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한국인 중에 40명은 자살로 목숨을 끊는다. 통계청이 23일 발표한 ‘2013년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로 사망한 사람은 총 14,427명으로 하루 평균 39.5명이 자신의 의지와 손으로 삶에 마침표를 찍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의 평균 자살률은 12명으로 한참 낮아 한국과 비교를 불허한다. 비교적 자살률이 높은 일본이 21명, 폴란드는 16명이다.
한국이 OECD 회원국 가운데 10년째 자살률 1위라는 암울한 통계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막상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니 너무 차이가 져서 그랬던 건지 관련 기사들 제목에 ‘충격’이란 말이 자주 보인다.
우리를 더욱 침울하게 하는 것은 2012년 주춤했던 적을 제외하면 해마다 자살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실제 숫자는 공식 통계보다 더 많을지도 모른다. 박봉수는 노래했다.
아아 저녁이 되면
자살을 못하기 때문에
술집이 가득 넘치는 도심(都心)
연령별로 보면 더욱 암담하다. 10대와 20대 그리고 30대에서 자살이 사망원인 1위를 기록했다는 조사 결과는 충격을 넘어 경악이다. 인생의 찬란한 에너지가 샘처럼 용솟음치는 시절, 쇠도 씹어 먹을 정도로 강한 체력과 고도의 정신력을 유지할 수 있는 시절에 이토록 많은 젊은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현실을 생각하면 실로 기가 막힌다.
한국의 자살률은 10년 전에도 1위였다. 자살 전문가와 지식인들이 나와서 문제점을 밝히고 해결책을 제시해왔건만 나아진 게 전혀 없는 데서 그친 게 아니라 갈수록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만일 해외여행을 나갔을 때 어떤 외국인이 한국 사람들은 왜 그렇게 자살을 많이 하지요? 라고 물으면 뭐라 대답할 것인가? 그리고 자라나는 아이들이 인터넷에서 자살 통계를 보고 나서 엄마, 아빠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이렇게 자살로 죽는 사람이 많아? 그 이유가 뭐야? 가르쳐 줘! 하고 떼를 쓰듯 물어본다면 대체 뭐라고 대답할 텐가?
한국인은 지금까지 이 같은 질문에 대해 제대로 된 아무런 답변도 준비하지 못했다. 만일 높아가는 자살률에 대해 시간을 들여 진지한 성찰을 했더라면 그래서 그 해결책을 찾아내려는 노력을 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쓸쓸하고 적막한 자살민국(自殺民國)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자살은 하나의 고백이며 항의이며 절망이다. 어쩌면 자신의 나약함에 대한 고백일지도 모르며 이 사회에 대한 항의일 수도 있고, 아니면 살아가고 있는 터전에서 아무런 희망도 숨 쉴 수 없다는 통렬한 인식에서 나온 절망이리라. 아니면 이 세 가지가 하나의 중력으로 작용해 자살을 감행하게 할 수도 있으리라.
사회는 개인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자살을 개인적인 문제로만 한정시킨다면 자살자는 줄어들지 않는다. 물론 사회적 연관성이 희박한 철학적 자살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우리 주변에서 철학적 삶을 사는 사람을 쉽게 발견할 수 없다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극히 이례적인 사건이다.
대부분은 생활밀착형 자살이다. 하루하루 사람들에 부대끼고 일에 치이면서 살아가지만 도통 앞길이 밝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 몰려 경제적으로 또는 심리적으로 불의의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될 때 또 그런 궁지에 처해 범죄자나 정신병자도 될 수 없을 때 자살이 구원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10대에서 30대까지 한창 삶을 향유해야할 세대의 사망 원인이 자살이라는 현실과 저출산 현상이 맞물려 한국은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이미 ‘압축노화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의 국격은 한국의 경제적 위상에 어울리는 국제 사회에서의 지위를 뜻했다. 그의 임기 동안 양극화는 심화됐고 자살자는 더 늘어났다. 내실보다 외화(外華)에 치중하게 되면서 삶의 질적인 측면에서 한국 사회는 깊이 병든 채 늙어가고 있다.
이 상태로는 희망이 없다. 한국의 국격은 더 젊어지고 더 건강해지는 방향으로 시스템 전반을 혁신하는 과정 속에서 세워나가야 한다. 계속 정신 못 차리고 있으며 국격이 자살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