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활성화 핵심 정책 중 하나로서 정부가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기술금융 대출 실적이 한 달 사이 두 배 가까이 폭증하며 3조원을 넘어섰다.
10일 은행연합회의 ‘기술금융 종합상황판’에 따르면 기술신용평가기관(TCB) 연계 대출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난 7월 1일부터 10월 말까지 4개월간 은행권의 기술신용대출 금액이 3조 590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9월말 기술신용대출 실적이 1조 8334억원이었던 것은 감안하면 한 달 사이에 기술금융 취급 규모가 두 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대출건수도 9월말까지 3187건에 불과했으나 10월말에는 6235건까지 늘어났다.
기술금융은 은행이 기업의 기술력을 평가해 대출해주는 체계로서 전통적인 방식인 보증서·담보 위주 대출 관행에서 벗어나 기술력을 기반으로 대출을 해주는 것을 말한다. TCB는 평가 등급을 산출해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에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은행들이 분담금을 걷어 자율적으로 구축한 기술금융 데이터베이스(TDB)가 평가 등급 산출의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한달 새 1조 7천억원이 넘는 증가분 중 대부분은 정부보증이나 정책자금 지원없이 은행이 대출에 대한 위험을 감수하는 은행 자율 대출인 것으로 나타나 은행들이 정부의 압박에 무리한 대출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9월말 전체 금융기술 대출 실적 중 은행 자율 대출 실적은 6995억원으로 전체의 38.1%에 불과했지만, 10월말에는 1조 9546억원으로 전체의 54.4%까지 급증했다. 반면 기술보증기금을 통한 보증부 대출과 정책금융공사를 통한 온렌딩 대출 등 정책금융을 통한 기술금융 비중은 같은 기간동안 61.8%에서 45.5%로 감소했다.
지난 10월 말 기준으로 집계한 현재 은행별 자율 기술금융 실적은 신한은행이 4873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하나(4486억원)·기업(3475억원)·우리(3007억원)·농협(1208억원)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반면 국민은행(388억원)과 외환은행(690억원)은 비교적 실적이 저조했다.
최근 몇 달간 기술금융 실적은 그 증가 속도가 지나치게 가팔라 각계에서 잇단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기술금융 누적 실적은 7월 말 까지1922억원이었으나 8월 말에는 7221억원으로 한 달 새 4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어 9월 말에는 1조 8천억원으로 집계돼 2배 이상 늘었고 10월 말에는 3조원을 돌파하며 또 2배 가까이 늘었다. 누적 실적이 매 달 몇 배수 이상의 폭으로 폭증을 거듭, 3달 만에 18.7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지나치게 실적에만 목매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금융위원회는 기술금융 종합상황판을 구축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매주 실적을 챙기고 있으며 은행별 대출실적 공개, 기술금융 혁신평가 지표 발표 등의 수단도 강구하고 있다. 또한 신제윤 금융위원장도 지난 9일 기술금융 우수 지점을 방문해 격려하는 등 기술금융 확대에 사활을 걸고 있는 모양새다.
하지만 ‘모뉴엘 사태’에서 보듯이 은행들이 실적을 위해 무리한 대출을 늘려나갈 경우 부실이 쌓여 폭탄으로 돌아올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지게 마련이다. 기술금융의 경우 기업이 보유한 기술을 바탕으로 대출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 9월말 현재 국내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1.14%로 전년 말에 비해 0.26% 포인트 뛰어올랐다. 여기에 은행이 자체적으로 기술력을 검증할 인력과 노하우가 부족한 상황에서 은행권이 자율적으로 기술금융을 늘리면 자산 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
한 은행 고위 관계자는 “기술금융의 방향은 맞다고 생각하지만 정부가 적극적으로 드라이브를 걸다보면 리스크 관리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은행권의 또 다른 관계자도 “기술금융이 은행의 전문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단계적으로 역량을 갖추고 시스템과 능력을 정비해야 하는데 절대적인 대출 실적만 따지고 있어서 상당히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반면 일부에서는 기술금융이 은행권의 수익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박기홍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부가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사업이지만 은행 입장에서도 순이자마진(NIM)을 높이기 위해 고수익 금융 상품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며 “연체율도 아직 부담스러운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기술금융으로 불똥이 튈 것을 우려해 ‘모뉴엘 사태’와 기술금융은 상관없다고 해명에 나서고 있지만 이 같은 세간의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정부내외에서 기술금융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 및 건전성 확보 수단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