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과 반기문 조합, 지금은 아니다
친박과 반기문 조합, 지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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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정치인들의 가장 큰 특징으로 항상 미래권력을 쫓아다닌다고 말한다. 미래권력에 그토록 충성맹세를 하고 뒤를 따르다가도 그가 현재권력이 돼버리면, 추종세력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다른 미래권력을 찾아 나선다는 것. 그것이 냉혹한 정치 질서이자, 정치 현실이라는 얘기였다. 그런데 지금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들을 보니 딱 그 모양이라는 생각이 든다. 친박 의원들의 뜬금없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띄우기 얘기다.

지난 29일 친박계 의원들이 주축이 된 모임 ‘국가경쟁력강화포럼’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차기 대선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는 반기문 사무총장에 대한 집중적 논의가 이뤄졌고, 사실상 친박계가 차기 대선후보로 반기문 총장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게 했다.

‘왜 하필 반기문인가?‘를 살펴본다면, 최근 발표된 하나의 여론조사 결과만으로도 이유는 간단하게 설명된다. <한길리서치>가 지난 17~18일 이틀간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반기문 총장은 39.7%를 얻었다. 2위를 차지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13.5%였으니, 반기문 총장은 2위보다 무려 26.2%p나 높았다. 이 여론조사대로라면 반 총장은 대선 출마 여부가 관건일 뿐이지, 출마만 한다면 가장 유력한 주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출마 가능성은 아직까지 미지수다. 그리고 여론 또한 반 총장에게 높은 지지를 보내면서도 출마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실제로, 이날 주제 발표자로 나선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지난 27일 실시한 자체 여론조사(유권자 500명 대상)에서 반기문 총장이 대선에 불출마 할 것이란 응답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출마를 하게 된다면, 야당보다는 여당 후보로 출마할 것이란 응답이 월등히 높았다는 결과를 전했다. 잠룡들이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두각을 나타내는 주자가 없는 여당 입장에서는 한 번쯤 반 총장에 러브콜을 보내볼 만도 한 조사결과였던 셈이다.

그런데 이런 반기문 띄우기 움직임이 당 차원에서가 아닌, 친박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얘기는 달라진다. 박근혜 대통령 임기가 아직 3년 반이나 남아 있는데도 대통령을 만든 공신그룹이 미래권력 물색에 공개적으로 나섰다니, 쉽게 납득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박 대통령은 국정동력을 상실하게 될까 ‘개헌 논의’조차 반대한다는 입장을 천명해 놓았는데, 정작 친박계 의원들은 미래권력을 찾아 헤매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정치권의 대체적 분석은 이렇다. 당내 차기 대권구도가 김무성-김문수-정몽준 등 비박-비주류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는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뚜렷한 차기 주자가 없는 친박계 입장에서는 점점 더 당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고, 이런 상황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는 위기의식이 이들을 성급히 움직이게 했다는 분석이다.

임기가 아직 한창이고 개헌 논의조차 봉쇄한 박 대통령이 친박 의원들에게 ‘포스트’를 띄워보라고 지시했을 리는 만무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결국 이번 친박 의원들의 반기문 띄우기는 거침없이 당 장악에 나서고 있는 비박-비주류에 대한 견제 차원이자, 미래권력을 향한 또 다른 줄서기의 의미로 해석되어진다. 하지만, 비박-비주류 견제라는 고도의 전략이나 함의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는 잘못된 일이지 않을 수 없다. 친박이라는 상징성을 가진 그룹이 대통령을 도와 성공한 정권을 만들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여도 모자랄 때,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당내 헤게모니 싸움이든, ‘포스트 박근혜’를 위해서든, 지금 여당 주류세력은 미래권력에 관심을 두기보다 국정과 국민의 안위를 살피는 일에 더 매진해야 할 때다.

친박계 의원들은 지금 자신들이 왜 다시 비주류로 전락하고 있는 상황인지, 굳건한 여당 주류로 자리를 지키며 박 대통령을 든든하게 보좌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진정으로 무엇인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반기문’이라는 아직은 허상 같은 존재에 기대려 하기보다, 민생의 현장에 한 번이라도 더 달려감으로써 친박 스스로가 국민적 신뢰를 얻고 지지를 얻어 내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친박 의원들은 혹시라도 지금 스스로가 제 살길 찾기에만 급급해 있는 것은 아닌지, 정권을 창출할 때의 그 뜨거운 열정이 벌써 다 식어버린 것은 아닌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볼 것을 권한다.

[박강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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