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대생 청부살인’ 사건의 주범 윤길자(69) 씨의 남편 류원기(66) 영남제분 회장과 주치의 박병우(55) 세브란스병원 교수가 항소심에서 각각 집행유예와 벌금형으로 감형됐다.
30일 서울고등법원 형사2부(부장판사 김용빈)는 회삿돈을 빼돌려 부인 윤 씨의 허위 진단서를 발급받은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로 기소된 류 회장에게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또한 류 회장으로부터 1만 달러를 받고 윤 씨에 대한 특혜성 형집행정지를 위해 허위 진단서를 발급한 혐의로 기소된 박 교수에게는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앞서 1심에서는 류 회장과 박 교수에게 각각 징역 2년과 징역 8월의 실형이 선고된 바 있다.
재판부는 류 회장의 형량에 대해 “유죄로 인정된 혐의는 76억원 규모의 횡령·배임죄로 이는 윤 씨와 관련이 없다”고 밝히고 “형사 원칙상 친족의 행위로는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돼 있기 때문에 윤 씨의 남편이라고 무조건 중형을 선고할 수 없다는 점과 류 회장이 회사에 어느 정도 변제를 한 점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재판부는 박 교수가 작성한 진단서 중 2건이 허위진단서라는 원심의 판단을 깨고, 진단한 병명 등은 사실에 부합하지만 ‘수감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됨’이라고 쓴 1건에 대해서만 허위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의료기록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형집행정지를 결정한 검사의 과실도 있어 모든 책임을 의사에게 지우는건 부당하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류 회장으로부터 1만 달러를 건네 받고 2008년 10월 7일 윤 씨에게 허위 진단서 29통을 발급한 사실이 알려져 기소 처분된 바 있다.
재판부는 “류 회장과 박 교수가 허위진단서 발급을 대가로 1만 달러를 주고 받은 충분한 증거가 제시되지 않았다”며 이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이어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형집행정지 결정은 검찰이 판단해야 할 몫”이라며 “비정상적인 형 집행정지 결정이 이뤄진 것이 단순히 박 교수의 진단서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기에 그에게 모든 책임을 묻는 것은 지나치다”고 감형의 이유를 설명했다.
이 사건은 ‘여대생 공기총 살인사건’으로 불리며 사회에 충격을 던진 사건이다. 류 회장의 부인인 윤 씨는 지난 2002년 자신의 판사 사위가 대학 재학시절 과외를 했던 이종사촌 여대생(당시 22세)과 결혼 후에도 계속 사귀고 있다고 판단해 상대 여대생을 청부살인한 혐의로 2004년 2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판결 직후 류 회장은 부인과 이혼했다.
하지만 윤 씨는 천식과 유방암, 파킨슨병 등을 앓고 있다는 이유로 2007년부터 2013년까지 형집행정지를 받았고, 이를 다섯 차례 연장하는 동안 수형 생활 대부분을 세브란스병원 특실에서 보낸 사실이 드러나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후 검찰 조사 결과 류 회장은 2009년 4월부터 영남제분과 계열사 법인자금 86억원 상당을 빼돌려 그중 일부를 윤 씨의 형집행정지를 위해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고, 박 교수는 류 회장으로부터 1만 달러를 건네 받아 2008년 10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허위 진단서를 발급한 것으로 드러나 두 사람은 지난해 9월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영남제분은 대표이사의 횡령·배임 혐의가 드러나 한때 상장폐지 실질심사를 받으며 주식 매매거래가 정지되기까지 했다.
한편 류 회장은 2000년 한 증권사 관계자와 짜고 주식시장에 영남제분이 IT 업종에 진출한다는 허위정보를 유포해 주가를 수십 배나 부풀려 200억원대의 시세차익을 올린 혐의로 2002년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기도 했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