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체대와 비한체대간의 싸움
지난 4일 세계쇼트트랙선수권대회를 마치고 귀국한 10명의 남녀 대표팀 선수들은 입국장부터 두 패로 나뉘어 서로 다른 코치에게 마지막 전달사항을 듣는 어색한 장면을 연출했다.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금 6, 은 3, 동메달 1개를 수확한 한국 쇼트트랙이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우수한 성적으로 금위환양을 했다. 하지만 입국 환영식이 벌어지는 자리에서 안현수의 아버지 안기원(49)씨가 "코치와 선수들이 안현수의 1등을 방해했다"고 협회 관계자들과 주먹다짐을 하면서 드디어 곪아있던 종기가 수면위로 나오고 말았다.
지난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도 한국 남녀 쇼트트랙 대표팀은 훈련기간에 파벌로 나뉘어 따로 훈련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연출했다. 하지만 세계 10위 안에 드는 역대 동계올림픽 최고 성적을 거두는 바람에 잠시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던 파벌문제는 지난달 끝난 세계팀선수권대회와 3일 막을 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다시 한번 불거져 나오고 말았다.
◆대표팀에 두개의 팀 존재
지난 3일 미국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 매리우치 아레나에서 열린 2006 쇼트트랙세계선수권대회 최종일 남자 3000m 슈퍼파이널 결승에서 눈살을 찌푸리는 일이 벌어졌다.
종합점수 상위 8명이 출전하는 이 경기에서 한국은 안현수(한국체대), 이호석(경희대), 오세종(동두천시청)선수가 레이스에 나섰다. 이호석과 안현수는 레이스 종반에 나란히 1, 2위로 달려 메달의 기대를 부풀리고 있었다. 하지만 둘 중 누구도 우승하지 못했다. 마지막 반 바퀴를 남기고 2위였던 안현수가 선두 이호석의 안쪽 코스로 추월을 시도하다가 막히자 이호석의 등을 밀었고 이호석이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안현수는 경기가 끝난 뒤 ‘푸싱(밀기)’ 반칙으로 실격됐고 이호석은 5위에 머물렀다.
이는 두 개의 파벌로 나뉘어 있는 현 대표팀의 문제점을 극명히 보여 준 ‘사건’이었다.
이호석은 “만일 같은 팀 선수였다면 서로 그렇게 무리한 레이스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해 파벌 간의 경쟁심이 과열됐음을 시인했다. 국제빙상연맹(ISU) 임원 자격으로 이번 대회에 참가한 편해강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도 “하나의 팀으로 운영됐다면 이번 같은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세계적 위상에 먹칠한 파벌싸움
지난해 한국 쇼트트랙은 파벌싸움 통에 종목을 없애야 한다는 여론까지 나오는 등 최대위기를 맞았다. 코칭스태프 선임문제를 놓고 선수들이 태능 선수촌 입촌을 거부하고, 동계올림픽 대표선수 선발 과장에서는 학부모측과 대한빙상경기연맹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등 끊임없는 불화가 끊이질 앓았다. 이 때문에 대표팀 선수들은 태릉선수촌에서 퇴촌 명령을 받고 촌외훈련의 고난까지 겪으면서 동계올림픽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이번 동계올림픽 훈련에서는 아예 나눠서 훈련을 하는 보기 드문 현상까지 연출되고 말았다.
대표팀은 지난해 말부터 박세우 코치가 한국체대 소속의 안현수 최은경 전다혜 강윤미를 지도하고 송재근 코치가 오세종 송석우(전북도청) 서호진(경희대) 이호석, 진선유(광문고) 변천사(한국체대)를 나눠 지도하는 방식을 택했다.
어느 코치의 지도를 받느냐에 따라 훈련은 물론 작전 지시도 따로 받았고 밥도 끼리끼리 먹는 등 대표팀 내에는 2개의 팀이 존재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건들은 쇼트트랙계를 장악하기 위한 파벌 간의 신경전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학부모들까지 가세하면서 가장 순수해야할 스포츠 판이 투서와 시기가 난무하는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외형적으로 한국체대와 비(非)한국체대간의 파벌다툼으로 보이지만 속사정은 이보다 더욱 복잡하다. 특히 쇼트트랙은 한국 동계종목의 유일한 금메달 종목이어서 이에 따른 이권 다툼 때문에 파벌간 반목이 심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빙상연맹의 한 관계자는 "이미 세계팀선수권대회 때부터 두 패로 나뉘어 훈련했다"며 "심지어는 방까지 같은 층에서 쓸 수 없다고 주장하는 통에 갑작스레 방을 바꾸는 일도 벌어졌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돌아오는 비행기 좌석도 바꿔달라고 했을 정도"라며 "지난 2003년 말 구타파문이 있었을 때 연맹에서 파벌문제도 함께 정리했어야 했다"고 혀를 찼다.
이번 세계선수권대회를 마지막으로 올해 대표팀은 해체된다. 오는 9월 2006-2007시즌을 대비하는 대표팀 선발전을 열고 새로운 대표팀을 구성한다.
빙상연맹 김형범 부회장은 "그동안의 거론된 문제점과 팀구성 문제 등을 종합해 연맹 자체에서 회의를 계속해 왔다"며 "원칙과 기준, 룰이 통하는 대표팀을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연 빙상연맹이 한국 체육의 고질병으로 자리 잡은 파벌싸움에 지친 국내 스포츠팬들에게 변화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지켜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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