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룡·박성범 '빙산의 일각'…"전국이 지뢰밭"
"공천이 마무리되면 더 많은 사고가 생길 겁니다." 한나라당의 '공천 비리 파문' 이 일파만파로 확산되는 가운데 한 당직자는 '공천 신청자들 중에는 돈을 싸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들었다" 며 "이들이 떨어질 경우 여기저기 투서를 하고, 제보를 해서 당이 꽤나 시끄러울 것' 이라고 말했다. 또한 김덕룡·박성범 의원의 예는 '빙산의 일각' 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검.경의 내사나 수사를 받고 있는 경우가 줄잡아 10건이며, 한나라당에선 5~6건의 추가 의혹에 대한 자체 조사가 진행중이다.
공천비리 의혹에 연관된 김덕룡, 박성범 의원을 검찰에 수사 의뢰함에 따라,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끊일 줄 모르던 한나라당 공천 잡음의 뇌관이 드디어 터졌다. 당 안팎의 선거 관계자들은 이번 사건이 '예고된 악재'라는 데에 고개를 끄덕이는 동시에, 유사사례가 또 있을 수 있다는 견해에도 토를 달지 않는 분위기다.
한나라당은 '개혁공천'이란 명분 아래 중앙당이 쥐고 있던 공천권을 16개 시도당에 이양했지만, 정작 공천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시스템과 잣대는 마련하지 못했다. 시도당의 결정이 중앙당에서 여과 없이 확정되는 분위기에서 해당 지역 국회의원이나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 등 공천심사위원들이 공천에 미치는 영향력도 커졌다.
자연히 공천이 확정된 지역에서는 '누구 사람이라더라' 혹은 '얼마를 줬다더라 는 식의 소문이 돌기 마련이고, 박 의원이나 김 의원 모두 이 같은 제보를 받은 당 클린감찰단(김재원 위원장)에서 확인해본 결과 소문으로만 넘길 수 없을 정도의 정황 증거가 확보된 경우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말 박 의원의 금품 수수 의혹과 관련한 제보를 받고 박근혜 대표에게 보고했으나, 박 대표는 "사실관계에 관한 구체적 증거가 필요하다' 며 판단을 유보했다고 한다. 박 의원 의혹을 추가 조사하는 와중에 이달 초 김 의원의 의혹에 관한 제보가 들어와 결과적으로 두 사건이 맞물려 논의됐다.
박 대표는 중진 의원들이 연루된 사건을 다루는 데 신중을 기하길 요구했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이다 보니 무작정 시간을 끌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에 허태열 사무총장은 13일 "지도부로서도 인간적 고뇌가 적잖았지만 이의 제기자들이 길에서 폭탄선언이라도 해 버리면 당이 다 뒤집어쓰는 형국이 돼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고 말했다.
어차피 막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판단 아래, 최악은 피해 가자는 전략이었던 셈이다. 허 총장은 그러나 검찰이 이미 내사에 착수했었다는 소문에 대해서는 "검찰에서는 사전이 전혀 사건을 인지하지 못했었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현재 한나라당에서 공천 관련 금품.향응 의혹으로 수사받는 현역 의원만 4명이다. 김. 박 의원 외에 대구의 곽성문, 경기 용인의 한선교 의원이다. 기초단체장 중에선 오근섭 경남 양산시장이 공천심사위원 등에게 수백만원짜리 서화를 전달했다가 최근 불구속됐고, 서찬교 서울 성북구청장은 시의원에게 현금 50만원을 건네 역시 입건됐다. 모 기초단체장은 지역구 의원에게 거액을 건넸다가 경선이 결정되자 반발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한나라당 이재오 원내대표가 14일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의석이 반으로 주는 한이 있어도 부정부패의 뿌리를 자를 것" 이라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이 대표는 "한국 정치사를 보자면 매 선거마다 공천 헌금에 의해 공천이 이뤄지고 그렇게 당선된 사람들이 공천에 들어간 돈을 메우기 위해 공직을 부정과 부패의 도구로 이용해 온 부패의 고리가 계속돼 왔다" 며 "한나라당이 두 의원에 대한 수사의뢰라는 정당사 초유의 일을 한 것은 한국 정치의 고질적 부패 고리를 차단코자 하는 혁명적 결단"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국민 여러분들께 한나라당이 지방선거 관련된 공천잡음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말씀 드린다"며"국민으로부터 동정심을 유발하려고 하는 얄팍한 정치적 술수 아니다. 우리는 우리당의 어떤 의원이나 어떤 당직자나 비리나 부패와 관련된 국민의 눈으로 심판하겠다. 우리는 우리 눈으로 한나라 보지 않고 국민의 눈으로 한나라 보기로 결심했다" 라고 덧붙였다. 또한 이 대표는 "앞으로도 설사 한나라당 의원이 더 많이 관련되서 한나라당 의석이 반으로 주는 한이 있어도 50년간 내려온 이 나라 정치의 부정과 부패의 뿌리를 자를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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