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 예산안을 놓고 심의에 들어간 국회에서 각 분야별 쟁점들이 속속들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국회는 지난 6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이하 예결위) 전체회의를 열고 종합정책질의를 시작으로 총 376조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 심사에 착수했다. 이에 따라 여야는 각종 경제 현안을 둘러싸고 날선 공방을 주고받고 있다.
여야 간에 가장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분야는 ‘누리과정’을 둘러싼 논란이다. 누리과정 예산 논란은 지난달인 10월 7일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이하 협의회)가 새해 예산안 편성에서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면서 촉발됐다. 협의회는 이날 정부의 누리과정 예산지원 삭감에 반발해 누리과정 예산 중 3~5세 어린이집 보육료 예산에 해당하는 2조 1429억원 전액을 편성하지 않기로 결의하고 정부에 재정 지원 약속을 이행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다음날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 장관은 “이명박 정부때 시·도 교육청이 부담하기로 합의했던 사안”이라며 반박했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기재부에서 해명하는 등 ‘거짓말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협의회와 정부간의 갈등은 쭉 지속돼 여야 대결 양상으로까지 번졌고 예산안 심의가 시작되기 직전인 5일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은 급기야 협의회의 결의를 실천으로 옮겨 실제로 예산안을 미편성하겠다고 밝히는 초강수를 뒀다. 학부모들의 거센 반발로 인해 협의회는 6일 전액 미편성 방침을 철회하고 2~3개월분의 예산만 편성하는 것으로 일단 급한 불을 껐지만 예산안 심의가 본격화 되면서 여야는 본격적으로 누리과정 예산안을 놓고 충돌하고 있다. 여당은 무차별 복지를 지양해야 한다며 무상급식까지 재고하겠다는 입장이고 정부는 “국가에 떠넘기는 지자체는 무책임하다”고 주장하며 지방이 비용을 분담해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반면 야당은 누리과정 예산을 지방에 전가하는 것을 대선 공약 파기로 규정하고 정부의 무책임을 비판하고 있어 이를 둘러싼 갈등이 어떤 방식으로 봉합될지 주목된다. 현재 관련 시행령에서는 지방이 이를 부담하도록 돼 있으나 상위의 효력을 가진 법률과 충돌하고 있고 대선 공약상으로는 중앙 정부가 예산을 부담하게 돼 있다.
‘담뱃세 논란’을 둘러싼 증세 논란에 대해서도 뜨거운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 및 여당은 국민 건강 증진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담뱃값 인상이 반드시 필요하며 세수확보 목적의 증세가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야당은 이를 ‘서민 증세’로 규정하고 공세를 펼치고 있다. 지난 4일 대정부 질문에서는 야당 의원들이 ‘증세냐 아니냐’고 집중적으로 추궁했고 정홍원 국무총리는 “부담은 늘지만 증세는 아니다”라는 애매모호한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특히 정부 예산안 중 세입확대분(5조 1천억원)의 3분의 1을 담뱃값 인상에 따라 신설되는 개별소비세 수입(1조 8천억원)이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으나 아직 관련 법이 개정되지 않아 그대로 통과될 지는 불투명한 실정이다.
박근혜표 창조경제 핵심 사업 예산에 대해서도 진통이 예상된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박근혜 정부의 핵심 사업 예산에 대해 5조원을 삭감할 방침을 세웠다. 1차적으로 4대강 사업, 방산비리, 해외 자원개발 사업 등에 대한 추가 예산을 적극 저지한다는 의지다. 방산비리와 해외 자원개발 사업의 경우 야당이 국정조사와 청문회까지 요구한 만큼 정부 예산안에서 후속 예산 또는 관련 예산을 샅샅이 찾아내 삭감하겠다는 계획이다.
현 정부가 공들이는 창조경제 사업 예산도 야당의 주요 삭감 포인트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 사업이 ‘무늬만 창조’라고 주장하며 예산 삭감에 총력을 쏟을 태세다. 기획재정부의 글로벌 창조지식 경제단지 조성사업, 의료민영화 관련 사업 등이 타깃이다. 국가보훈처의 나라사랑정신 계승발전 사업은 교육의 편향성 지적을 받은 만큼 최대한 줄여야 하고 비무장지대(DMZ) 평화공원 조성사업 예산도 남북관계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삭감대상이라는 게 야당 주장이다. 새누리당은 창조경제 사업 예산들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고 방산비리 근절은 예산삭감이 아니라 별도대책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최경환표 확장예산’으로 불리는 적자예산 편성에 대해서도 견해가 크게 엇갈리고 있다.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내년 예산을 33조6000억원에 달하는 관리재정수지 적자 예산안으로 편성했다. 야당은 이대로라면 재정건전성 훼손은 불가피하다며 법인세율 인상, 대기업 특혜성비과세감면 폐지, 법인세 최저한세율 인상 등 부자감세를 철회해 최소한의 재정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적자재정규모가 예상외로 크고 재정건전성이 우려된다는 점에서 여권 일각에서도 법인세 인상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정부 및 여당은 적자예산으로 재정이 투입돼 경제가 살아난다면 세수도 늘어 자연스레 적자가 줄어들 것이라는 입장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재정적자를 늘려서라도 경제를 살리는데 온 힘을 다하겠다”고 경기부양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이 밖에 40조원을 넘게 투자해 1조원도 회수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듣고 있는 해외자원개발 예산에 대해서도 야당은 대폭 삭감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국정원, 법무부 등이 사용하는 특수활동비로 대표되는 불투명한 권력형 예산이 증액된 것에 대해서도 야당은 대폭 삭감할 태세다. 박근혜 정부의 공약인 고등학교 무상교육 예산이 빠진 것에 대해서 정부는 “박근혜 정부 임기 내 고교 무상교육에 착수할 것”이라고 해명하면서도 “다만 최근 세입 여건이 녹록지 않아 당장은 전면 무상교육이 쉽지 않다”고 밝혔다.
한편 올해는 국회 선진화법에 따라 ‘예산안 자동부의’ 규정이 적용되는 첫 해다. 새해 예산안이 11월 30일까지 예결위에서 심의가 완료되지 못하면 12월 1일 정부가 제출안 원안이 그대로 본회의에 자동 부의된다. 여당은 이에 맞춰 처리 시한을 반드시 지킬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으나 야당은 법정 기한은 황금률이 아니며 졸속 심사가 우려될 경우 다른 규정을 활용해 이를 미룰 수 있으므로 기한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특히 국회법 95조에 따르면 본회의에 상정된 의안에 대해 수정동의안이 제출돼 통과되면 원안은 자동폐기된다. 10여년 이상 관행적으로 새해를 넘겼던 예산안 처리가 법정 기한대로 마무리될 지 수정동의안·여야 합의 등의 방식으로 관행이 되풀이될지 향후 논의과정이 주목된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