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들어 달라 유인, 어린이 성폭행해
짐 들어 달라 유인, 어린이 성폭행해
  • 황선아
  • 승인 2006.04.07 1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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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지대 없는 어린이 성폭행의 실태
여자 아이들에게 짐을 들어달라며 옥상이나 지하로 유인해 성폭행한 강모씨가 인천 경찰청 광역수사대에 의해 지난달 31일 검거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DNA 분석결과로 붙잡힌 강씨는 지난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1년여 동안 10대 여자 아이들만을 노려 성폭행을 저질러 온 것으로 드러났다. 용산 어린이 납치 살인사건으로 떠들썩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난 연쇄적인 아동 성폭행 사건에다 범인 또한 지난 94년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로 구속돼 집행유예로 풀려난 적 있는 전과경력이 밝혀지면서 그 충격은 더해져 가고 있다. 안전지대 없는 아동성폭행의 굴레에서 아이들은 여전히 울고 있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가운데 재발에 대한 대책과 해결은 언제쯤 마련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짐 드는데 도와달라’며 성폭행 강씨는 2004년 5월 1일 학원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박모양(당시 13세)에게 “무거운 짐을 드는데 좀 도와달라”며 접근한 뒤 인근 건물 지하로 유인해 범행을 저지른 것을 시작으로 연수구, 부평구, 계양구 등지에서 5명의 어린이를 성폭행해 왔다. 강씨는 아파트 상가나 학교근처에서 비슷한 수법으로 접근해 미리 살펴둔 건물의 옥상이나 지하 등 인적이 드문 곳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시간대도 비교적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낮 시간이나 이른 저녁으로 하교하는 아이들을 붙잡아서 유인했다. 반항하는 아이들을 줄로 묶는다고 위협하거나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기도 했다. 1983년과 84년에 성폭행한 전력이 있는 그는 범행의 이유에 대해 “술을 마시면 그 성폭행했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쾌락에 못 이겨 또다시 어린이를 성폭행하고 싶어진다”고 밝혔다. 일전의 용산 어린이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 어린이 성폭행의 재발의 위험성이 크지만 낮은 형량 때문에 그는 집행유예를 받고 버젓이 범행을 저질러 오다 5명의 이린 피해자들을 만들고서야 붙잡힌 것이다. 우리나라는 성폭행범의 처벌연수가 짧으면 8개월에서 길면 3년 정도로 최하 형량이 15년인 외국에 비해서 턱없이 짧은 것이 현실이다. 지난 30일 서부지검에서 열렸던 용산 어린이 사건의 첫 공판에서 피해자 부모들은 잊을 수 없는 상처에 오열하며 “피의자에게 법정 최고형을 내려달라”고 울부짖기도 했다. 여성부는 이러한 솜방망이식 처벌에 공소시효를 폐지하고 강제추행과 강간을 동일하게 처벌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나서고는 있지만 노력이 부족한 까닭인지 더디기만한 개선에 피해아동은 계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실 정이다. ▶공조수사로 간신히 검거 인천경찰청이 공개수사에 나선 것은 2월 20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어린이 성폭행 사건 용의자 DNA가 한 사람 것이라는 통보를 받고 수사전담반을 편성하고 나서이다. 전담반 편성 직후 강씨가 범행 뒤 걸어가는 모습이 찍힌 CCTV 화면을 확보한 후에 용의자 얼굴사진을 담은 수배전단 2만 장을 만들어 배포했다. 이어 용의자에 대한 시민들의 제보가 들어왔고 지난달 말 남동공단의 한 공장에서 일하다 퇴직한 인물과 비슷하다는 제보를 받고 강씨를 붙잡았다. 경찰은 강씨의 타액을 채취해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해 용의자의 DNA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결국 확인하고 검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건 발생 초기에 경찰서간 공조수사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용의자를 조기에 검거, 피해자를 줄일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인천경찰청이 수사전담반을 편성, 공개수사에 나선 것은 강씨의 다섯번째 범행이 있고 나서 8개월이나 지난 2월 말이다. 강씨의 수법으로, 어린이를 성폭행한 같은 유형의 범죄가 2004년 5월부터 2005년 6월까지 인천에서만 5건이 발생했지만 인천경찰청은 이들 사건의 공통점을 간과한 채 경찰서별로 수사를 진행했다. 포천 초등생 유괴살해 사건을 계기로 경찰청이 전국의 성폭행 현장에서 채취한 용의자 DNA를 분석, 인천지역 어린이성폭행 사건 5건의 용의자 DNA가 일치한다고 통보해 준 뒤에야 인천경찰청은 광역수사대에 수사전담반을 편성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경찰서간 유기적인 공조수사 체제를 유지해 사건 발생 초기에 범인을 검거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 주장했다. ▶무력하기만한 아이들, 상처는 오래간다 지난해 전체 성범죄 피해자들을 보면 13세 미만의 아동 피해자의 수가 718명에서 738명으로 더 늘어난 것을 볼 수 있다. 증가하는 성폭력 사건에 아동 피해자의 후유증도 커져만 가고 있다. 어린이 성폭력은 그 대상이 어린이이기 때문에 자신 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 대해서 신체적으로 압도할 만한 능력이 없어 불안한 것이 현실이다. 이번 인천 성폭행범의 경우도 힘으로 제압할 수 있기 때문에 일부러 아동을 타겟 삼았다고 한 발언을 보아도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무력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것인지 알만 하다. 문제만큼이나 심각한 것이 후유증인데 9살 때 성폭력 당한 여성이 22년 후에 가해자를 찾아가 살해를 한 사건은 한 여성의 처절한 슬픔이 11년 동안 잊혀지지 않고 고스란히 가슴에 남아 괴롭혀 왔음을 보여 준다. 성폭력의 후유증은 어른에게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인데 하물며 성장하는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커다란 문제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이렇듯 성폭력의 후유증은 적시에 적절한 치료가 있지 않으면, 평생 동안 아픔을 등에 지고 살아 갈 수밖에 없다. 신의진(42) 연세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7세 이하 성폭력 피해 어린이의 60%는 일시적 기억상실증,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을 앓게 된다”며 “가족은 처참하게 무너지고 피해 어린이의 부모는 더 이상 성관계를 갖지 못하며, 이혼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그는 ‘남성중심화’되어 있는 우리 사회 전체의 구조적인 개선이 가장 절실하다며 정부나 국회의 근시안적 대책 수립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성폭력의 일상화를 경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건이 한번씩 터질 때마다 거창하게 나왔다 또 슬그머니 사라지는 일회성 대책의 반복보다는 전체적인 인식변화로 보다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이루어져야 함이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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