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이 통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갈등과 잡음은 비단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양 은행의 통합 승인을 얼마 남기지 않은 현 시점에서, 외환은행 내부에서는 노조와의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 금융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9월 18일, 외환은행은 지난 3일 노조가 개최하려 했지만 결국 무산되고 만 임시 조합원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직원 898명을 인사위원회에 회부하기로 전격적으로 결정을 내렸다.
◆ 징계 방침 vs 고소장 제출
외환은행 측은 9월 18일부터 24일까지 인사위원회를 개최해 상기 직원 898명에 대한 징계 절차 및 수위를 결정 내릴 방침을 세웠다. ‘898명’이라는 징계 예상 인원은 은행권 사상 최대 규모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9월 24일 이후 징계 인원 및 범위가 확정되면 외환은행 내부에서는 노사갈등의 거센 후폭풍이 몰아칠 전망이다. 더욱이 이는 하나은행과의 조기통합 일정에 엄청나게 중대한 변수로도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월 3일 외환은행 노동조합은 서울 강서구 88체육관에서 임시 조합원 총회를 개최를 전격적으로 시도했다. 이 총회는 사측이 추진하는 하나은행과의 조기통합 방침에 대해 조합원들의 찬반을 묻는 투표를 진행하려는 목적으로 개최를 추진한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임시 조합원 총회는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조기통합에 있어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임시 조합원 총회는 정족수가 미달되는 바람에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외환은행 노동조합에 따르면 임시 조합원 총회는 이날 오전 11시 개최할 예정이었지만, 결국 열리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총회가 제대로 성립하려면 약 3,300여명의 외환은행 조합원이 참여해야 하지만 실제 참가자가 이 인원에 훨씬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날 총회에 참석한 인원 규모에 대해 금융권에서는 약 700여명 쯤 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외환은행 노조는 쟁의 행위 찬반투표 등 어떻게든 행사를 진행하려고 했으나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에 대해 외환은행 노조 측은 “외환은행 운영진이 직원들이 총회에 참석하는 것을 방해했다”고 주장하고 있어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실제로 외환은행 노동조합은 임시 조합원 총회가 무산된 데 대해 법적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지난 9월 15일 “조합원 총회 방해 등 부당노동행위를 저질렀다”며 김한조 외환은행장 및 경영진을 서울지방노동청에 고소한 것이다. 외환은행 노동조합 측은 고소장에 “임시 조합원 총회는 엄연히 노동법과 외환은행의 단체협약을 통해 보장된 정당하고 적법한 조합 활동”이라며 “하지만 사측이 총회를 방해한 행위는 물론, 조합 활동 지배 및 개입, 조합원 징계 등은 명백한 부당 노동 행위가 아닐 수 없다”라고 적시했다.

◆ ‘밀리면 안 된다’ 노·사 강경 자세
이어 외환은행 노동조합 측은 “피고소인(김한조 행장 및 경영진)은 정당한 조합원 총회를 불법으로 규정한 다음 조합원들의 총회 참가를 끊임없이 방해했다”며 “총회 참가 조합원들에게 불이익을 부여하는 한편 현재까지도 노동조합 활동을 지속적으로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외환은행 노조가 서울지방노동청에 고소장을 전격 제출함에 따라 외환은행 경영진과의 갈등은 단순히 내부 차원을 넘어 경제·사회적 범위의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이에 대해 한 경제평론가는 “외환은행이 인사위원회를 강행해 징계 절차 적업에 돌입한 것은, 이렇게 노조 측이 고소장을 제출한 데 대한 일종의 맞대응의 성격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한편 외환은행 사측은 “임시 조합원 총회가 비록 불발로 끝나기는 했지만 직원이 대량으로 근무지를 이탈한 상황은 결코 그냥 좌시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자세를 굽히지 않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외환은행 측은 “임시 조합원 총회는 그 내용을 보면 평일 업무시간에 개최할 만큼 긴급하고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안이 아니다”라며 “지난 9월 3일 임시 조합원 총회에 상정된 사안 내용은 어디까지나 노동조합 대의원대회 등의 내부 논의를 거쳐 투표로 진행할 수 있는 안건”이라고 강조했다.
외환은행 측은 “더욱이 노동조합 측은 은행과 사전에 협의도 하지 않고 기습적으로 임시 조합원 총회를 개최했다”며 “이는 엄연히 불법적인 업무방해 행위 및 위법적인 쟁의행위에 해당 된다”고 밝혔다. “노조 측이 고소장에서 주장하듯 경영진이 부당 노동 행위를 한 것은 절대 아니다”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렇게 여러 이유를 바탕으로, 외환은행 측은 인사위원회를 통해 자리를 비운 898명의 직원에 대해 근무지 무단이탈·업무지시 거부·업무 방해 등의 징계사유를 적용시킬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융가에서는 “외환은행이 내릴 징계 방침이 결코 약한 수위에 그치지는 않을 것”이라며 결과에 대해 예의 주시하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외환은행 경영진이 ‘여기서 밀릴 수는 없다’는 각오를 강하게 품고 징계 절차에 임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소문이 벌써부터 파다하게 돌고 있다.
특히 김한조 외환은행장이 강경한 태도를 대·내외에 숨기지 않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김 행장은 “외환은행 전체 직원 가운데 무려 10%나 되는 인원이 근무지를 정당한 이유 없이 무단이탈한 상황은 외환은행 역사를 보아도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강하게 질타하고 있다.
이어 김 행장은 “만약 이 사태를 대충 보아 넘긴다면 향후 외환은행 조직 전체의 기강이 와해되는 것은 물론 대외 이미지에도 커다란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대량 징계 사태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 노조 내 갈등도 새로운 변수
이렇게 외환은행 직원에 대한 대규모 징계가 날이 갈수록 현실화 되는 상황이 나타나면서, 외환은행 노동조합 측 또한 이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부단히 나서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외환은행 노동조합은 사측이 인사위원회를 열기로 한 방침을 내리기 전날인 지난 9월 17일 오후 서울 외환은행 을지로 본점에서 임시 대의원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노조 측은 사측의 대규모 직원 징계 강행에 대한 대응책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
이날 임시 대의원회의에서는 징계로 인해 인사 상 불이익을 받을 조합원을 위해 ‘희생자 구제를 포함한 투쟁기금’을 조성하기로 뜻을 모았다. 기금 모금 시기와 방법은 노조 운영위원회에 위임했다.
이날 김근용 외환은행 노조위원장은 “징계철회를 위해 노사 대화를 포함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며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노조가 사측의 강공 드라이브에 결코 밀리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에 따라 만약 9월 24일경 징계가 확정되면 노사 갈등이 한층 고조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이렇게 외환은행 노동조합 측이 투쟁의 기치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조 내부에서는 징계 단행을 앞두고 ‘내분’의 기미가 다소 나타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강경 일변도인 노조 집행부의 의지와는 달리, 일부 노조원들을 중심으로 “집행부는 사측과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요구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요구는 특히 지난 3일 임시 조합원 총회 참석자가 많았던 지방 영업본부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지난 9월 10일 외환은행 노조 호남 지부는 성명서를 발표하며 노조 집행부를 적극적으로 압박하고 나섰다. 외환은행 노조 호남 지부는 성명서를 통해 “노조 집행부는 조합원을 사지로 내몬 데 대해 사과하고, 아울러 징계 대상자에 대한 보호 대책을 마련하라”고 강하게 촉구했다.
아울러 부산·경남, 대구·경북, 부산·울산 등 다른 3개 지부도 각각 이와 비슷한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이들 지부는 지회장·분회장직의 일괄적인 사퇴를 요구하고 나서 노조 집행부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렇게 외환은행 노동조합 집행부에 대한 비난 수위가 높아지면서 노조 측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조합원이 일치단결하여 투쟁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시점에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상황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한편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외환은행이 “조직의 기강을 바로 세우겠다”며 징계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상황에 대해 원칙적으로는 일단 동의하면서도 “조직 화합을 위해 최대한 직원들을 다독이겠다”는 다소 중립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를 통해 조기통합에 대한 직원들의 공감대를 끌어내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
이렇게 상황이 어수선한 가운데, 하나금융그룹은 오는 10월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통합 승인을 추진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이는 현재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외환은행 노조를 겨냥해 “더 이상 통합을 미룰 수 없다”는 의지의 발로로 해석된다.
지난 9월 18일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가능한 한 노사합의를 기본 원칙으로 하겠지만, 노동조합이 계속 거부하면 원만하게 안 되더라도 우리대로의 일정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10월 중 통합 이사회를 열고 금융위원회에 승인 신청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김정태 회장은 “노사합의가 잘 된다면 통합 승인신청 시점은 약간 당겨질 것”이라며 여운을 남겼다. [시사포커스 / 하준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