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대선후보들은 무수히 많은 공약들을 쏟아 놓는다. 그런데 국민적 요구가 큰 분야에 대해서는 여당 후보든 야당 후보든 내놓은 공약들이 거의 대동소이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표현방식만 다를 뿐, 꼼꼼히 들여다보면 오십 보 백 보 공약들이다. 특히, 지난 대선에서 ‘무상 복지’와 ‘경제민주화’는 시대가 요구하는 아젠다로 받아들여 너도나도 함께 외쳤던 것이 사실이다. 함께 필요성을 인정하고, 함께 공약했다면 최소한 그 분야만큼은 누가 당선 됐든지를 떠나서 여야가 힘을 합쳐 추진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이런 공통 공약들조차 정쟁에 휘말리면서 힘 있게 추진되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또, 공약했을 때와 달리 예산상의 문제 등 현실적인 문제로 좌초되는 경우들도 수두룩하다. 누군들 공약을 파기하고 싶어 그런 것도 아닌데, 정권을 잡지 못한 야당에서는 이를 두고 ‘대국민 사기’를 운운하며 정치 공세를 퍼붓기 일쑤다. 국민적 실망에 힘입어 국정주도권을 잡겠다는 전력이겠지만, 자신들도 국정을 운영하게 됐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계산착오나 현실적 문제들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한 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그런 가운데 최근 학교-보육 예산을 둘러싸고 중앙정부와 각 시도교육청 간에 갈등이 일고 있어, 박근혜 대통령의 대표적 대선 공약이 또 좌초되는 것 아니냐는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6일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는 경기 부천교육지원청에서 긴급 임시총회를 열고 2015년도 누리과정 예산과 관련해 어린이집 보육료 예산 전액을 편성하지 않기로 결의했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전국 시도교육청의 재정여건을 감안해 누리과정 등 정부시책사업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아니라 반드시 중앙정부가 부담하라”며 “지방교육재정을 정상화 해달라”고 촉구했다.
재정난에 허덕이며 사실상 파탄 상태에 있는 시·도교육감들이 고육지책으로 중앙정부를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정부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민과 어린이를 볼모로 정부를 위협하고 있다”며 “시·도교육감은 누리과정 지원 예산 편성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고 오히려 강도 높게 비난했다. 최 부총리는 시·도교육청에 대해 ‘국민을 볼모로 잡고 있다’고 비판했지만, 국민의 눈에는 정부와 시·도교육청 양쪽 모두가 국민을 볼모로 잡고 정치적 줄다리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이 문제는 단순히 정치적 쟁점으로 다뤄질 문제가 아니기도 하다. 국민들이 직접적 혜택을 봐 왔던 만큼, 만일 학교-보육 예산 지원정책이 백지화 된다면 그 분노는 정권 차원에서 결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서로 책임을 미루며 다투고만 있을 일이 아니라, 특단의 대책이 시급히 필요하다는 얘기다.
특히, 정책의 연속성 차원에서도 이 사업이 지속돼야 할 필요성이 강조된다. 누리과정은 지난 이명박 정부가 임기 1년을 남긴 상태에서 시작했고,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규모를 확대할 것을 공약으로 내걸었었다. 정권이 바뀌면 지난 정권에서 추진했던 사업들은 모조리 백지화시켜버리는 나쁜 관행을 깨고, 전 정권의 사업이었다 하더라도 계승·발전시킨 좋은 사례였던 것이다. 분명한 것은, 갈수록 국가와 사회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현대 사회의 특성상 이런 복지사업은 흔들림 없이 확대·발전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시·도교육청과 중앙정부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사이,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은 또 좌초될 위기에 놓이게 됐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허탈함이다. 더 이상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과 불만이 거세지고 있다. 이는 결국 출산율 저하의 또 다른 원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며, 국가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잃게 만드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국가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회의는 여야를 아울러, 결코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 교육과 보육 문제는 국가 백년대계인 만큼 정치권이 시급히 머리를 맞대, 중단 없는 보육지원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박강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