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드로잉 전"
한국이 낳은 가장 '세계적'인 예술가, 백남준. 그의 명성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 이상이어서, 구미의 미술전문지가 선정한 '생존하는 가장 위대한 미술가' 10위 내에 선정된 것은 물론, 이른바 '비디오아트'의 아버지로서 모든 비디오작가들, 뮤직비디오 연출가들에게 우상으로서 '신봉'되는 정도에 이른다.
그런 그가 2001년에 손수 크레용과 유화물감을 사용해 그려낸, 그의 전문영역인 비디오아트와는 다소 거리를 두고 있는 '드로잉 전'이 열린다.
백남준이 지니고 있는 특유의 장난끼가 그대로 묻어나와 있지만, 왠지 모르게 이전과 같은 공격적이면서도 날카로운 냉소주의 대신 어딘지 처연하고 구슬픈 느낌이 도는 이번 드로잉 전시는, 최근에 중풍을 겪어 몸이 불편한 백남준의 현재 근황을 그대로 설명해주는 듯해 굳건한 지성의 벽으로 막아세운 백남준의 정서세계를 조금 비겁하게나마 엿본다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준다.
이런 느낌은 동물들을 다룬 무제 시리즈 등에서 잘 보여지며, 마치 어린아이로 돌아간 듯한 순수하며 동심어린 시선을 여러 작품들에서 확연히 엿볼 수 있다. 이런 '순수에의 복귀'가 새로운 종류의 백남준 미학으로 승화될 수 있을지, 아니면 거장의 노년이 으레 그렇듯 '단순성'에의 추구, '원천성'에의 집착에 불과할 것인지는 앞으로 백남준 행보를 유심히 지켜봐야 알 수 있는 일이겠지만, 일단 이번 전시를 통해 달라진 그의 모습, 달라진 그의 정신세계를 맛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있는 시간이 될 수 있는 듯하다.
(장소: 갤러리 마노, 일시: 2003.12.05∼2004.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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