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으로 배제된 계층들의 분노가 방화, 살인으로 나타나
2003년 대구에서 발생한 지하철 방화 사건으로 고개를 들었던 ‘묻지마 범죄’가 예측할 수 없는 불안감으로 우리 사회를 점점 위협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노숙자나 무직자, 정신질환을 앓는 이들이 자신을 돌보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무자비한 분풀이로 무차별적인 방화와 상해, 살인까지 저지르며 끝없는 불안감을 조성한다. 그러나 정부차원의 치료와 관리는 미흡하기만 해 시간이 갈수록 이 ‘무서운’ 범죄는 예방은커녕 오히려 늘어가는 실정이다. 지난달 19일 대구에서는 또 한번의 대형 지하철 참사가 일어날 뻔했다. 정신분열증과 피해망상 증세를 보여 온 김모씨(36)가 대구지하철 2호선 열차가 경대병원으로 진입하던 중, 객차 안에서 ‘다 죽여버리겠다’고 소리를 지르며 인화용 스프레이를 꺼내 라이터로 방화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같은 열차에 타고 있던 고교생 3명에게 진압당해 붙잡힌 후 경찰에 넘겨져 현존전차 방화미수 혐의로 그를 구속할 수 있었지만 그 용기있는 학생들이 아니었다면 또 한번 대참사로 눈물바다가 이뤄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를 봐주지 않는 사회가 싫다’
지난 2월에는 서울 구로와 영등포, 용산 등지에서 출근길 여성들을 흉기로 상해한 사건이 발생해 그 지역의 여성들을 불안에 떨게 하기도 했다. 범인은 지하철에서 돌아다니며 지나가는 여성들을 호주머니 속 숨겨왔던 흉기로 허벅지를 찌르고 달아났다. 아무 이유 없이 그것도 이른 아침에 봉변을 당했던 여성들은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범인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 때문에 경찰에서도 용의자에 대해 파악한 것이라곤 ‘노숙자풍’의 차림새뿐이어서 수사의 진행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무려 다섯 건이나 지하철역에서 똑같은 수법으로 발생했지만 목격자도 없을뿐더러 금품을 노린 것도, 원한에 얽힌 것도 아니어서 단지 여성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거나, 사회적인 불만을 가진 사람으로 추정만 했을 뿐이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삼촌이 조카를 세탁기에 넣어 살해한다거나 지하철 승강장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여성을 이유없이 선로로 밀어 치여 죽게 하려한 사건, 말도 없이 취객에게 흉기를 휘두르는 등 끔찍한 범죄들이 원인도 없이 발생하고 불특정 다수를 향해 위협해 사회불안감은 끊임없이 늘어가고 있다. 특히 전형적인 ‘묻지마 범죄’라고 할 수 있는 방화는 그 피해가 더 크다는 점에서 두렵게 느껴진다. 다수인의 생명과 재산을 빼앗아가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초래하는 방화는 지난 5년간 현저하게 증가해왔다. 지난 1월 3일, 파주지역의 7군데 교회에서 연쇄적으로 화재가 발생했다. 명백히 연쇄방화로 추정되었고 경찰의 수사 결과 노숙생활을 하고 있던 강모씨(女)가 연쇄방화범으로 드러났다. 구속된 강씨는 “왜 하필 교회만을 골라 방화를 했냐”는 물음에 집이 없어 파주지역 교회에서 자곤 했는데 몇몇 교회 교인들이 거지라고 자신을 손가락질하며 비웃은 것에 대한 앙심으로 교회에 불을 질렀다고 고백했다.
▶무시된 목소리, 다수에 대한 분노로 표출
서울 연희동과 응암동에서 연쇄방화를 했던 박모씨. 그는 총 11건의 방화로 그 일대의 주민들이 공포에 떨게끔 만들었다. 특이한 점은 그는 방화 후 피해자 집에 불이 난 사실을 알려 불을 끄는 대담함을 보였다는 것이다. 경찰 수사에서 그는 불을 지르면서 느끼는 쾌감도 쾌감이지만 신고한 후 집주인에게서 듣는 “고맙다”는 한마디가 자신이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같은 기분이 들어 방화를 저지르게 되었다고 진술했다.
이처럼 저학력자, 노숙자, 실직자로 사회에서 무시와 냉대를 받는 존재인 이들은 박씨의 경우처럼 범죄를 통해 자신의 사회적 효용가치를 확인하는 유일한 방편이 바로 방화, 혹은 상해나 살인인 것이다. 가족도 없이 사회적으로 완전히 배제되어 세상과 소통할 수 없는 극한 상태이기에 매우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분석이다. 이미 이렇게 사회적으로 배제된 이들의 스트레스의 정도가 한계상황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절실히 필요한 실정이다.
김시억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개인적, 가정적, 경제적 또 사회적으로 약한 부류의 사람들이 많이 방화를 저지른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욕구를 정상적으로 만족시키지 못하고 또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충동에 의해 대리만족하는 심리적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는 3,40대가 방화 범죄의 70%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의 경제적인 악화, 갑작스런 실직, 그로 인한 가정파탄으로 희망을 잃어버렸다는 증거”라며 사회적 관심이 요구되어짐을 강조했다.
방화사건의 수사 또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수사망의 개선이 시급하다 보여진다. 지난 1월에 있었던 부산 괴정동 방화사건의 경우 방화범으로 자수한 용의자가 거짓된 알리바이로 진짜 용의자가 아님이 밝혀져 수사의 허술한 체계가 지적됐었다. 우리나라는 화재사건 발생 시 4대 강력범죄를 담당하는 형사과에서 일시적으로 방화수사본부가 꾸려졌다 해체되는 시스템으로 일선 소방서와 경찰과의 공조에 기반한 과학수사는 전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수사의 방향도 주로 잠복을 통해 현행범을 잡는 주먹구구식 관행을 되풀이하고 있어 효율적인 수사형태가 갖춰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회발전 속에서 무시당해왔던 소외된 자들의 반감은 결국 비겁하게 모른 척하고 돌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우리네가 만들어낸 부메랑일지도 모른다. 가진 게 없다고 무시하고 비난하는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이 좀 더 아름답게 변할 수 있도록 소외계층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늘려나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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