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빈 강의시간 ‘시간때우기’로 모텔 활용
신촌 일대의 대학가, 진리의 상아탑으로 학구적이었던 분위기는 요즈음 찾아볼 수 없다. 이색적이고 화려한 ‘모텔’과 ‘비디오방’으로 홍등가 저리가라 할 만큼 문란한 성문화에 젖어있기 때문이다. 요즈음 대학가 커플들의 꼭 거쳐야할 코스로 ‘모텔’이 빠지지 않으면서 예약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도 없을 만큼 모텔들은 성업 중이다. ‘침대와 헤어 드라이기’를 비치한 색다른 ‘비디오방’ 역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만큼 인기다. 대학가 연인들은 짤막한 빈 공강시간에 이보다 더 좋은 ‘시간때우기’가 어디 있느냐며 오히려 반문한다. 모텔들 역시 학생들의 얇은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서 ‘한 시간에 5000원’으로 특가 세일로 방을 대여해주고 있다. 전문서적 파는 서점들은 수요가 없어서 문을 닫는 마당에 호황인 모텔은 왠지 대학가의 진정한 모습을 잃어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제 데이트는 모텔에서
대학가 모텔에 학생들이 몰리는 이유는 최신식으로 방을 꾸민 인테리어와 달라진 서비스가 학생들의 입맛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초고속 인터넷이 연결된 PC는 기본이고 대형 스크린과 다양한 채널을 즐길 수 있는 홈 시어터 시스템으로 최신 영화를 보고 플레이스테이션과 같은 오락기기로 게임을 즐기고, 월풀욕조에서 쌓인 피로를 푸는 복합 놀이공간으로 모텔들이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다. 퀴퀴한 냄새 따위로 손님을 맞이하던 모텔들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깔끔한 위생상태, 충분한 음료수와 향 좋은 원두커피까지 대학생들의 기호를 다 갖추었으니 오히려 외면당하는게 이상하다. 갖가지 이벤트로 승부를 보는 모텔들도 있다. 방안 곳곳에 풍선을 매달거나 바닥과 욕조에 장미를 깔아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기념일을 맞은 커플에게 와인과 케이크 같은 소품도 제공한다.
평소 자주 모텔을 이용한다는 이 모(여·27) 씨는 “집처럼 편안하고 투자대비 만족도가 매우 높다”며 “주말은 남자친구와 주로 모텔에서 지낸다”고 주저 없이 밝혔다. 인근 대학교의 학생이라는 홍 모(26) 씨는 “데이트 할 때 주머니 사정을 고려 안 할 수 없는데 모텔데이트는 경제적인 면에서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모텔을 이용하고 나오는 커플들을 만나 볼 수 있었는데 모텔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없어 보였다. 같은 대학을 다니는 커플로 교제를 숨기고 있는 이들은 오히려 몰래 데이트를 즐겨야 하는 비밀 커플들에게는 가장 좋은 장소라고 얘기했다. 함께 인터넷 게임을 즐기고 영화를 보는 등 다양한 데이트를 남의 시선 의식 없이 즐길 수 있어 좋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시험기간에도 학교 도서관보다는 모텔을 애용한다는 이들은 “도서관은 자리 잡기도 힘들고 남들 몰래 함께 공부를 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면서 “모텔의 경우 한 방에서 함께 공부하며 휴식을 취할 수 있어 훨씬 능률적”이라고 했다.
신촌의 한 모텔 업주(47)는 “요즘 대낮에도 모텔을 스스럼없이 드나드는 대학생들을 보면 걱정이 앞서는 경우도 많은 게 사실”이라며 대학생들이 피임에 대한 경각심이 없어 보인다는 점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객실을 치울 때 보면 콘돔을 비롯한 피임 도구를 사용한 흔적이 없는 커플이 상당수라고 밝혔다.
▶모텔 형 비디오방도 인기
비디오방인지 모텔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신종 ‘연인 비디오방’도 인기다. 침대형 소파와 물티슈, 헤어드라이기가 비치되어 있고 천장에는 둥근 거울, 벽면엔 1m는 족히 돼 보이는 거울 이 달려있으며 산소발생기까지 구비돼 있다. 화장실은 또 어떠한가. 입 헹굼용 가글, 일회용 컵까지 준비되어져 이곳이 과연 비디오방인가 의심케 한다. 한 술 더 떠서 아예 담요까지 제공하는 비디오방도 있었다. 주인은 “방 크기가 제각각이다”라며 “단골 고객에게는 큰 방과 담요를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비디오방에서 만난 대학생 조모(여·25)씨는 “비디오방에 물티슈와 헤어드라이기가 왜 필요한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면서 “화장실에 갔다 오다가 방을 잘못 찾아들어갔는데 낯 뜨거운 장면을 보고 몹시 놀랐다”고 했다.
이렇듯 ‘비디오물 감상실 업종’ 시설기준을 어긴 비디오방이 수두룩하지만 실제로 단속은 별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음반·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르면, 비디오방 시청각실 출입문은 전체 출입문 면적의 2분의 1 이상을 투명한 유리창으로 설치해야 하고, 또 침대와 침대 형태로 변형된 의자, 3인용 이상의 소파를 비치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되어 있다. 서대문구청은 이 대학가 일대 지역을 중심으로 시설기준 위반 비디오방을 적발, 벌금 등의 행정처분을 내리고는 있지만 게임장과 노래방 등 영업장에 기본적으로 단속이 집중되다 보니, 비디오방까지 단속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개방적 성문화, ‘반동거’하는 커플도 늘어
대학생들의 성의식이 개방적으로 변해 가면서 성관계를 교제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고 있는 남녀들도 늘어나 ‘반동거’를 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반동거란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한 집에서 같이 사는 동거와는 달리, 각자의 집이 있고 일주일에 며칠 혹은 한달에 몇 주를 상대의 집에서 머무르는 동거형태를 이르는 말로 경제성과 효율성이 높아 대학생들 사이에 인기이다. 최근 대학가의 하숙집의 경우 2인 1실의 하숙방은 찾기 힘들어졌고 원룸의 경우도 대부분 방이 하나 또는 2개인 시설로 바뀌었다. 룸메가 있다고 하더라도 독립적인 공간을 갖고 반동거를 하는 커플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여자 친구 2명과 반동거 경험이 있는 연세대 이모(24)씨는 “사귀는 사람끼리 서로 집을 방문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이라며 “함께 밥도 먹고 인터넷으로 영화도 보며 서로 생활 습관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교제의 한 과정이 반동거다”고 말했다. 직장에 다니는 언니와 함께 자취하며 이따금 남자 친구를 집으로 초대한다는 대학원생 김모(27) 씨 또한 “반동거는 데이트의 일상화이자 일상의 데이트화”라며 “따로 데이트할 시간을 내거나 비싼 돈을 들여 커피숍이나 DVD방을 찾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이라고 반동거의 장점을 밝혔다. 동거가 결혼을 전제로 하는 부담감이 있다면 반동거는 각자 별도의 생활공간이 있어 외형적으로도 떳떳하고 설사 헤어진다 하더라도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어 개인적인 성향이 뚜렷한 젊은 대학생들의 라이프스타일과 들어맞는 것이 증가하는 추세의 원인이다. 이화여대 함인희 사회학교수는 “외국에도 ‘LTBA(Living Together But Apart)’라는 단어가 있다”며 “자기 공간을 지키면서 필요할 때만 만나 생활한다는 독신과 결혼의 중간 형태”라고 말했다. 이들은 단절된 독립 공간에서 사생활을 중시하고 기존의 윤리 도덕적 관념보다는 현실적인 경제적 관념을 높게 평가한다. 또한 개방적인 성(性)문화가 보편화되면서 성에 대한 의식들이 가벼워지고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들이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개방된 성행동에 비해 그에 요구되는 성에 대한 가치관은 상대적으로 확립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성 경험을 한 대학생들의 비율은 점점 높아지는 추세고, 혼전 성 경험에 대한 의식도 상당히 관용적으로 변하고 있는 시점에 알콩달콩 사랑을 만들어가는 커플들에게 바라는 것은 자신만의 고유하고 올바른 성 의식의 확립으로 쾌락과 유흥에 물든 거리를 만드는 대학가의 모습을 한번쯤은 진지한 성찰과 반성으로 되돌아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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