수사가 한 대표를 겨냥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까지 제기되고 있지만 정작 한 대표 본인은"이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강하게 연관설을 부인했다.
이상열 대변인은 28일 국회에서 기자브리핑을 자청해 "김재록씨의 구속사유가 된 거액의 대출 리베이트 수수혐의등은 모두 참여정부 때 일어난 일"이라며 국민의 정부때와는 무관함을 강조했다.
이 대변인은 "김씨가 대출을 알선해주고 우리은행으로부터 13억원의 대출리베이트를 받은 시점은 지난해 5월로 현 정부하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변인은 또 "구속된 김씨가 특정업체 대표로부터 신동아화재를 대한생명과 분리해 인수할 수 있도록 재경부등에 부탁해달라는 명목으로 1억5천만원을 받은 시기는 사실 국민의 정부 시절이지만, 한화에서 신동아화재와 대한생명을 일괄인수한 만큼 실패한 로비에 불과하다"라고 지적했다.
이 대변인은 이처럼 김씨의 구속사유로 봤을 때 김씨 사건은 국민의 정부시절과는 무관하다고 애써 주장했다.
이 대변인은 또 현대 기아 자동차의 로비와 관련해서도 현대차 신사옥 건설관련 부분은 2004년도에 건교부와 서울시로부터 건축인허가를 받은 사안이라며 이 부분 역시 참여정부하에서 불거진 일이라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참여정부가 유리할 때는 국민의 정부를 계승했다고 하고, 불리할 때는 모른척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번 사건에 대한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거듭 촉구했다.
◆고건 측"김재록 연관 주장, 사실무근"
고 건 전 총리측도 예외는 아니다. 고 전 총리측은 한나라당 김정훈 정보위원장이 "김재록씨 사람들이 고 전 총리 캠프에도 가 있다"고 발언한 데 대해 급히 보도자료를 내고 "김재록씨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고 전 총리 캠프에도 있다"는 한나라당 김정훈 의원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고 전 총리의 측근인 김덕봉 전 총리 공보수석은 보도자료를 통해 "고건 전 총리는 이른바 '캠프'를 운영하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김씨 사람들이 고건 전 총리 캠프에도 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고 전 총리측 일각에서는 이번 수사가 최근 우리당의 `고건 때리기'와 전혀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이번 수사에 대해 "정치적 의도는 없는 것 같다", "소리만 요란하지 별 내용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지방선거를 앞두고 수사가 본격화되고 있고 여야 정치인들의 관련 의혹이 잇따라 불거지고 있는데다 일부 대권주자 캠프까지 관련돼 있다는 점에서 그 충격파가 간단치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한편 민주노동당 심상정 수석부대표도 '김재록씨의 정.관계 로비 의혹'과 관련해 "지금 빙산의 일각이 드러났다고 보고, 관련된 범위나 역할로 미루어 볼 때 김재록 로비 사건은 게이트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며 "핵폭탄이란 감을 갖고 있다"고 지적해 주목된다.
심 수석부대표는 "검찰이 아주 국부적인 문제로 축소"해선 안되고, 검찰 수사를 지켜보며 "제대로 못하면 특검 또는 국정조사 통해 밝히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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