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SAP 코리아에 대한 동의의결안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공정위는 6일 기업용 소프트웨어 독일계 개발업체인 SAP 코리아의 거래상 지위 남용 행위에 대한 동의의결 절차를 마무리하고 지난 1일 동의의결안을 최종확정했다고 설명했다.
SAP코리아는 전사적 자원관리(ERP,기업내 통합정보시스템 구축), 협력사관계관리(SRM,연관된 조직의 관리) 분야의 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각각 49.7%, 46%의 시장점유율을 가지고 있고 지난해 매출액이 3천억원에 달하는 회사이다. 이 회사는 불공정거래 혐의로 공정위의 조사를 받아오다 지난해 11월 동의의결 절차를 개시해줄 것을 신청했고 지난 4월 공정위의 결정을 거쳐 동의의결 절차가 개시됐다.
문제가 됐던 위반사항은 자사 소프트웨어 구매자가 계약해지를 요구할 수 없는 ‘부분해지 금지행위’와 협력사와의 계약을 3개월 전의 통보만으로 언제든 해지할 수 있는 ‘임의 계약해지 행위’이다.
SAP코리아는 지난 6월 부분해지를 인정하고 협력사 임의해지 조항을 삭제하기로 한 바 있다. 또한 이와 별도로 공공기관, 대학, 기업과 연계해 빅데이터 활용 기반을 조성하고, 관련 인재를 양성하는 공익법인(Design Thinking 혁신센터)을 설립하며 150억원에 달하는 최신 소프트웨어와 현금을 지원하는 등의 구제안을 내놓았다.
이유태 공정위 서비스업감시과장은 "국내 대기업의 70% 이상이 SAP코리아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고 유지보수 비용이 소프트웨어 가격의 22%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부분해지 허용의 효과는 상당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공정위는 SAP코리아 및 SAP가 창사 이래 유지해왔던 자사의 부분해지 금지 정책 등을 전 세계적으로 허용했다고 밝혔다. 이 과장은 "한국 공정위의 동의의결로 인해 다국적 기업이 자사의 글로벌 정책을 변경하게 된 최초의 사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공정위의 결정에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김기식 의원은 “과징금을 피하는 우회경로 및 면죄부로 악용될 우려가 있고 공익법인의 설립은 오히려 기업 홍보의 수단으로 활용될 확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출연금은 공적으로 설립된 피해구제기금에 출연되어야 하고 직접 소비자가 피해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사용되어야 한다”며 개선책을 촉구했다.
공정위가 지속적으로 동의의결제의 적극 활용 의지를 내비추고 있고 기업들 역시 제재를 수용하기보다 자진시정안을 내놓는 방안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어 앞으로 동의의결절차의 적용사례가 늘어날 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동의의결제란 공정위가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사업자를 제재하는 대신 사업자가 재발 방지 대책과 피해 보상을 약속하면 의견 수렴을 거쳐 법적 제재 없이 사건을 종결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동의의결안이 수용된 이후에도 시정 방안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는 경우 동의의결이 취소되고 법적 절차가 재개된다.
이 제도는 소비자 피해의 신속한 복구가 가능하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어 유럽, 미국 등에는 적극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특히 시장이 빠르게 변하고 쟁점이 복잡한 IT분야에 주로 활용되는 편이다. 지난 2002년 마이크로소프트의 PC운영체제 독점건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우리나라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당시 미국 측의 요구로 2011년 11월 이 제도를 도입하였다. 하지만 동의의결안이 적용 및 수용된 것은 2013년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로 적발된 네이버·다음의 사례에 이어 두 번째에 불과하다.
당시 네이버·다음은 공정위에 의해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가 적발되 과징금이 부과될 상황에 처했으나 심의를 일주일 앞두고 동의의결제 적용을 신청했다. 이후 양사는 기금 출연, 온라인 생태계 지원 사업, 공약 이행 점검을 위한 공익법인 설립 등의 구제안을 내놓고 성실히 이행할 것을 약속했고 2014년 3월 최종적으로 공정위에서 동의의결안이 수용된 바 있다.
하지만 당시에도 공정위가 동의의결을 통해 기업에 부과할 과징금을 우회적으로 감면해주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을 낳았고, 기업들이 면죄부로 악용할 우려가 있는 제도라는 평가도 받았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