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낭만자객
[영화리뷰] 낭만자객
  • 이문원
  • 승인 2003.12.06 10: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 코미디의 단점이 모두 들어있는 최악의 선물세트
파렐리 형제가 보여준 '저급센스 예찬'의 비젼이 단순히 그들만의 이벤트적 특성이 아니라 상당한 전염성을 지닌 것이었음은,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이후 등장한 코미디 영화의 트렌드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문제는 모든 사회적 금기 - 난잡한 섹스, 장애인 비하, 유색인종 비하, 동물학대, 성차별 등 - 에 도전하며, 그 논란성을 최하의 저질 센스와 뒤섞어 독창적인 아나키즘으로 이끌었던 파렐리 형제의 도발적 스타일에서, 예민한 논쟁점을 제어하고 저질스런 묘사들만을 취하는 방식이 유행이 되었다는 점인데, 윤제균 감독의 신작 "낭만자객" 역시 한국에선 그닥 많지 않은, 이른바 '변종적 파렐리 스타일'의 계승자인 것만은 분명하다. 좀 더 '도전적인' 태도를 취하지 못하고 그저 근래의 트렌드 요소만을 추구했다 해서 비판하는 것은 다소 무의미한 구석이 있는 일이지만, "낭만자객"의 경우, 이런 안이한 방향설정 외에도 비난받아 마땅한 부분이 너무나도 많은 영화이다. "낭만자객"은 영화 제작의 모든 측면에서 완전히 실패하고 있다. 연출, 각본, 촬영, 편집, 음악, 연기 등, 중간치라도 가는 부분을 찾아보기 힘들고, 무엇보다도, 전혀 우습지 않다. 끔찍한 수준이다. 근래 들어 이 정도로 '망가진' 영화를 구경해본 일이 없을 정도이다. 그리고 그 실패의 최중심부에는, 엔터테인먼트의 기본이 되는 '아이디어'가 부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발한 아이디어라던가, 잘 다듬어진 아이디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디어 자체가 없다. 그리고 그 빈구석을 어이없는 저질 개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철지난 죠크들, 평면적인 대사들에 '사투리'를 씌워 웃겨보겠다는 안이한 발상은 짜증을 넘어서 민망하기까지 하고, 동성애 코드와 인분이 등장하는 나름의 '도발적 개그'들은 타이밍 불발과 속성의 진부함, 그리고 '지저분함' 자체를 아이디어라 믿는 기이한 확신 덕택에, '금기'가 깨어졌다는 데서 얻어지는 통쾌함 대신 너저분한 불쾌감만을 안겨준다. 이야기 구조는, 엉망이지만 확실히 망가뜨리지 않아 '무정부주의적 전개'가 아닌, 그저 '잘못 구성된' 구조라는 생각 밖에 안 들고, 인물동선도 엉망이어서 누가 어디로 움직이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편집은 굼뜬 스피드로 끊어내 개그펀치의 지점을 늘상 놓치고, 대사들 역시 참혹한 수준이다. 한국 코미디 영화의 악습인 '코미디 2: 드라마 1'의 비율은 전혀 수정과 보완작업을 거치지 않은 채 뻔뻔스레 그대로 답습되고 있으며, 윤제균 감독 특유의 '사회적 요소의 가미로 이끌어내는 신파 상황' - 이번에는 '미군 여중생 압사사건'의 변형이다 - 은 그의 전작 "색즉시공"에 등장하는 '낙태' 이슈만큼이나 어색하고 무책임하며 삽입이유를 알기 힘들다. 이 영화에는 이 밖에도 '알기 힘든 것' 투성이다. 모든 것이 이해하기 힘들다. 왜 이런 식으로 '만들어야만' 했는지 알 수 없다. "낭만자객"은 어떤 종류의 코미디건 절대 들어서서는 안 될 방향을 착실히 걷고 있는 영화이며, 어떤 종류의 영화제작 방식이건 간에 절대 피해야 할 방향을 스스로 선택한 영화이기도 하다. 그닥 언급할 것도 언급하고 싶지도 않은 영화이지만, 이 정도로 처참하게 무너진 영화를 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며, 그야말로 한국 코미디의 단점들만을 모아놓은 '선물세트' 같은 영화이기에, 나름의 '보고서적 가치'는 있을 듯하다. 그리고 이 영화는 향후에도 이런 '보고서적 가치'에 의해 몇번이고 언급될 수 있을 법한, 치욕스런 인기도를 자랑하게 될 영화이다. 이문원 기자 fletch@empal.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